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0도씨 : 여행도 마음대로 못 가는 신세

3. 솔직히 말하면 우리 고양이도 아닌데 말이지

by 글쓰는 최집사

겨울은 더디 지나갔다. 한파는 계속됐고, 사람 걱정하기도 바쁜 마당에 고양이들 걱정이 더해졌다.


당시의 나는 대학생이었기 때문에 겨울방학을 이용해 고향 집에 오래 머물곤 했다. 그 해 겨울도 처음으로 유럽 여행을 떠났던 3주간의 시간을 제외하고는 고향집에 주로 있곤 했다. 아무래도 아파트 삼냥이 덕이 컸다.

서울에 있어도 마음은 청주에 있었다. 특히 우리 식구가 삼냥이 밥을 책임지면서, 삼냥이가 아파트에 제대로 눌러 앉기 시작하면서 이제 빼도 박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그래, 이래서 이름을 함부러 지어주는게 아니었다까.

나의 첫 유럽여행의 매일 첫 일과는 가족 단톡방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라떼와 만냥이, 앙팡이에게 밥을 주면서 엄마, 아빠가 찍은 동영상과 사진을 보기 위해서였다. 한국은 별 일 없는지 매일 밤 네이버를 들락거렸다. 날씨를 가장 먼저 확인했다. 올 겨울들어 가장 추운 날씨라는 말에 한 숨이 저절로 나왔다. 비교적 따뜻한 유럽에서 부모님의 안부를 먼저 물어야 하는데, 고양이들은 괜찮은지, 겨울집은 문제 없는지 먼저 물었다.

여행가서도 길고양이들이 잘 지내는지가 마음에 걸릴 지경이었으니.


우리 가족과 일부 고양이들에게 우호적인 이웃들 덕에 정작 고양이들은 꽤나 편안하게 지내는 듯 보였다. 아파트 화단의 겨울집 만이 고양이들에게 허락된 공간이었는데, 이 녀석들이 날씨가 추워지자 아파트 현관으로 들어와 지하실에 숨어들기 시작했다.

이걸 알게 된 우리 가족은 행여나 이웃들이 고양이들을 쫓아내지 않을까 조마조마했지만, 대부분의 이웃들은 고양이들이 찬 칼바람을 피해 지하실에 숨는 것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밤새 폭탄 맞은 듯한 겨울집^^;;


그래서일까, 아파트 삼냥이들은 구김살 없는 어린아이들처럼 쑥쑥 자라났다. 이미 어른 고양이인 라떼와 만냥이도 그렇지만 역시 아기고양이인 앙팡이가 더 그랬다. 아기들은 자고 일어나면 큰다고 하던가. 앙팡이를 보건대 그 말은 진짜였다.

여전히 사람을 경계했지만 생후 3개월령 즈음 아파트에 찾아온 회색 아기고양이 앙팡이는 겨울 동안 바닥이 나지 않는 사료와 따뜻한 박스 집에서, 사람과 고양이들의 사랑을 함께 받고 자라났다. 외모도 그렇고 성격도 그렇고 어려도 젊잖은 신사같은 구석이 있는 앙팡이가 아침에 겨울집을 다 뒤집어놓고 놀고 있는 모습을 보면 내 새끼가 크는 것 같이 뿌듯했다.



앙팡이랑 천연 캣타워에서 놀아주는 라떼. 앙팡이는 유독 라떼를 잘 따랐다.


고양이들이 아파트를 점령하며 겨울을 보내는 사이, 우리 가족은 여행도 마음놓고 못 가는 신세가 되어버렸다. 나야 서울에 거주하고 있으니 학교며 일이며 여러 핑계로 책임을 면할 수 있었지만, 당장 매일 아침 고양이들의 밥을 책임지고 있는 부모님의 부담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길고양이 좀 챙기는 일이 이렇게 무거운 일이었다니. 하루 한 번 밥을 채워주고 하루 두 번 물을 주는 일이 이렇게 책임감이 따르는 일이었다니. 게다가 이 녀석들은 우리 고양이도 아닌데.


부모님께서 1박 이상 출장이든, 여행이든 떠나시기 위해서는 내가 고향 집에 있어야 했다.

하루 건너 뛴다고 큰일 안나지. 다른 이웃들도 종종 먹을 것을 주곤 하니까. 밥을 두 배로 놓고 갔다오면 될거야.

머리로는 괜찮을거라고 고개를 끄덕이지만, 그렇게 하루 고양이들을 못 만나면 그 날 밤은 녀석들 생각에 잠을 못 이룬다. 너희들이 대체 뭐길래. 길고양이에게 이렇게까지 책임감을 갖게 될거라고는 우리 가족 그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의 어깨가 무거워지면서 그 겨울은 지나가고 있었다. 우리의 어깨가 무거워지는 만큼 아파트 삼냥이들은 편안하게 지냈고, 그 모습에 '그걸로 됐지.'하며 뿌듯했다. 모든 것은 좋아 보였다.

날씨가 풀려갈 무렵, '설마'가 사람을 잡기 전까지는.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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