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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Apr 15. 2024

정답도 오답도 없는 : 부부사이란

한국인들은 유독 나와 다른 길을 가려는 타인을 곱게 보지 못 한다는 생각을 한다. 특히 관혼상제에 대해서는 더더욱. 결혼을 준비하면서 최양과 유군은 ‘결혼 준비의 정답’이라는 거대한 벽에 수없이 부딪혀야만 했다. 당장에 결혼을 준비하려는 예비부부들은 열에 아홉은 인터넷에 먼저 ‘결혼준비 순서’를 검색하고, 웨딩 카페에 가입해 정보를 얻으며, 플래너 부터 찾아간다. 마치 정해진 정답이 이미 있는 것처럼, 그 길을 따라 가는 수많은 예비부부들. ‘결혼’이라는 눈앞의 거대한 산을 수월하게 넘어가기 위해, 누군가 개척해 놓은 등산 코스를 따라가기를 간절히 원하게 된다. 비록 코스 코스마다 막대한 통행료를 내더라도, 가고 싶지 않은 코스를 들러야 한다 해도. 내가 수풀을 해쳐 완주를 하기엔 부담이 따르니까. 그리고 누군가 혼자 삽을 들고 등산로를 개척하고 있으면, 줄 지어 가던 사람들은 바로 고개를 저으며 비난의 말을 쏟아낸다. 

“내가 가 봐서 아는데, 그 길 아니야!”

결혼 준비만 그럴까. 결혼 생활도 그렇고, 부부 생활도 그렇고, 육아는 거의 이 구역의 끝판왕 수준이다.


최양과 유군은 결혼을 결심하고부터 남들 다 하는 결혼식보다는 우리만의 결혼식을 하고 싶었다. 그러나 거기에는 너무나도 커다란 장애물이 있었다. 정해진 길에서 조금이라도 벗어나게 되면, ‘엄청난 수고로움’과 ‘예산증폭’이라는 대가를 지불해야만 했다. 반대로, 정해진대로만 하면 결혼이 저절로 되는 마법이 일어나기도 한다.

‘결혼을 준비한다’라는 단순해 보이는 말에는 ‘수 백 가지를 결정하고 수 백 가지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미가 숨겨져 있다. ‘우리만의 결혼식을 준비한다’는 것은, 결정하고 준비해야 할 것이 수 백 가지 인 상황에 누군가 꽤 그럴싸하게 제시해 놓은 정답들을 마다하고 나만의 수 백 가지 해답을 찾겠다는 의미이다. 선택지로 주어진 것 밖의 선택을 하게 되면 더 큰 돈을 써야 되는 경우마저 생긴다. 결혼 준비 시작부터 이 사실을 깨닫고, 몇 가지는 과감히 포기로 한다. 


두 사람은 ‘절대로 포기할 수 없는 것’들이 무엇일까, 머리를 맞댔다. 첫 번째 답은 곧바로 나왔다. 우리는 한 번에 대 여섯 커플이 매 시간 정신없이 예식을 치르고 빠지는 거대한 공장 같은 예식장에서, 우릴 축하해주러 오신 하객들이 정신없는 뷔페에서 밥이 어디로 들어가는 지도 모르게 식사를 하고 가시는 걸 원치 않았다. 웨딩홀의 제 1조건은 단독홀이었고, 그렇게 정해진 이상 서울에서는 절대 우리의 예산으로 결혼식을 치를 수 없었다. 서울에서 예식을 치르는 것이 최양과 유군 두 사람만 생각하면 좋았지만, 두 사람 모두 지방에 고향과 가족들이 있었으므로, 각자의 고향 쪽에서 단독홀을 알아봤다. 최양의 고향 근방에 (정확하게는 지자체가 달라졌지만) 마음에 드는 단독홀을 발견했다. 단독홀일 뿐 아니라 홀이 너무나도 예뻐서 최양의 마음에 꼭 들었으며, 나중에 시식을 했을 때 음식도 맛있어서 유군의 마음에 꼭 들었다.

모든 것을 홀에 ‘알아서 해 주세요’하고 맡길 수도 있었지만 우리는 우리의 스토리가 담긴 결혼식을 원했다. 먼 길을 축하해주러 오신 하객분들께 잊지 못 할 추억을 만들어드리고 싶었다. 최양과 유군은 또 다시 삽을 들고 열심히 길을 만들었다. 식순을 짜고, 이벤트를 기획하고, 다양한 조언과 이야기를 들었다. 1시간 내내 여유롭게 우리가 원하는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행복이었다. 물론 길을 만드는 과정에는 어려움도 많았지만.


그들은 스튜디오 사진 대신 스냅사진을 찍었다. 마찬가지로 최양과 유군은 사진 찍어내는 기계처럼 돌아가는 스튜디오에서 정신없이 ‘사진을 위한 사진’을 찍고 싶지 않았다. 우리만의 의미 있는 곳에서, 사진을 찍는 과정도 추억으로 만들고 싶었다. 물론 최근에는 스튜디오 사진 대신 웨딩 스냅을 찍는 커플들이 많아져서 특별한 일은 아니지만, 유군의 외가 앞에서 남긴 사진은 정말 의미 있는 사진 중 하나다. 웨딩 스냅 작가분들은 자신이 편한 촬영지가 정해져있는데, 최양과 유군은 원하는 장소와 컨셉을 미리 논의해 주도적으로 촬영을 준비했다. 기꺼이 한 번도 촬영해 보지 않은 먼 스폿까지 오케이 해 준 작가를 만난 것도 행운이었다.


유별난 결혼식을 했다고까지는 말하기 어렵지만, 두 사람은 두 사람만의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반지를 따로 준비하지 않았고, 예물 예단도 없었다. 양가 초혼이고 공무원, 교직 사회에 오랜 시간 몸담고 계셨음에도 정말 가까운 이들만 하객으로 초대했다. 한 달에 가까운 시간 신혼여행을 즐겼다. 사람들이 말했던 수많은 ‘당연한 것들’을 생략했고, ‘굳이?’라는 말을 들은 수많은 것들을 했다. 


부부로서의 시작을 여는 행사인 결혼식을 통해서, 우리는 앞으로의 부부생활에 아주 의미 있는 교훈을 얻었다. 누가 뭐라 하든, 우리만의 해답을 만들면 된다. 길을 개척하겠다고 삽을 들고 갈 때는 사방팔방에서 별 소리를 다 해도, 결국 나만의 길로 정상에 도달만 하면 그 때 쯤엔 사람들은 이미 나에게 별 관심이 없다. 사람들이 ‘나중에 후회해!’ 라고 말했던 것들을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후회 되지도 않거니와 근본적으로 그렇게 중요하지 않은 것들이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원래 그런 거야’ 같은 것들은 절대불변의 원칙이 아니라 그냥 다수가 선택한 길일뿐일지도 모른다. 

최양과 유군은 앞으로의 부부생활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했다. 많은 이들이 우리를 향해 ‘정답’과 ‘오답’을 외쳐댈 테지만, 거기에 휘둘릴 필요는 없다.


세상이 말하는 정답과 오답이 아니라 우리만의 해답. 이것이 있다면 오늘날 mz세대가 결혼을 어려워하고, 기피하는 원인 중 꽤나 큰 것이 해결된다고 생각한다. ‘아내는 이래야 돼.’, ‘결혼 생활은 원래 이런 거야.’ 같은 것만 없어도 얼마나 많은 것이 해결되는지. 세상에 100쌍의 부부가 있다면, 100개의 정답이 있는 법이다. 그것만으로도 큰 깨달음이었지만, 부부생활을 시작하고 최양과 유군은 또 다시 더 큰 깨달음을 얻었다. 세상에 100쌍의 부부가 있다면, 정답은 100개가 아니라 200개 일 수도 있다는 걸.


오랜 시간 연애를 하며 서로에게 많이 익숙해진 최양과 유군이었지만, 생활을 공유하는 순간 두 세계의 충돌은 불가피하다. 장기 신혼여행으로 결혼생활을 시작한 덕인지 몰라도, 결혼생활 첫 한 달 정도는 오히려 이상하리만치 평화로웠다.

“우리 진짜 안 싸운다 그치!”

두 사람은 서로를 보며 웃었다. 


직장인인 유군과 프리랜서인 최양. 집은 무조건 편안하길 바라는 유군과 집이 효율적으로 정돈되어 있기를 바라는 최양. 할 수만 있다면 침대에서 살고 싶어 하는 유군과 잠잘 때 빼곤 침대에 눕지 않는 최양. 세상 행복의 큰 부분을 음식을 통해 얻는 유군과 음식의 본 기능은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라 믿는 최양. 서로의 다른 점을 너무나 잘 알고 있던 두 사람은 서로의 생활방식과 업무방식, 그리고 서로가 존재하는 방식 그 자체를 최대한 존중하기로 했다. 

그러나 서로의 존재 방식에 딴지를 걸고넘어지지 않을 수 없는 어떤 날이 오고야 만다. ‘결혼’으로 엮인 부부의 갈등은 연애 때 보다 더 큰 의미로 다가오기 때문에, 부부는 각자의 정답을 모두 정답으로 인정해주는데 어려움이 생긴다. 정답은 하나여야 한다. 그리고 그 정답은 내가 내놓은 답이어야 한다.


소소한 부부싸움이 조금 가라앉고 나면, 그제야 깨닫게 된다. 너의 답도, 나의 답도 모두 정답이라는 걸. 그리고 너의 답도, 나의 답도 오답이 될 수 있다는 걸. 그래서 우리는 정답이 아닌 ‘해답’을 찾기로 했다. 정답은 명명백백히 정해져 바꿀 수 없는 답이라면, 해답은 그 때 그때 상황에 따라, 던져진 질문에 따라, 그것을 풀어가는 우리의 관점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부부생활에는 매 순간 해답이 필요하다. 정답과 오답이 아닌, 해답. 결혼을 준비하며 우리가 우리만의 답을 찾기 위해 애썼던 것처럼. 


해답은 때때로 한 사람의 양보에서 나오기도 하고, 치열한 토론 끝에 결론으로 나오기도 하지만 영원불변의 법칙도 아니기에, 앞으로도 우린 계속해서 이 해답을 고치고 또 고쳐가며 살아갈 것이다. 부부사이란 정답도 오답도 아닌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새내기 부부는 깨달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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