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도씨 : 만삭 길고양이의 슬픔

5. 임신묘 배려석은 없나요?

by 글쓰는 최집사

고양이의 임신기간은 약 60일. 라떼는 따뜻한 봄 햇살이 가득 할 4월 말 경 출산을 할 예정이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는 3월, 나는 서울로 올라가 대학생으로서의 마지막 해를 마무리 해야 했고, 역시나 라떼를 비롯한 아파트 삼냥이를 돌보는 일은 엄마와 아빠에게 주로 맡겨졌다.


사진으로 전해지는 라떼의 모습은 4월에 접어들며 눈에 띄게 달라졌다. 볼록하게 솟아오른 배가 누가봐도 임신묘임을 알 수 있었고, 볼록한 배와 상반되는 다소 수척한 얼굴이 안쓰러웠다.

이제 우리 가족 뿐 아니라 아파트 주민들이 모두 라떼의 임신을 알게 되었다. 아파트 삼냥이에게 남다른 호의를 보이며 잘 챙겨주셨던 우리 아랫집 아주머니 역시 캔 간식을 챙기며 라떼를 살뜰히 챙겨주셨다. 대부분의 주민들이 배가 부른 라떼를 보며 챙겨주지는 않아도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주었지만, 간혹 고양이를 싫어하는 주민들은 불편한 시선을 보내곤 했다.


고양이가 늘어난다니, 지금 세 마리도 너무 많다. 아파트에서 밥을 챙겨주는 바람에 밖에 있던 고양이들까지 꼬이고 있다. 밤마다 고양이들 소리에 잠을 못 잔다.

세상 사람들이 모두 고양이를 좋아할 수는 없지만 얼굴은 야위어가고 배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는 라떼를 보며 그 아이를 미워할 수 있다는게 슬펐다. 녀석은 그 사람이 자기를 싫어하는지도 모르고 부른 몸을 이끌고 머리를 부비는데. 냉정하게 다리를 뻗어 만삭의 아이를 밀어내 버리는 사람들이 미웠다.


흙밭에서 뒹굴고 아스팔트 바닥에서 잠을 청하는 길고양이가 꼬질꼬질한 건 당연하지만, 배가 불러오면서 그런 라떼의 모습은 더욱 안쓰러웠다. 라떼를 위해 마련해주는 상자집이며, 영양간식들은 종종 누군가에 의해 가차없이 버려졌고, 단지에서 보이지 않는 라떼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면 무거운 몸을 차 아래 누인 채 힘없이 대답하는 녀석의 모습에 왠지 모르게 가슴이 찡해왔다.


차 아래서야 그나마 편안하게 쉬는 만삭의 라떼


물론 그런 라떼에게는 든든한 지원군도 있었다. 라떼가 다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앙팡이는 아직 어렸지만 무럭무럭 키가 자라 제법 든든한 태를 뽐냈고, 언제나 라떼 뒤에 숨어 있던 만냥이도 라떼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주었다.

그래도 하나가 아닌 여럿이라서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세 녀석이 한 곳에 뭉쳐 잠이 든 모습을 보면 봄이 다가오는 것과는 별개로 마음이 따뜻하고 든든해졌다.


임신묘를 에스코트하는 듬직한 고양이들


우리는 지지 않고 라떼를 위한 자리를 만들어주었다. 아파트 화단에는 다시 한 번 따뜻한 쿠션과 담요를 넣어 라떼를 위한 박스 집을 만들어 주었고, 임신묘를 위한 배려를 부탁하는 글을 남겼다.

임신하면 원래 힘든거지만, 길냥이는 백만배 힘들구나. 지쳐서 잠이 든 라떼를 쓰다듬으며 생각했다. 우리가 널 꼭 지켜줄게. 니가 편안하게 아이들을 낳고 쉴 수 있도록 꼭꼭 지켜줄게.


라떼의 출산일이 다가오면서 우리 가족은 또 하나의 결심을 했다. 라떼가 아이들을 낳으면 젖을 뗀 후에 구조해서 입양을 보내자. 어차피 아이들이 어느정도 자라면 독립을 할테니까. 아파트 냥이가 늘어나는 것은 주민들의 불만을 사는 일인데다가, 충분히 집냥이로 사랑받을 수 있는 아이들을 길냥이로 살게 할 수는 없었다. 그리고 아파트 삼냥이는 꼭 중성화 수술을 해주자. 라떼가 수유를 해야 하니 시기는 미정이지만, 어찌됐든 후속 조치가 반드시 필요하다.


벚꽃이 피고, 일교차가 점점 줄면서 비로소 진짜 봄이 오는 듯 했다.

4월 28일, 그 봄. 꽃 송이와 함께 라떼에게도 예쁜 꽃들이 다섯송이 찾아왔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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