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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Apr 22. 2024

가족같다는 말 : 결혼하고 달라진 것

10년을 연애하고 결혼했다는 말에 가장 많이 돌아온 질문은,

“10년 연애하면 이미 가족이었을 것 같은데. 결혼하면 뭔가 달라요?”

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10년을 연애하면’에 방점을 찍으면, 당연히 다르다는 게 내 답변인데, ‘결혼하면’에 방점을 찍으면 또 엄청 다르지도 않다는 게 내 답변이다. 물론 부부마다 다르겠지만, 지극히 주관적인 입장에서 말하자면 나라는 인간과 생활 패턴은 달라지지 않았는데, 마음가짐이 조금 달라졌달까.


‘가족 같겠다’는 말은 이미 연애 7-8년차 때부터 최양이 들어 온 이야기다. 글쎄. 다른 커플들은 그 정도 연애하면 상대가 가족 같다고 느끼는지 모르겠는데 최양은 아니었다. 최양의 기준에 ‘가족 같다’는 말은 단순히 편하고, 익숙하고, 서로를 잘 안다는 의미가 아니었기에. 남자친구는 아무리 오래 만나고 가까워도 가족 같을 수는 없다는 게 최양의 생각이었다. 물론, 때로는 가족보다도 의지가 되고, 가족보다도 서로를 잘 아는 사이라고 느끼기도 했다. 사실상 최양이 성인이 되고부터는 가족과 지낸 시간보다 유군과 보낸 시간이 더 많았기에 당연한 일이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가족은 아니었다.

그러나 결혼식을 올린 순간, 두 사람은 이제 빼박 가족이다. 가족이 아니라고 우기고 싶어도 우길 수 없는 관계가 된 것이다. 결혼 생활을 시작하면서 최양은 비로소 유군이 가족 같다고 느끼게 됐다. 이제 최양의 제 1의 보호자는 유군일 것이며, 비상연락망에도 당연히 유군의 전화번호를 쓸 것이다. ‘관계’란에는 ‘남편’이라고 적힐 것이고, 무엇보다도 한 지붕 아래에서 생활을 공유하는 독립적인 공동체가 되었다. 완벽한 가족이다.


최양은 이런 생각을 할 때면 왠지 모르게 마음이 든든해졌다. 사람들에게 ‘남편’이라고 소개할 사람이 생겼다. 지친 몸을 이끌고 집에 들어가면, 역시 지친 몸으로 나를 반겨 줄 사람이 생겼다. 전화로 ‘고생했어, 잘 자.’라고 말하는 것과는 엄연히 다르다.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가는 것은 단순히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두 사람의 공동체를 위해서가 될 것이다. 이 관계는 법적으로 보호가 될 것이다. (비록 두 사람은 아직 혼인 신고를 하지 않았지만) 이것이 결혼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건가. 장기 연애와는 확연히 다른 기분이었다.


더 구체적으로는 뭐가 있을까. 최양은 결혼하고 4달 만에 3키로가 늘었다. 남들은 별로 티도 안 난다고 했지만, 근 7-8년 간 몸무게가 거의 변하지 않았던 최양에게는 엄청난 변화였다.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는데, 일단 먹는 것에 진심인 유군과 살다보니 한 끼, 한 끼 너무 열심히 먹게 되었다는 게 가장 큰 이유다. 순식간에 3키로가 찐 최양은 꽤나 큰 충격을 받고 급하게 다이어트를 해 겨우 원래의 몸무게를 되찾았지만, 결혼 생활 내내 언제든 다시 찔 위험을 안고 살아야 할 것이다. 

단순히 먹는 것만이 원인은 아니었다. 마음이 편해진 것도 살이 찐 큰 이유이자 변화다. 스트레스를 받고 예민해지면 끼니부터 부실해지고 위장병이 도지던 최양이 결혼하고 나서 속이 편해졌다. ‘결혼하면 맘이 편해져서 살찐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었다.

인생의 행복은 최고가 되는 것에 있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지만, 막상 무언가를 시작하면 끝장을 보고, 인정을 받아야 직성이 풀리는 최양. 그런 최양은 어쩌면 앞으로의 커리어를 좌지우지 할 만큼 중요한 프로젝트에 매달리던 어느 밤, 남편이 된 유군과 산책을 하다 문득 생각했다. 


“설령 이 프로젝트가 별다른 성과를 못 내면 어때. 내가 이 분야에서 그럴 듯한 결과물을 만들어 내지 못 한다 한 들, 뭐 어때. 그래도 이 사람과 함께 맛있는 걸 먹고 밤 산책을 하며 이렇게 살아간다면 그게 행복한 삶이 아닐까.”


내가 성공할 때나, 실패 할 때나, 기쁘거나, 슬프거나 언제나 변함없이 내 곁에서 내 손을 잡아 줄 사람이 있다는 건, 그런 가족이 생겼다는 건 세상에 내 이름과 명성을 날리는 것보다 더 큰 행복일지도 모른다. 최양에게는 혁신적인 생각의 변화였다. 


물론 꼭 긍정적인 변화만 있는 건 아니다. 최양이 결혼 전부터 걱정했던 대로, 최양 혼자만의 시간은 턱없이 부족해졌다. (동거인이 생겼는데, 당연하다.) 단순히 혼자 편하게 있고 싶다는 게 아니라, 창작을 업으로 하는 사람에게 꼭 필요한 혼자만의 사색의 시간, 본인에게 꼭 맞춰진 작업 환경, 누군가는 ‘외로움’이라 표현하는, 꼭 부정적이지만은 않은 감정이 줄었다는 의미다. 어쩌면 규칙적으로 출근 하는 직장인들과 유군처럼 집은 쉬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이들에게는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일지 모르지만, 최양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문제였다.


다행히 이 부분에 대해서도 최양과 유군은 결혼 전에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유군은 최양의 작업 환경을 위해 많은 것을 배려하고 양보했다. 최양 역시 포기할 것은 포기했다. 유군이 집에 없을 때 최대한 작업에 집중을 하고, 유군이 퇴근 한 이후에는 최양도 급한 일이 없다면 퇴근하기로 했다. 주말에도 작업이 꼭 필요한 때가 아니면 부부의 시간을 우선하기로 했다.  여전히 불편함은 남아있지만 두 사람은 나름대로 방법을 찾고 있다. 최양은 유군이 잠을 자는 이른 아침 시간을 최대한 활용하면서 오히려 생활의 질을 올리게 되었고, 유군도 혼자였다면 한 없이 침대에서 보냈을 시간을 최양과 함께 책상에서 보내며 더 생산적으로 쓰게 됐다.


하루 종일 작업을 마음껏 할 수 없기에, 오히려 일과 삶을 분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되기도 했다. 혼자 있을 때는 아침에 눈 떠서 밤에 잠 들기 직전까지 일에 몰두했다면, 이제는 그러지 않는다. 그러지 못 한다는 사실에 괴롭기도 했으나, 그러면 안 된다는 것도 깨달았다. 마감 직전에야 별 수 없기도 하지만, 프리랜서야 말로 노력하고 애쓰지 않으면 일상이 일에 잠식당하기 쉬우므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그렇게까지 나를 갈아 넣어서 창작에 몰두하다보면, 한 해가 가고 돌아봤을 때 분명 작업물이 남았음에도 머리에 남는 게 없어 허무하고 슬프다.  쓰는 시간과 쓰지 않는 시간 사이의 선 긋기는 효율적이고 건강한 창작 활동을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하기에, 늘 고민하던 부분이었다. 결혼 생활을 하면서야 비로소 제대로 일과 삶을 분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쉬운 변화에 대해 이야기하다가도 긍정적인 마무리로 귀결되는 것을 보니, 내가 지금의 결혼생활에 꽤나 만족하고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아니다. 분명 좋은데, 불편하고 힘든 부분들도 많다. 남편인 유군의 생활 습관이 내 기준에 차지 않는다는 것이, 아마도 가장 어려운 부분이 아닐까. 가령, 아침에 눈을 떠 보면 온 집안 여기저기에 빈 컵이 놓여 있다던지(왜 치우지는 않고 새 컵을 계속 꺼낼까), 바지를 반만 뒤집어서 세탁기에 넣어 놓는다던지(차라리 양 쪽 다 뒤집던가), 옷걸이에 옷을 이상하게 걸어놔서 목을 다 늘어나게 만든다던지(사실 걸어 놓는 것만도 감지덕지다), 먼저 이야기를 꺼내기 전에는 청소를 하지 않는다던지(수북한 머리카락이 정말로 안 보인단 말인가). 

나열하자면 밤을 새서 할 수 있지만, 앞서 말한 장점들에 비하면 그닥 큰 것들이 아니다. 아니, 솔직하게는 그 때 그때 최양의 컨디션에 따라서 저것들이 큰 단점이 되었다가, 작은 단점이 되었다가 하는 웃픈 상황이다. 그런데 어찌되었든 아주 객관적인 상태에서 판단했을 때에는 별 것 아닌 것들이다. 최양은 이미 유군과 결혼을 약속 할 때부터 이 부분은 깔끔하게 포기했다. 백날 잔소리를 한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을 것이고, 아쉬운 내가 유군의 옷들을 대신 치워주고 고쳐 걸어 줘야 할 것이고, 더 더럽다고 느끼는 사람이 청소를 해야 할 것이다. 그래도 괜찮은가? 생각했을 때 그 정도는 내가 포기하고 해 줄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기에 결혼을 결심한 것이다. ‘결혼하면 안 그러겠지’ 같은 안일한 생각 따위 애초에 하지 않았다. (앞선 에피소드에서 말했듯, 우리는 우리다운 결혼생활을 추구하기에.)


고맙게도 유군은 자신보다 높은 최양의 기준을 맞추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주고 있다. 외출 후 돌아왔는데 유군이 화장실 청소를 해 놓았거나 옷을 제대로 걸어놓기만 해도 그렇게 기특하고 고마울 수가 없는 것이다. 부부는 결혼 후 생겨난 불편함 앞에서 이렇게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노력하며 중간점을 찾고 있다. 


서른 평생을 따로 살아 온 두 사람이 만났는데, 생활이 어떻게 안 달라질 수 있겠는가.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변화는 극히 작은 것이고, 그 변화를 어떻게 받아들이느냐가 큰 문제다. 가끔 결혼한 친구들과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결혼해도 별로 달라진 게 없지 않아?’하곤 하는데, 그렇게 말 할 수 있다는 것이 현재의 결혼생활이 나다움을 버리고 유지하는 것이 아니라는, 때문에 결혼생활에 만족하고 있다는 반증이라고 생각한다. 


10년을 연애했지만, 최양과 유군은 이제야 가족이 되었다. 가장 큰 것이 변했지만, 일상은 생각만큼 변하지 않았다. 이 변화가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르게 다가오게 될까. “5년 더 지나 봐.”라던 누군가의 말을 떠올리며, 궁금증을 품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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