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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현정 Aug 08. 2022

아이들이 성장하는 순간

나와 헤드락을 걸고 놀던 남학생이 갑자기 점잖아진 건 뭔 일이 있는 거다. 공부하러 오면 내 방으로 먼저 와서 나를 실실 골리며 하루의 스트레스를 푸는 아이가 강의실에 앉아 북한산만 바라보는 건 뭔 일이 있어도 단단히 있는 거다. 처음엔 장난을 걸어 봤다. 평소 때면 낄낄거려야 할 녀석이 빤히 쳐다보고 만다. 후치 사줄까? 후라이드 치킨이면  안 하던 공부도 맹렬하게 하는 척하더니 입맛 없어서 싫단다. 2년을 봤는데 입맛 없는 건 처음이다.


수업이 끝나고 한참을  때리더니 내게 왔다. 선생님, 4 장학생 되고 매달 생활비까지 받으려면 수능을 얼마나  봐야 할까요? 네가 가려는 대학엔 수시는 지역 고교 우수자 장학금이랑 정시는 입학성적우수장학금 있어. 계열 수석  차석 정도 해야 하지 않겠니? 요즘은 성적장학금은 줄어드는 추세야 근데 국가장학금 제도가  되어 있어서 신청하면  거야. 근데 생활비는  줄텐데...  그럼 여기서 아르바이트하는 걸로는 모자라겠죠...  재테크도 해야 하거든요(어랍쇼... 알바를 시키겠다는 언질을  적이 없는데.. 김치를 절이기도 전에 김칫국 마시기)... 오늘부터 남아서 늦게까지 공부하고 갈게요. 제가 그동안 많이 놀아서 시간이 부족하거든요. .. .. 알았어.. 그래도 가끔 헤드락은 하면  ...


같이 다니는 친구들에게 너네 공장의 매점 운영권 하나 받아 매점 주인하며 살면 만고 짱이라고 너스레를 떨어 기가 차게 하던 아이의 눈빛이 달라졌다. 말은 그렇게 해도 속 깊고 인정 많고 통찰력 있는 거 다 알았지만. 오감자 칠리소스 맛을 먹을까 바비큐 맛을 먹을까 치토스 매운맛을 먹을까를 두고 고민하고 보석 사탕을 사 먹고 플라스틱 목걸이를 내 목에 걸어주는 장난스러운 소년을 180도 바꾼 건 40대 아버지의 갑작스러운 실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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