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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May 24. 2024

나보다 나를 더 응원해주는 사람 : 남편의 꿈

가까운 이들에게 결혼 소식을 전했을 때, 우선 먼저 축하해주고 그 담엔 걱정 어린 말을 꺼내는 경우가 많다. (친하지 않은 사람들은 보통 축하만 하지 걱정은 안 한다.) 지인들이 가장 많이 하는 걱정은 커리어에 대한 것이다. 


“결혼해도 글은 계속 쓸 거지?”

“폴댄스 강사 일도 계속 할 거지?”

“갑자기 주부되고 그러는 거 아니지?”


최양은 그 바보 같은 질문을 듣고는 푸스스 웃어버리지만, 곧 상대방의 눈에서 진심어린 걱정을 읽는다. 이해한다. 최양 역시 능력 있던 여성들이 결혼하고, 혹은 출산하고 갑자기 자신의 커리어를 포기해버리는 것을 목격한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기에. 프리랜서들의 세상에서는 더욱 그랬다. 프리랜서란, 일이 있을 때만 프리랜서이고, 일을 하지 않으면 순식간에 그냥 백수가 되는 사람들이기에. 퇴사와 같은 복잡한 절차를 거치지 않아도, 커리어를 포기하기가 참 쉽다.


최양이 처음으로 뮤지컬 작업을 같이 했던 어느 작곡가님은 그 이후 둘째를 낳고 현재까지 별다른 작품 활동을 못 하고 있다. 매 해 얼굴을 볼 때마다 ‘올 해는 같이 공모를 준비해 보자.’라고 말하지만, 말 뿐이다. 두 아이를 키우느라 자신의 커리어는 언제나 뒷전으로 밀려난다. 그녀의 커리어는 거기에 멈춰있다. 물론 결혼을 하고, 심지어 아이를 키우면서도 악착같이 커리어를 이어나가는 분들도 있다. 최양은 그녀들을 존경하며 박수치지만, 그녀의 집에 한 번만 방문해 보면 그녀가 얼마나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며 이 모든 걸 유지하고 있는지 알게 되고, 그녀에 대한 존경보다 연민이 더 커지게 된다.

최양은 특히 남편, 혹은 어른들의 권유 아닌 권유에 못 이겨 커리어를 포기하는 여성들을 수없이 봤다. 지금 당장의 커리어보다, 사랑하는 가족을 위한 선택을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는 더 행복하리라는 믿음 속에서 내린 결정이, 몇 년 만 지나면 후회와 통한으로 이어진다.

시대가 정말 많이 변했다. 내가 아는 대부분의 여성들은 자신의 커리어, 그리고 미래가, 가부장적 가치보다 중요하다.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결혼이나 임신 출산을 포기한다. 최양도 예외는 아니었다.


최양은 여러모로 결혼하기 불리한 조건이다. 우선 수입이 고정적이지 않은 프리랜서다. 요즘 같은 시대엔 맞벌이를 해도 부부를 이루고 안정적인 주거 생활을 하기 빠듯하다. 최양처럼 이제 막 자리를 잡기 시작한 프리랜서 작가의 경우, 남자가 고수입이 아니라면 출산 육아까지 꿈꾸기 어렵다. 빠듯한 재정상태에 비해, 투입해야 하는 시간과 노력은 크다. 향후 2-3년은 최양에게 극작가로서 자리를 잡아야 하는 아주 중요한 시기이다. 이 시기에 ‘가정을 위해 잠시 내 것을 내려놓는다’ 같은 소릴 했다간, 최양의 극작가로서 다음 커리어는 존재하지 않게 될 수 있다. 


그러니, 유군이 최양 만큼이나 최양의 꿈과 커리어를 응원하는 사람인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유군이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면, 최양은 결혼 자체를 꿈꿀 수 없었을 것이다. 


“그까짓 돈 벌어서 뭐해. 내가 돈 벌게 넌 집에서 쉬어.”

“난 꼭 아빠가 되고 싶어. 같이 내 꿈을 이뤄주면 안 될까?”


수없이 들었던 지인들의 어마무시한 썰들이 최양의 일이 아니니 얼마나 다행인지. 유군은 연애 시절부터 두 사람의 미래를 그릴 때, 최양에게 이렇게 말했다.


“난 니가 작가로서 성공할거라고 믿어.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니 꿈 열심히 내조해서 장항준처럼 사는 게 꿈이야.”

“그러니, 지금 내가 너를 먹여 살리기까진 못 하더라도, 최소한 니가 글쓰는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돈 걱정 하지 않게 해주고 싶어.”


농담이 섞인 말이었지만,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유군은 최양의 꿈을 진심으로 믿어주고, 응원하고 있었다. 어쩌면 최양 자신보다 더. 최양이 자신을 믿는 것보다 유군은 늘 그 이상으로 최양을 믿어주었다.


만약 유군이 최양에게 아주 오랜 기간 이런 신뢰를 주지 않았다면 최양은 쉽게 결혼을 결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최소한 내가 아내라는 이유로, 엄마라는 이유로, 타인의 의지로 내 커리어와 내 꿈을 포기해야 하는 일은 없겠구나. 물론 살다보면 피치 못 할 어려운 사정이 언제든 생길 수 있지만, 최소한 유군만큼은 끝까지 나의 커리어를 지지해 줄 거라는 믿음이 들자 최양은 몹시 든든했다. 그 믿음이 있다면, 되려 나에게 그런 믿음을 주는 남편을 위해 커리어를 포기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사랑을 한다’는 것에는 여러 층위가 있고, 여러 방법이 있지만, 최양은 유군과 커리어에 대한 고민을 나누고 서로 응원해 줄 수 있는 부부라는 의미에서 서로를 ‘깊이’ 사랑한다고 느꼈다. 두 사람은 서로의 꿈을 절대적으로 믿고 지지해준다. 진로와 꿈에 대한 고민을 멈추지 않는 20대를 내내 함께 보낸 것이 영향을 준 것인지 모르겠다. 우리가 30대가 되어서, 결혼 적령기라 하는 그 시기에 만났다면, 조금 다를 수도 있었겠다. 두 사람은 자주 이야기했다.

최양과 유군은 부부 공동체에 대한 책임감을 갖는 당연한 전제 하에서는, 언제나 서로의 편이 되어주기로 했다. 새로운 도전을 하고 싶다거나, 꿈을 위한 어려운 선택을 해야 할 때에, 아내, 남편으로서 발목을 잡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힘이 되어주고 가장 믿어주는 사람이 되기로. 직접 작성한 두 사람의 혼인 서약에도 있는 내용이다. 


‘신부 최양은, 앞으로도 저의 꿈을 향해 멈추지 않고 성실하게 달려갈 것이며, 남편의 꿈 역시 언제나 믿고 지지하겠습니다.’


유군은 현재 이직중이다. 결혼까지 얼마 안 된 유군이 이직을 준비하겠다고 하자, 시댁 부모님을 비롯한 모두가 한 마디씩 거들었다. 표현은 다 달랐지만, ‘이제 결혼도 했는데, 그냥 다니던 회사 다니는 게 좋지 않겠니.’ 로 일맥상통했다. 

최양 역시 걱정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그간 커리어를 두고 유군이 오랜시간 고민해 온 것을 알고 있기에 그를 지지해주었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유군의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커리어를 이어가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유군이 최양의 꿈을 지지해주는 것처럼, 최양도 유군의 꿈을 지지해주고 싶었다.


그렇게 최양과 유군은 아내, 남편이기 이전에 고유한 꿈을 가진 하나의 인간으로 서로를 존중하며 부부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나의 꿈이 누군가에게 지지받을 때의 행복감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로 벅찬 감정이다. 나의 꿈을 응원해준다는 건, 현재의 나 뿐 아니라 아직 정해지지 않은 미지의, 미래의 나까지 사랑하고, 지지해준다는 의미이기에. 

결혼을 하면 ‘영원한 내 편’이 생긴다는 게, 이런 의미인가,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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