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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Dec 26. 2022

까미유 끌로델

시대를 앞서간 비운의 천재예술가

   

까미유 끌로델은 1864년 프랑스에서 등기소 소장인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 1남 2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그녀가 세상에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것은 알프레드 부셰에 의해서다. 조각가 알프레드 부셰는 그녀의 작품을 보고 천재성을 간파한다. 사회 통념상 공립학교에서 여성의 미술교육은 금지되어 있었고 그녀는 부셰의 화실에서 조각을 배운다. 1883년 부셰가 공모전에 당선되어 로마로 떠나게 되면서 자신의 화실을 친구인 로댕에게 위탁한다, 그때 19살의 까미유와 43살 로댕의 만남이 시작되었다. 1884년 로댕이 <지옥의 문>을 제작할 때 본격적으로 제작팀 조수가 되었고 연인이 되었다.      



까미유의 아름다움과 천부적인 재능, 생기 넘치는 표현력은 로댕에게 뮤즈의 역할을 했다. 서양미술의 오랜 전통인 누드화를 인체 조각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의 작업에 나타나기 시작했고, 이전과는 다른 좀 더 진취적이고 파격적인 시도가 더해졌다.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 <입맞춤>으로 이어지는 로댕의 대작에 까미유는 영감과 예술적 조력을 더했고, 서로를 상승시키는 예술적 사제이자 동반자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로댕에게는 재봉사 출신인 사실혼 관계의 연인 로즈가 있었고, 결국 까미유에게 이별을 통고한다. 참담한 이별 이후에도 드뷔시와 교제하고, 재정적 조력자의 도움을 받아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그러나 번번이 로댕의 아류로 평가절하되었고, 관능적이고 과감한 표현력은 시대에 수용되지 못했으며 그녀의 사생활은 가십거리로 소비될 뿐이었다. 피해망상과 분열은 점점 심해져 갔다. 반면, 로댕은 시대를 대표하는 조각가로 명성을 쌓았고, 근대조각의 아버지로 불리는 위대한 작가로 추앙되었다. 버팀목이 되어주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직후 까미유는 파리정신병원에 수용되고, 전쟁으로 1914년 아비뇽의 몽타베르그 수용소로 옮겨진다. 피해망상증이 눈에 띄게 호전되었다는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와 오빠 폴의 반대로 30년간 정신병원 밖으로 나오지 못했고, 1943년 79세에 임종하여 몽파메 묘지에 무연고 시신과 함께 단체 매장되었다.      



파탄으로 이어졌지만 둘의 사랑은 예술에 그대로 반영된다. 까미유 끌로델에 대한 로댕의 시각을 따라가보면 흥미롭다.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로댕은 그녀를 모델로 <모자 쓴 까미유 끌로델>을 제작한다. 화려한 아름다움을 지닌 그녀의 겉모습에 숨어 있는 우울한 감정을 표현하려 했고, 초점을 잃은 채 먼 곳을 좇는 그녀의 아득한 눈길을 조각품에 담아내었다. <영원한 우상>에선 여인의 가슴에 얼굴을 품고 팔을 뒤로한 채 숭배하듯 포즈를 취한 남성의 모습으로 자신을 표현한다. <회복>이라는 작품은 병상에서 일어난 까미유의 모습을 보며 제작한 것으로 보이는데 로댕의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로댕을 향한 까미유의 마음도 그녀의 조각에 잘 드러난다. <사쿤탈라>에선 무방비상태의 어린 소녀가 격정적으로 그녀를 끌어안은 남자에 기대어 있는 심리적 의존상태를 드러내고, 행복했던 시절에 창작된 것으로 알려진 <왈츠>에선 드레스 자락이 아름다운 동세를 이루면서 춤의 율동이 그대로 전달되며 남자의 가슴에 기대어 두 사람의 팔이 상사목처럼 얽혀 한 몸이 된 모습이 나타난다. 사생활을 노출했다며 로댕을 분노케 한 <중년>이라는 작품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흘러가는 세월과 운명에 내동댕이쳐진 여인의 비탄이 드러난다.      

사쿤탈라
왈츠
중년


 생애 내내 까미유를 부정하고 어떤 면에서는 그녀의 표현력과 예술적 에너지를 질투하고 가로채면서도 그녀에 대한 강한 집착과 열망을 부인할 수 없었던지 로댕은 서신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내 사랑 까미유, 미의 여신이여. 속삭이는 꽃보다 총명하고 아름다운 나의 사랑아. 매일처럼 그대를 볼 수 없다면 나는 더 이상 한순간도 작업을 할 수 없을 것입니다. ”     


 예술적 동반자가 아니라 총명하고 아름다운 사랑, 자신의 작업에 영감과 에너지를 주는 조용한 조력자이길 바랐던 로댕의 이기심이 엿보인다. 위대한 예술혼을 꽃피웠음에도, 대가의 연인으로, 비극적 삶의 대명사로 규정된 까미유의 삶이 가슴 아프다. 그녀의 예술세계를 기념하여 2017년 프랑스 노정-쉬르-센 시에 까미유 끌로델 박물관이 세워졌다. 대리석, 테라코타, 석고, 청동 조각품뿐만 아니라 판화, 데생 작품 등 그녀의 주요 작품들이 총망라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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