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도씨: 지하실 고양이 가족

7. 불안한 건 너무 잘 알겠는데 말이야

by 글쓰는 최집사

아기냥이들이 몽땅 사라졌음을 확인한 우리 가족은 온 아파트를 다 뒤지기 시작했다.

아직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는 꼬물이들이 단체로 소풍을 떠났을리는 없고, 보나마나 엄마인 라떼가 밤새 아가들을 물고 어디론가 옮겨놓은 것이 분명했다.


다른 라인의 화단 깊은 곳, 라떼가 자주 다니는 파지함 근처. 여기저기 아이들을 옮겨놓았을 법 한 곳을 찾아 조심스레 살펴보았다. 분주한 우리 가족을 태연히 바라보는 라떼가 왠지 얄밉기도 하면서, 얼마나 불안했으면 그랬을까라는 생각에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06C08A2A-60CC-4A4E-83AD-40015877526D_1_105_c.jpeg 만냥이랑 술래잡기 놀이 그만하구 애기들 좀 데려와ㅠㅠ


설마 누가 밤사이에 아이들을 모두 데려가 버린 건 아닐까.

별의 별 안좋은 생각까지 다 들기 시작했다. 태연하게 앉아있는 라떼에게 사정도 해 보았다.


"니가 아이들을 옮긴거지? 나쁜 사람이 와서 애기들을 데려가거나 그런 건 아니지?? 응? 라떼야."


아가들의 안위가 걱정 돼 몸이 다는 우리 가족에게 라떼는 연신 맛있는것을 달라고 야옹거리기만 한다. 나쁜 생각을 지워버릴 수 없는 와중에, 문득 지난 겨울을 라떼와 만냥이, 앙팡이가 아파트 지하실에서 종종 보냈던 것이 생각났다.

우리 아파트 지하실 철문과 바닥 사이는 약 손 한 뼘이 좀 안 되는 정도의 좁은 틈이 있다. 라떼가 만삭이 되고 부터는 배가 커져서 그 사이로 드나들지 못했지만, 이전까지는 줄곳 그 틈 사이로 지하실을 들락거리곤 했다.


178FC0C0-C13A-4A1E-8EE2-295CD65F1430_1_105_c.jpeg 아닌 척 세수 그만하고 애기들 좀 데려와라아ㅠㅠ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아파트 화단이 불안했던 라떼가 아이들을 지하실로 데려갔을 수도 있다. 곧바로 지하실을 내려다 보았지만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우리 가족은 사료와 물을 지하실 앞에 옮겨두었다. 라떼가 지하실을 육묘실로 쓰고 있다면 분명 아이들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예상은 적중했다. 라떼는 지하실에서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을 물고 밖으로 나오지는 않았지만 꽤나 자주 지하실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이 포착되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우리가 밥을 주기 위해 지하실로 내려가자 라떼가 지하실 문틈을 바라보며 뭐라고뭐라고 외계어를 내뱉었다. (뭐라 표현할 수 없다. 정말 외계어같으니까.) 그리고 지하실 안쪽에서는 삐용삐용, 라떼의 목소리에대한 병아리들의 대답이 들려왔다.


라떼야, 많이 불안했어?

아이들의 행방을 확인 한 우리는 라떼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물었다. 우리는 너희를 지켜주려고 노력했는데. 그래도 불안 할 수 있겠구나.


아이들이 모두 잘 있는지 궁금했지만 여기서 공연히 문을 따고 들어가거나 하는 짓은 라떼에게도, 아이들에게도 큰 위협으로 느껴질게 분명했다. 가뜩이나 불안한 마음에 아이들을 이곳으로 옮겼을텐데.

그래. 엄마인 니가 어련히 알아서 아이들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지 않겠니. 그런 생각으로 라떼의 육묘가 편할 수 있게 지하실 쪽에 사료를 주기로 했다.


라떼의 지하실 육묘는 오랜시간 지속되었다. 아이들이 좀 크면 데리고 나오지 않을까 생각했지만, 그로부터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다 되어가도록 라떼는 완벽하게 아이들을 숨겨 돌봤다.


"이러면 안되는데. 아이들 입양도 보내야 하고..."


라떼의 불안한 마음은 잘 알지만 이러다가 아이들을 구조해 입양을 보낼 시기를 놓치게 될까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결국 사람 손은 한 번도 타지 않고 경계심 많게 자란 아이들을 과연 구조해서 입양 보낼 수 있을까.

걱정만 커지는 와중에 아이들은 라떼의 정성에 무럭무럭 자라 라떼의 사료까지 오독오독 씹어먹기 시작했다.


52A21C66-9738-4F6A-AE68-91C6EBEF9D97_1_105_c.jpeg 가까이가면 도망갈까 엄청 줌 땡겨서 찍은 화질구지 사진. 엄마랑 사료 까독까독
28AFF276-1257-4979-8046-C4EEBB4871E6_1_105_c.jpeg 자기보다 큰 밥그릇에서 먐먐
16635E42-94C0-446B-8142-B27BA39F35FD_1_105_c.jpeg 유자랑 모카랑! 서로 먹겠다고 다투는 오동통한 궁디는 사랑


유독 짧아진 봄은 그새 여름으로 넘어 갈 준비를 하고 있었다. 라떼와 아이들은 무려 2달이라는 시간을 지하실에서 보냈다. 사실, 이건 전혀 예상치 못한 부분이었다.

라떼가 사람을 따르는 개냥이였기 때문에, 자신에게 밥을 주는 우리에게 기꺼이 아이들을 허락할 줄 알았다. 왜, 고양이는 공동육아를 해서 사람한테도 육아를 맡기기도 한다길래.

아무리 개냥이어도 길냥이인 라떼의 마음을 우리가 너무 몰라주었다. 길 위의 많은 것들이, 사람들이 라떼에게는 위협이었을 텐데. 그 위협들이 자신의 아이들에게도 느껴질까봐 두려웠을텐데.


언제쯤 구조를 해야 하나. 구조를 할 수는 있을까. 구조를 하면 라떼는 중성화 수술도 해야한다. 시청에 알아보니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을 연계해 진행하고 있는 동물병원을 알려주며 그쪽으로 문의하라 한다. 으, 뭐 하나 쉬운게 없구나.


그러던 중 또 다시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라떼 2세 5마리 중 삼색이 아기냥이를 아파트 청소부 아주머니께서 데려갔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이다. 경비실에 연락처를 물어 아주머니께 연락을 드렸다. 때가 되면 아기들을 분양보내려고 했던 것은 맞지만 이런 식의 납치는 아니었다. 게다가 과연 잘 키우실 수 있을지 걱정됐다.

아주머니는 고양이들이 지하실에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지하실로 들어갔다가 삼색 고양이가 너무 예뻐서 키우기 위해 데려갔다고 했다. 남편분이 벌써 고양이를 위해 손수 캣타워를 만들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잘 키우겠다는 아주머니의 호언장담에 다시 고양이를 돌려놓으라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굳이 지하실 문을 열고 아이를 납치하듯 데려간 것에 대해서는 부주의했다고 말씀드렸다. 아이를 집냥이로 잘 키워 줄 것, 중성화 수술을 꼭 시켜줄 것, 끝까지 책임질 것 등을 당부드리는 수 밖에 없었다.


그리고 걱정했던대로, 라떼와 아이들의 사람에 대한 경계는 극도로 심해졌다. 아이들은 더 이상 밖으로 나오지 않았고, 라떼 역시 아기 한 마리를 갑자기 잃게 된 것에 대해 상심이 큰 것 같았다.

여름이 다가오면서 이번엔 고양이에 대한 민원이 속출하기 시작했다. 지하실에 있는 녀석들의 배설물 냄새가 올라온다고, 더 더워지면 참을 수 없다고.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지하실에서 모두 내보내야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왔다.


이젠 더 이상 구조를 미룰 수 없었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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