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이해할 수 있을까

김여사는 여전히 갱년기

by 글쓰는 최집사

김여사의 갱년기는 여전히 진행중이다.

앞으로 얼마나 더 강력해 질지 모를 미지의 적과 언제 끝날지도 모를 기약 없는 싸움을 하는 것 같다. 갱년기라는 단어를 백과사전에서 찾아보니 가장 먼저 등장하는 문장은 '성성숙기에서 노년기로 이행되는 과정'이란다. 도무지 우울하지 않을래야 않을 수 없는 정의. 이 긴 싸움의 끝이 노년기의 시작이라니, 싸움 뒤에 또 다른 싸움이 있는 기분이다.


사람들은 이 시간을 슬기롭게 극복해야 한다고 한다. 그런데 사실 어떤 것이 슬기로운 방법인지는 모르겠다. 그리고 꼭 반드시 '극복'하는 것이 정답인지도 모르겠다. 다만 이 싸움이 지리멸렬하고, 답답하고, 힘들고, 버겁더라도, 그 다음 싸움을 위한 대비가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의 욕심을 더하자면, 김여사도 나도, 김여사에 대해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이 됐으면 좋겠다고 바랬다.


김여사의 갱년기를 돌아보니, 김여사를 이해하고자 하는 나의 목표에 대해서는 절반의 성공과 절반의 실패인 것 같다. 김여사의 갱년기는 그냥 지나가는 평범한 일상에서는 쉽게 엄두를 내기 어려운 ‘엄마를 이해해보기’ 미션을 수행 할 절호의 타이밍이었고, 성공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다. 그러나 시작과 동시에 든 생각은, ‘내가 과연 김여사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날이 올까?’ 였다.


갱년기 엄마를 이해한다는 건,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고 말 할 수 있는 정말 몇 안 되는 분야인 것도 같다. 완전히 이해했다가 중요할까? 이해하기 위해 애쓰고 있는 과정이 중요하지 않을까.


스스로 자꾸만 이렇게 생각하며 위로하는 걸 보면, 어쩌면 영원히 김여사를 이해하지 못 할 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내 안에 있나보다. 모녀라고 해도 엄연히 나와 김여사는 다른 사람이고, 살아 온 경험치가 다르다. 여전히 나에게는 김여사를 향한 물음표가 가득하다. 내 생각으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하고, 내 경험치로는 알 수 없는 복잡한 생각들이 가득하다. 갱년기라는 시기가 끝날 때 쯤엔, 과연 나는 그녀를 향한 미션을 완수 할 수 있을까?


김여사는 일 속에서 주어지는 사회적 성취를 통해, 고양이들을 통해, 혹은 펭수를 통해 이 고비를 힘겹게 힘겹게 넘기고 있는 듯 하다. 급발진하는 감정의 변화 속에서, 조금씩 말을 듣지 않는 신체 변화 속에서, 나는 김여사가 지내 온 세월과 그녀의 머릿속 생각들을 이해하려고 여전히 애쓰는 중이다. 잘 하고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지만, 행위만으로도 가치가 있을 이 일들을 계속해서 해 나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