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 이름을 지어 준다는 건
어느 날 부터인가 고향집 아파트 단지에 고양이들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는 엄마의 말.
그 말을 들을 때 까지만 해도 지금 이렇게 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3년 전 가을, 일교차가 부쩍 커지기 시작할 무렵 고향에 내려갔을 때 엄마의 말대로 아파드 단지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있었다. 치즈 태비를 가진 고양이 둘, 고등어 태비를 가진 고양이 하나. 고양이를 원래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냥 지나칠 수 없었고, 고양이 간식부터 먹다 남아 포장해 온 닭백숙까지 길 아이들의 차지가 되었다.
그 해 대입을 준비하던 동생의 대학 입시 논술고사장에서 엄마와 나는 무료한 시간을 때우며 고양이들의 이름을 지었다. 나도 알았다. 이름을 짓는다는 것의 의미를.
고양이를 정말 사랑하지만 길고양이들에게 정을 주는 일이 무서웠다. 고양이들에게 이름을 붙여준다는 것은 더이상 녀석들이 그냥 고양이가 아니라 내가 이름을 붙여 준 특별한 고양이가 된다는 의미니까. 유독 정이 많은 내가 니 이름을 지어주기로 마음 먹은 걸 보면, 어쩌면 우리는 원래 가족이 될 운명이었던건가 싶을 때도 있다.
치즈 태비에 너구리꼬리, 유난히 반짝이는 눈망울을 가지고 사람을 보면 꼬리를 빳빳하게 세우고 달려오던 고양이는 ‘라떼’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또 다른 꼬리가 짧은 치즈 태비 고양이는 '카레', 고등어 태비 고양이는 '만냥이'가 되었다.
나중에야 알게 되었지만, 우리 가족을 제외한 아파트 주민들은 라떼를 아파트의 이름을 따서 '현대'라고 부르고 있었다. 고양이에 별 관심 없던 엄마도 말했다. 애 이름을 아파트 이름으로 짓는게 어딨어 정없게.
흔한 이름이라고 해도, 짓기까지 몇 시간동안 고민하고 의견을 주고받은 이름이어서 그런지 나는 라떼라는 이름이 마음에 쏙 들었다. 라떼도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 듯 이름만 부르면 달려오곤 했다.
무슨 일인지 이름을 지어주고 바로 다음부터 카레는 아파트에 나타나지 않았다. 더 좋은 곳에 정착했을거라며 가족들과 애써 웃어보였지만, 나는 바로 고양이들의 이름을 지어준 것을 후회했다.
그 뒤로 라떼와 만냥이를 만날때 마다 말했다. 어디 가면 안돼. 밖에 차도 다니고 위험해. 사라지면 안돼.
추운 겨울이 다가오면서, 가족들의 고민과 걱정은 깊어졌다. 고양이들에게는 이름이 생겼고, 정 붙일 공간이 생겼고, 우리 가족은 자연스럽게 라떼와 만냥이의 밥을 챙겨주게 되었다.
사람에 대한 경계심이 많은 만냥이와 달리 라떼는 흔히 말하는 슈퍼 개냥이였다. 싫다는 엄마한테 온 몸을 부비며 애정표현을 하고, 먹을 것만 있다면야 누구에게나 덥썩덥썩 안기는. 나 역시 애교만점 라떼에게 반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한편으로는 사람에게 경계심이 없는 라떼가 혹여나 누군가에게 해코지를 당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라떼와 우리 가족이 처음만난 그 가을.
그 날의 온도는 영상 10도씨 쯤 되었을 것이다. 아직은 따뜻한 햇볕 아래, 나름대로 정착할 집이 생겼던 너의 마음도 춥지 않은 계절. 우리가 가족이 될거라는 사실은 너도, 나도 몰랐을 것이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