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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 윤 Jan 03. 2023

강은 아득히 가득히

밀양강의 기억

청소년기에는 언제나 강을 끼고 살았다. 밀양강은 나의 친구이자 놀이터였고 모태였다. 영남루 대숲에 앉아 있으면 여름에도 오돌돌 소름이 돋았다. 그 소름이 그림자 같은 무서움으로 변할 무렵엔 강가로 내려와 물수제비 놀이를 했다. 강은 내가 함부로 던진 돌을 한두 번 튕기다가 삼키곤 했다. 큰 태풍이 스쳐가고 비로소 바람이 자면 우리는 강가에 나가 떠내려오는 것들을 구경했다. 부러진 나무둥치, 세간살이 일습, 어느 날에는 돼지도 둥둥 떠내려 왔다. 사람들이 긴 바지랑대를 휘저어 돼지를 끌어내었다. 그해는 유난히 수해가 심해 북한에서 수재의연품 지원이 왔고 어른들은 이게 언제적 나일론이냐며 혀를 찼다.


밤에도 자주 강에 나와 오도카니 앉아 있었다. 시인인 선생님이 들려준, 만월의 달빛을 쐬면 함초롬하게 예뻐진다는 말을 철석같이 믿었다. 숨을 크게 내쉬었다 달빛을 들이마셨다. 어느 날은 너무 마셔 트림이 나올 정도였다. 아름다운 밤의 강은 꽃술이 터지는 듯 황홀했고 별들이 발걸음을 움직일 무렵이면 강은 어깨를 뒤척이며 돌아누웠다. 어느 날은 돌아오는 강물의 발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 응어리진 것을 녹이고 풀어내고 돌아온 강물의 발소리.


그해 백일장이 열렸을 때 남천강(밀양강)이 주제어였다. 친구는 개망초꽃이 나오는 아름다운 시를 쓰고 장원을 했다. 어떻게 그런 단어를 쓰는지 신기했다. 친구는 신춘문예에 나오는 것 같은 시를 그 시절부터 써내었다. 나는 여러 가지 주제로 습작을 해봤지만 막상 밀양강이 나오니 쓸 말이 없어졌다. 혼자 영남루를 내려와 강가에서 발장난을 하며 놀다 문예반 선생님한테 한 소리를 들었다. 나의 강을 어떻게 몇 시간 안에 풀어낼 수 있나... 나의 답답함은 거기였던 것 같다.


은빛그물을 메고 아버지가 잠겨 들어가던 밀양강, 달맞이꽃이 반기던 그 강, 어느 날은 말할 수 없는 공포와 혼효로 다가왔던 강... 문득 지금 백일장에 나가 밀양강에 대해 쓰라고 하면 나는 뭐라고 쓸지 궁금해진다. 밀양강을 떠나온 지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내 맘엔 여전히 몸의 비늘을 풀며 아득히 가득히 강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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