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도씨 : 본 투 비 여왕

1. 자비로운 대장냥

by 글쓰는 최집사

사실 이 녀석들을 처음 만났을 때, 만냥이를 대장냥이라고 생각했다. 보통 같이 다니거나 공동의 영역을 공유하는 고양이들 사이에는 엄연히 서열이 존재하기 마련인데, 첫 인상으로는 만냥이가 라떼보다 서열이 높다고 생각한 것이다.

첫 만남에 내가 가져 온 간식을 만냥이가 제일 먼저 당당하게 받아 먹었고, 라떼는 뒤에서 가만히 쳐다만 보고 있길래 직접 다가가입에 넣어주었다. 보통 고양이들은 서열이 가장 높은 아이가 먼저 밥을 먹으니 당연히 만냥이가 대장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었다. 라떼가 눈빛 하나로 동네 고양이들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기 전까지는.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녀는 본 투비 여왕이었다. 으르렁 한 번 없이 동네 고양이들이 저절로 따르게 만드는 우아한 여왕님.

사람 앞에서는 애교만땅 상개냥이가 따로 없는 라떼에게 그런 포스가 있을 줄이야. 라떼는 강강약약의 진수를 아는 아량이 넓은 대장이었다. 스스로 대장냥으로서의 권위를 뽐내기보다, 고양이들로부터 인정받는 방법을 아는 고양이. 라떼는 우리 아파트의 대장냥이었다.

게다가 그녀는 근방 동네 고양이들을 포함해 거의 유일한 암컷 고양이었고, 언제나 수컷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마음에 드는 녀석은 같이 볼도 부벼주고, 성에 안 차는 녀석에게는 도도하게 꼬리를 탱 치며 돌아서기도 하는 너란 여자.


함께 영역을 나누며 살아가고 있는 만냥이에게도 때로는 엄마같이 다정하게, 때로는 개구진 친구처럼 서로서로 의지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 유일하게 간식 먹을 때 빼고.

간식먹을 때 만큼은 라떼는 짐승이다. 언제든 먹을 수 있는 사료는 얼마든 만냥이에게 양보하지만 간식이나 습식캔은 그렇지 않기에, 항상 공평하게 다른 그릇에 나누어 멀찍이 떨어뜨려놓고 줘야 했다.


KakaoTalk_Photo_2020-01-15-22-08-53.jpeg 맛있는 간식은 꼭 라떼와 만냥이 따로따로 멀찍이.

라떼와 만냥이. 치즈와 고등어 고양이가 우리 아파트에 눌러 앉게 된 지 한 달 정도 된 시기였다. 유독 한파가 심했던 겨울이 시작되면서 우리 가족들의 마음도 더 바빠졌다.

잠깐만 내 놓아도 물이 얼어버리는 탓에 아침 저녁으로 아이들의 마실 물을 데워서 챙겼다. 추워지는 날씨만큼 가족들의 걱정도 커질 무렵, 아파트에 새로운 고양이가 눈에 띄기 시작했다.


태어난 지 2,3개월? 정말 주먹만큼이나 작은 회색 고양이였다. 온 몸이 회색이고 앞발에 만 흰 덧버선을 신은 아기고양이. 무슨 사연이 있었기에 이 추운 날, 저렇게 어린 나이에 독립을 했을까. 녀석은 조심스럽게 우리 아파트에 발을 들여놓았다.

라떼와 만냥이가 평화롭게 지내고 있는 영역 안으로 낯선 고양이가 들어오게 되면 혹 내치지는 않을까 걱정했던 것이 무색하게, 자비로운 대장냥이 라떼는 아기고양이를 식구로 받아주었다. 라떼가 받아주자 자연스럽게 만냥이와도 가깝게 지냈다. 아기고양이는 라떼가 먹던 사료를 먹고, 물을 마시고, 라떼 옆자리에서 그루밍을 했다.


꼭 자기 새끼 키우는 것 같네.


엄마가 흐뭇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회색 아기고양이의 이름은 앙팡이가 되었다. 앙팡지게 잘 크라는 의미로 엄마가 지어준 이름이다. 그렇게 현대아파트 식구는 라뗴, 만냥이, 앙팡이. 세 식구가 되었다.

KakaoTalk_Photo_2020-01-19-19-02-21.jpeg 햇살아래 간식 먹는 앙팡이

본격적으로 함께 겨울을 맞이하게 된 세 고양이. 그 겨울은 나에게는 길고양이에 대해 가장 많은 생각을 하게 한 시간이었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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