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도씨 : 치즈, 치즈, 치즈, 치즈, 그리고 삼색이

6. 강력한 유전자의 치즈 가족

by 글쓰는 최집사

라떼 2세들은 유난히 더 빛나고 따뜻했던 날 태어났다. 2016년 4월 28일.

그 날 나는 학과에서 학술답사를 떠나있었다. 유난히 빛나는 날씨 속에, 엄마에게서 카톡으로 라떼 2세들의 모습을 전달받았다.


밤 사이 라떼는 너무나 작고 소중한 생명 다섯을 우리가 만들어 준 박스 집에 무사히 출산했다.

아침에 엄마가 나오자, 밤 사이 어딘가 달라진 라떼가 반갑다며 머리를 부볐고, 밥을 주러 가 보니 박스에 꼬물이 다섯이 삐용삐용소리를 내며 자기들끼리 엉겨 붙어 허우적 대고 있었다고 한다.


05733F4F-E6DD-473B-91FD-581B57A0F71C_1_105_c.jpeg 반갑다냥!! 고개를 든 녀석은 아가때부터 강력한 이마 태비를 뽐낸 "유자"다.


엄마는 곧바로 녀석들의 모습을 영상으로 찍어 카톡으로 공유해주었다. 답사 중 마주한 라떼 2세들은 나를 당장 청주 집으로 뛰어가고싶게 만들었고, 동시에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빵빵 터지게 했다.


근데, 다섯 마리 중 네 마리가 치즈네?!

너무나 강력했던 라떼의 치즈 유전자. 다섯마리 아기들 중 네 마리는 완벽한 치즈였고, 한 마리는 치즈와 고등어가 반 섞인 삼색이었다.


우리는 라떼 2세들의 아빠가 누군지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의외로 그건 늘 곁에 함께 지냈던 만냥이가 아니라, 외부에서 종종 밥을 먹으러 아파트에 들어오곤 했던 다른 고등어 냥이였다. (사실 라떼는 한 번도 만냥이를 남자로 인정해주지 않은 것 같다ㅋㅋ)

근방 고양이들 사이에서 '여왕님'으로 통하며 콧대 높고 도도한 고양이였던 라떼는 수컷 고양이들 사이에서 언제나 인기 만점이었다. 다른 수컷 냥이들에게는 코웃음을 치며 근처에 오는 것도 허락하지 않던 라떼가 유독 그 고등어냥이 녀석만은 내쫓지 않았다. 둘이 밤에 붙어다니는 것을 봤다는 주민들도 많았고, 우리도 녀석이 라떼를 졸졸 쫓아다니는 것을 자주 봐왔기 때문에 녀석이 애들아빠일거라고는 생각하고 있었다.


(엄마는 그 고등어냥이를 보고 라떼가 보는 눈이 참 없다고 했다. 그리고는 녀석의 유난히 커다란 무언가를 보고는 '방울이'라고 불렀다ㅋㅋ)


E0910010-C7DC-424F-8395-DDAF03907AF4_1_105_c.jpeg 밖으로 나오려는 아가 치즈(아마도 입양 간 "모카")와 막으려는 엄마 치즈 "라떼"


라떼는 엄마가 끓여준 간이 안 된 황태 미역국과 영양식을 잔뜩 먹고 다시 박스로 돌아가 새끼들을 햝고 젖을 먹였다.

한 마리, 한 마리 자세히 살펴보자 조그만 꼬물들이 주제에도 다들 각자의 개성이 있었다. 온 몸이 노란 치즈 털로 덮인 아기가 두 마리, 라떼처럼 흰 바탕에 치즈 태비가 있는 아가가 두 마리, 완벽한 삼색이까지. 어떤 녀석은 태어난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밖에 나와보려고 삐용거리고 어떤 녀석은 박스 가장 안쪽에 숨는다.

어찌됐든 아직은 고양이 구실을 하지 못하는 꼬물이들이라, 자기들끼리 엉기고 쌓여서 끊임없이 삐용댄다.


D1C127A8-75D0-4E85-B4A7-83408C79E99D_1_105_c.jpeg 고생했어 라떼야~

사람도 자식이 생기면 비로소 정말 '어른'이 된다고 하는데. 고양이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평소처럼 밥 달라고 보채거나 어리광을 부려도, 이전과는 달리 라떼가 한층 어른스럽고 듬직해 보였다. 겨우내 오동통하게 쪘던 살이 출산을 하고 수유를 시작하자 몰라보게 빠지기 시작했다. 다섯 아이들을 물리느라 젖은 점 점 퉁퉁 부었고, 젖 주변의 털은 모두 빠졌다.


수척해진 얼굴로 우리를 맞이하는 라떼를 보고 있자니 마음 한 켠이 짠하고 대견한 마음이 들었다. 하루 종일 아가들을 돌보느라 정신없는 녀석을 불러내 맛있는 것을 먹이고, 아이들로부터 쉴 시간을 만들어주고, 라떼가 제일 좋아하는 턱과 목 긁어주기를 하는 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전부였다.

아가들을 돌보는 건 온전히 라떼에게 맡겨진 일이었고, 우리는 그런 라떼를 돌봐주는데 집중했다.


458E4E0E-66C5-446C-A040-1185ECCB2FA1_1_105_c.jpeg 차곡차곡 쌓인 치즈 덩어리들:) 생후 1일!

라떼 2세가 태어나고(무려 5마리나) 아파트의 풍경은 달라질 수 밖에 없었다. 라떼가 경계를 하는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고양이들이 자발적으로 피해주는 것인지 만냥이와 앙팡이는 이전만큼 아파트에 오래 머물지 않았다.

앙팡이는 제법 큰 티를 내면서부터 아파트 밖으로 외출하는 날이 많아졌지만 라떼의 아이들이 태어나고부터는 더 그랬다. 만냥이 역시 아파트에서는 밥만 먹고 사라지곤 했다.


우리 가족 역시 라떼와 라떼의 2세들 뿐 아니라 만냥이와 앙팡이 모두 잘 챙겨주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지만, 녀석들의 얼굴을 보는 것도 쉽지 않았다.

게다가 아무래도 새끼고양이들이 생기고 나니 아기들의 안위에 더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었다. 아가들이 최소한 수유를 마칠 때 까지는 우리가 라떼와 아이들을 신경써서 지켜주어야 했다. 출산하면서 더러워진 박스를 새 것으로 바꿔주고, 더 폭신한 담요를 준비해주었다. 어떻게 하면 사람들 눈에 크게 띄지 않고 라떼가 안심하고 아이들을 돌볼 수 있을까.


우리의 고민이 이어지던 중, 라떼는 고민을 실천으로 옮겼다.

출산한지 며칠이 지나지 않은 아침, 우리가 만들어 준 박스 집에서 아기고양이들이 몽땅 사라졌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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