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와 헤드락을 걸고 놀던 남학생이 갑자기 점잖아진 건 뭔 일이 있는 거다. 공부하러 오면 내 방으로 먼저 와서 나를 실실 골리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가 강의실에 앉아 북한산만 바라보는 건 뭔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거다. 처음엔 장난을 걸어 봤다. 평소 때면 낄낄거려야 할 녀석이 빤히 쳐다보고 만다. 후치 사줄까? 후라이드 치킨이면 안 하던 공부도 맹렬하게 하는 척하더니 입맛 없어서 싫단다. 2년을 봤는데 입맛 없는 건 처음이다.
수업이 끝나고 한참을 멍 때리더니 내게 왔다. 선생님, 4년 장학생 되고 매달 생활비까지 받으려면 수능을 얼마나 잘 봐야 할까요? 네가 가려는 대학엔 수시는 지역 고교 우수자 장학금이랑 정시는 입학성적우수장학금 있어. 계열 수석 차석 정도 해야 하지 않겠니? 요즘은 성적장학금은 줄어드는 추세야 근데 국가장학금 제도가 잘 되어 있어서 신청하면 될 거야. 근데 생활비는 안 줄텐데... 아 그럼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걸로는 모자라겠죠... 전 재테크도 해야 하거든요(어랍쇼... 알바를 시키겠다는 언질을 한 적이 없는데.. 김치를 절이기도 전에 김칫국 마시기)... 오늘부터 남아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갈게요. 제가 그동안 많이 놀아서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어.. 어.. 알았어.. 그래도 가끔 헤드락은 하면 안 될...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게 너네 공장의 매점 운영권 하나 받아 매점 주인하며 살면 만고 짱이라고 너스레를 떨어 기가 차게 하던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말은 그렇게 해도 속 깊고 인정 많고 통찰력 있는 거 다 알았지만. 오감자 칠리소스 맛을 먹을까 바비큐 맛을 먹을까 치토스 매운맛을 먹을까를 두고 고민하고 보석 사탕을 사 먹고 플라스틱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는 장난스러운 소년을 180도 바꾼 건 40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