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도씨: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다.

4. 그냥 살이 찐 줄 알았지

by 글쓰는 최집사

겨울 추위가 가시고, 낮 기온이 높게는 10도까지 올라가기 시작했다. 아직 봄이라고 하기에는 추운 날씨였지만, 고양이들에게는 충분히 좋은 날이었던 것 같다. 이 즈음 부터 아파트 삼냥이는 아파트에 머무는 시간보다 사방으로 돌아다니는 시간이 더 많아지기 시작했다.


만냥이는 추운 겨울이 오기 전처럼 아파트에서는 주로 밥을 먹고, 잠은 주택가에서 청하는 날이 많아졌다. 겨울 사이 무럭무럭 자란 앙팡이도 아파트 밖으로 외출하는 일이 많아졌다. 라떼는 주로 아파트 안에서 활동을 했지만, 가끔씩 아파트 담장 너머 먼 골목 쪽으로 멀어지는 뒷모습을 발견할 때면, 왠지 조마조마 한 기분이 들어 애타게 녀석의 이름을 부르곤 했다.

아파트 삼냥이 중 유일하게 자기 이름을 알아듣는 것 같았던 라떼는 내가 부르는 소리에 뒤를 돌아보고는 마치 '걱정말라옹'하듯이 '야옹' 울고는 가던 길을 마저 갔다.


날씨가 따뜻해지면서 고양이들이 모두 긁어서 지저분해 진 겨울 스티로폼 집을 치우고, 종이박스 집으로 바꿔주었다. 여전히 우리 식구들이 고양이들의 밥을 챙겼지만, 물도 아침에 한 번만 채워주면 밤 새 얼지 않을만큼 따뜻해져 녀석들을 챙기는 일은 겨울 동안보다 더 수월해졌다.

길고양이의 겨울은 다른 계절보다 더 쉽지 않은 시기인 만큼, 우리는 이전에 주던 것 보다 더 많은 양의 사료를 챙겨주곤 했다. 집고양이 부럽지 않게 먹이고싶어 좋아 보이는 습식 사료와 간식 파우치들이 보이면 아파트 삼냥이를 위해 사기도 하고, 온 가족이 먹다 남은 백숙은 포장해 와 한 번 더 끓여 삼냥이들에게 주었다.


너무 잘 먹인 탓일까. 성장기인 앙팡이는 먹는게 다 키로 갔지만, 성묘인 라떼와 만냥이는 보기 흐뭇하게 포동포동해졌다. 비록 꼬질꼬질한 외양이었지만, 길냥이 치고 통통하고 건강해 보이는 고양이들의 모습에 자식농사 잘 지은 부모의 마음을 알 것 같았다. 요녀석들은 살이 쪄도 귀여운게 반칙이란 말이지.

그런데 라떼의 살찜이 조금 심상치 않았다. 원래 고양이가 이렇게 살이 찌나? 배만 이렇게 동그랗게 나오는건가.


왠지 무언가 달라진 것 같은 라떼. 설마, 설마...


이상함을 처음 눈치채기 시작 한 날, 여느때처럼 아파트 화단에 누워있는 라떼의 모습이 약간 부자연스러워 보였다. 내가 예쁘다며 쓰다듬자 라떼는 귀찮다는 듯 자리를 옮겼다. 옆으로 누워있는 라떼의 배가 유난히 도드라져 보이던 그 날, 괜히 이전보다 나를 피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던 그 날, 나는 그런 라떼를 졸졸 쫓아다니며 괜히 말을 걸었다.


"우리 애기 너무 많이 먹어서 살 쪘구나."


라떼가 임신을 했다는 것은 조금 더 시간이 지나서 확신하게 되었다. 설마 설마 했는데, 그 설마는 언제나 사람을 잡는다. 지금 돌이켜보니 나는 꽤 오랜 시간 이미 '설마'를 생각하고 있었다. 별로 티가 나지 않았는데도 불안한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살 찐 걸거야, 내가 너무 많이 먹여서. 그렇게 믿고 싶었다.


길고양이에 관심이 많았던 나는 이전부터 아파트 삼냥이의 중성화를 고려하고 있었다. 시 차원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을 지원해준다는 것을 확인하고 언제쯤이 좋을지 고민했다. 앙팡이가 아직 어리니, 1,2개월 정도 더 크면 한 번에 하는 것이 좋을까? 이 녀석들 포획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라떼야 사람 손을 타는 고양이니까 손 쉽게 잡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만냥이와 앙팡이는 사람이 1미터 안에 접근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데.


고민이 너무 길었던 걸까. 라떼는 이미 새로운 생명을 품게 되었다. 배는 점 점 더 커졌고, 원래 잘 보이지 않았던 젖이 조금씩 불어나 눈에 띄게 되었다. 우리 가족은 모두 벙찔 수 밖에 없었다. 설마가 사람을 잡았다. 아직 봄은 시작되지도 않았는데, 우리 아파트에 아깽이 대란이 시작 될 기미가 보였다.


그래도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늦었다고 탄식만 하고 있을 수도 없었다. 다음을 생각해야 했다.

라떼 2세들이 태어나면 어떻게 할 것인가. 몇 마리일까. 보통 3-5마리, 많게는 7마리 이상도 낳는다는데. 그 아이들이 이 아파트에서 잘 정착 할 수 있을까. 라떼가 아파트를 떠나면 어떡하지(어미 고양이들 중에 일부는 자식들에게 영역을 물려주고 떠나기도 한다), 아파트 사람들이 고양이가 많아졌다고 싫어하진 않을까, 새끼들을 낳으면 우리가 구조를 해서 입양을 보내는게 맞을까. 그럼 라떼는 어떡할까, 그래도 아기들은 엄마 품에서 커야 할텐데.


선택지는 많았지만,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확실한 건 라떼의 2세들이 태어나게 되면 많은 것이 달라지게 될 것이라는 사실 뿐이었다.

그 해 봄은 그렇게 예상치 못한 일이 터지면서 시작되었다. 라떼는 엄마가 되었고, 우리는 임신묘를 돌보는 가족이 되었다.








<고양이의 온도>는 고양이 라떼, 유자, 율무가 우리 가족의 첫 반려묘가 되기까지의 이야기를 그렸습니다. 길이라는 차가운 공간에서 만난 고양이라는 존재. 얼마나 뜨거운 마음을 가지고 있으면 그 차가운 길 위에서도 인간들에게 먼저 사랑을 건네줄 수 있었던걸까요.

라떼를 만나 변화 한 제 삶의 온도에 대해 이야기 합니다. 고양이를 키우시는 분들, 길천사들과 함께 하고 있는 분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고양이의 온도>는 매주 주말에 연재하겠습니다:)

많은 관심과 사랑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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