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아직까지는 괜찮네요.
코로나19의 영향으로 인한 경기침체는 꽤나 오래 갈 것으로 보이고, 취업시장의 전망 역시 좋지 않다. 이런 가운데(물론 이런 상황에서 한 결정은 아니고 이미 오래전에 내린 결정이지만) 퇴사했다. 멀쩡히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었다. 쥐꼬리만한 월급에 일은 빡셌지만, '4대보험이 가입 된 근로자'라는 자격을 포기했다.
김여사는 이런 나의 결정에 한 마디 말도 보태지 않았다. "퇴사하고 뭐 하게?"정도는 물어 볼 줄 알았는데 그런것도 묻지 않았다. 니가 어련히 알아서 하겠거니, 생각하는 듯 했다. 퇴사하려고 한다는 나의 말에 김여사는 그냥 "그래. 니가 뭘 하든 응원해."라고 덧붙였다. 역시. 우리 김여사는 멋져. 물론 속으로는 엄청 걱정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입장바꿔 내가 김여사였으면 걱정스러워서 잠을 설쳤을 것 같다. 김여사가 그날 잠을 설쳤는지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를 지지하고 응원해 준 것 만으로 감사했다.
퇴사를 결정할 때는 부모님 집에 와서 머물 계획은 아니었다. 김여사가 지나가는 말로 "이제 더 자주오나?"라고 은근한 압박을 주기도 했지만, 짐을 싸들고와서 살게 될줄은 몰랐다.
유자의 투병으로 인해 집에 사람이 필요하고, 아빠의 장기교육으로 부모님은 주말부부가 된다.(사실 코로나 때문에 이번주는 집에 계셨지만..) 그래서 최소 4월은 부모님 집에 주로 머물게 되었다. 아마 5월도 그렇게 될 것 같다. 현재 나의 삶의 기반 대부분은 서울에 있고, 때문에 다소 우울한 마음으로 부모님 집으로 내려온 지 일주일이 지났다. 부모님 집이 싫은 건 아니다. 난 가족과 사이가 좋은 편이고, 부모님이랑 같이 있으면 돈도 덜 들고 고양이들도 있고. 여러모로 행복하다. 다만 꿈꿔왔던 퇴사 직후의 나의 모습은 자유로운 영혼에 가까웠는데 지금은 자유와는 거리가 멀게 되었다는게 속상할 뿐.
부모님과 함께 한 첫 일주일은 매우 행복했다.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행복하고 즐거웠다. 어쩌면 아직 일주일밖에 지나지 않아서일지도.
어차피 코로나 때문에 놀러다닐 수도 없는 와중에 서울 집에 혼자 처박혀 있을 바에는 집에서 고양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함께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좋았다. 4월의 첫날인 만우절에는 정말 거짓말처럼 나의 보조작가님(맥북)이 사망하셨는데, 아빠가 새 보조작가를 구하는데 돈을 보태주셨다. 김여사는 함께 마트에 가서 먹고 싶은 걸 다 담으라고 했다. 먹고 쓰는 것은 뭐든 보태주겠다고 나서시길래 무슨 꿍꿍인가 했더니 "잘 꼬드겨서 최대한 오래 눌러앉게 하려고"하며 깔깔 웃으신다.
일주일간 집에 있으면서 제일 힘들었던 것 중 하나가 평소에 잘 챙겨먹지도 않는 밥을 매 끼니 한 그릇 가득 먹어야한다는거였는데, 부모님 집에 있으면서 할 수 있는 배부른 소리다.
나의 괴로움은 갱년기 부모님의 투닥임을 생중계로 봐야 한다는 것이 거의 유일했다. 낮에는 주로 코로나로 교육 날짜가 밀려 집에 계시는 아빠와 시간을 보냈고, 저녁에는거기에 김여사가 합세하는 패턴으로 일주일이 지나갔다. 그러다보니 나에게는 '낮에는 맞고 밤에는 틀린 일'과 '낮에는 틀리고 밤에는 맞는 일'이 종종 생겼다. 냄비받침을 보관하는 장소를 가지고 엄마와 아빠가 목소리를 높이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행복하다고 생각한 내 하루가 갑자기 허무하게 느껴지곤 했다.
그래도 내가 있으니 좀 더 낫다는게 부모님들의 말씀. 내가 없으면 대체 어떻게 되는건지.
이번 주말에는 짐도 가져올 겸사겸사 잠시 서울에 다녀올 예정이지만, 여튼 한 주도 부모님과, 고양이와 지지고 볶아야 한다. 아직까진 좋다. 이번 주말에는 내가 어떻게 말할지 모르겠는데, 일단은 좋다.
부모님도 고양이도 모두 잠 든 새벽에, 혼자 깨어 이것저것 하는 시간이 제일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