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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최집사 May 31. 2024

내가 엄마가 될 수 있을까 : 저출산에 대하여

최양은 어린 시절, ‘나는 애기 많이 낳을 거야!’ 라고 천진난만하게 말하고 다니는 아이였다. 스물다섯에 결혼해서, 서른 전에 최소 둘을 낳고 싶었다. 지금의 최양이 보기에 순진하고 세상 물정 모르는 말이었지만, 진심이었다. 앞선 에피소드에서도 언급했지만, 최양은 일평생 결혼에 긍정적이었고, 아이를 정말 좋아한다.

최양의 엄마는 최양과 두 바퀴 띠 동갑이다. 24살 차이. 24살에 출산을 했다는 의미다. 최양은 젊은 엄마를 가졌다는 것에 큰 자부심과 행복을 느꼈다. 엄마를 보고 언니인 줄 알았다는 말이, 친구들이 우리 엄마를 ‘젊고 예쁜 엄마’로 기억한다는 사실이 최양을 기쁘게 했다. 최양의 엄마는 외모 뿐 아니라 실제로도 친구 같은 엄마가 되어 주었다. 최양이 좋아하는 아이돌 영상을 함께 봐주고, 노래방을 함께 가고, 고민을 들어주는 엄마를 보며, 최양은 나도 이 다음에 저런 엄마가 돼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최양의 꿈은 시대를 잘못 만나 이뤄질 수 없게 되었다. 많이는 커녕, 하나라도 가능할지 의문이다.  어른이 되어 세상 밖으로 나와 보니, 내가 꾸었던 꿈이 얼마나 순진한 것이었는지 느꼈다. 내가 얼마나 아이를 낳고 싶냐와는 별개로, 낳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느냐가 중요하다.


사회생활을 막 시작하던 20대 초중반의 최양은 임신과 출산으로 인해 자신이 잃게 될 것들에 대해 생각했다. 커리어의 위기가 가장 큰 문제였다. 최양에게는 그 어떤 것보다 자아실현이 중요했기에. 아무리 아이를 좋아하고, 엄마가 되고 싶어도, 꿈을 포기하면서는 아니었다. 그런 삶을 최양은 상상해 본 적 조차 없다. 

그러나 결혼을 고민할 무렵부터 최양의 생각은 조금 달라졌다. 커리어? 오히려 포기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사랑하는 남편과 아이, 가정을 위해서, (그러겠다는 게 아니다. 여전히 그럴 의사는 없다만,)그럴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이제 최양이 걱정하는 건 최양 보다는 태어날 아이다. 내가 아이를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을까. 이 각박한 세상에, 인구 소멸을 논하는 마당에, 태어날 아이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니, 어쩌면 그 이후까지도) 책임을 지고 행복한 삶을 살도록 이끌어 줄 수 있을까. 과연 나는 자신의 결정과 무관하게 태어날 아이의 행복까지 책임질 수 있을까. 내가 커리어를 포기해서 될 일이라면, 기꺼이 포기할 수도 있겠다. 이건 최양이 생각해 본 적 없는, 특별한 변화였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게 되리라고 예상치도 못했다.


‘빨리 아이를 낳으라’는 어른들의 닦달과도 같은 말에 이러한 고민들을 이야기하면 대개 비슷한 답이 돌아온다.


"낳아 놓으면 애들은 다 알아서 크게 돼있어."


최양은 처음 그 대답을 들었을 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다. 어떻게 그렇게 무책임한 말을 할 수가 있는 걸까. 우리 윗세대 부모들은 모두 이런 생각으로 자식을 낳아 길렀다는 말인가. 

정작 두 사람 모두 '알아서 잘 큰' 아이들에 속한 것도 사실이었지만, 최양과 유군은 해당 의견에 동의할 수 가 없다. 저출산 고령화 사회인 만큼, 되려 사회적 소수로 태어난 아이들은 아주 귀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큰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갈 것이 뻔하다. 당장 최양과 유군만 해도 근 미래에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냐 없냐 말이 많은데. 내 아이가 극소수의 젊은 층이 되어 노인층을 떠받쳐야 하는 사회를 살게 하는 것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문제다. 저출산이 더 심각한 저출산을 야기하는 비극이다.

전 지구적 상황을 예측해보더라도 미래에는 지금보다 더 심한 기후재앙과 미지의 전염병의 위험, 식량난과 마주하게 될 확률이 높다. 기술과 과학이 얼마나 더 발전할지 몰라도, 인간이 과연 지난 수 세기 동안 망쳐놓았던 것들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만들 수 있다는 의견에는 회의적이다.

최양은 이런 미래에 살아가야 할 자녀세대들이 너무나 걱정스럽지만, 기성세대들의 눈에는 이러한 걱정이 허황돼 보이거나 그저 아이 없이 편하게 살고 싶은 핑계로 느껴지는가 보다. 누구나 자신이 살아온 경험과 환경을 기준으로 세상을 판단한다. 그렇게 생각하고 나니 기성세대들의 잔소리도 이해는 된다. 이해는 되지만, 저출산이라는 이 엄청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도움이 전혀 안 된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렇게 거시적인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두 사람이 당장 부모가 되기 어려운 현실적인 이유는 차고도 넘친다. 그래서 누군가 최양과 유군에게 자녀 계획이 어떻게 되냐고 묻는다면, 두 사람은 ‘잘 모르겠는데, 당분간은 없다.’정도로 답한다. 

이건 절반 정도의 진실이다. ‘잘 모르겠다’는 말이 마치 별 생각이 없다는 의미로 느껴질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두 사람은 2세 문제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 중이고, 두 사람만의 방법을 간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잘 모르겠다’고 답하는 이유는, 두 사람의 경험상 자녀 계획에 대한 개인적 고민을 남에게 털어놓으면 대부분 건설적인 대화나 조언이 오가기보다는 기분만 상하고 끝나기 때문이다. “낳아놓으면 알아서 커!”와 “알아서 제대로 크는 인간은 없어요!”가 끝없이 반복되며 싸우다가, 높은 확률로 “라떼는”으로 마무리 될 것이다. 

이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세대간, 성별간, 자라온 환경간의 생각차가 너무나 크고, 하나같이 편협한 자신의 기준에 빠져 쉽게 타인의 삶을 재단하는 모습을 경험한다. 부모의 품에서 행복하게 자라난 사람은 부모가 지옥이었던 사람의 삶을 이해할 수 없고, 여성에게는 마땅히 엄마가 되는 행복이 커리어 우먼으로 살아가는 행복보다 큰 것이 당연한 자연의 이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최양 같은 사람을 이해할 수 없다. 때문에 최양과 유군은 ‘잘 모르겠다’는 모호한 답으로 화제를 돌리는 쪽을 택한다. 


회피가 좋은 선택지는 아니라는 걸 안다. 저출산이네, 인구 소멸이네 하며 국가의 존폐를 걱정해야 하는 정도의 나라라면 마땅히 응당, 서로 이 문제에 대해 터놓고 이야기 하며 실질적인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 최양과 유군은 이 거대한 논쟁을 그저 개인간의 논쟁으로 소모되는 현실이 싫다. 원망스럽다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다. 저출산이 두 사람의 문제가 된 지금, 두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간절하게 이 거대 담론이 거대담론의 차원에서, 진지한 논의가 이뤄지기를 원한다. 특히 지금 당장 이 문제에 직면해 있는 2030 부부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5060 세대들이 어떤 방식으로 출산과 육아를 해 왔든, 그 잣대를 들이밀며 애를 낳으라고 종용하는 방식으로는 절대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미 밝혀졌다. 둘째 낳으면 얼마, 셋째 낳으면 얼마를 준다는 식의 말 같지도 않은 정책으로 허비한 돈이 얼마인지.


언젠가 최양과 유군은 지하철에서 마주한 한 어떤 임산부를 보고 하루 출산정책에 대해 하루 종일 이야기 한 적이 있다. 해당 임산부는 겉으로 보기에 티는 별로 나지 않았지만, 임산부 배지를 가지고 있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원 지하철에 서서 이동하고 있었다. 사람에 밀릴 때 마다 의식적으로 아랫배를 감싸는 그녀. 멀끔하고 단정한 정장 차림이지만 피곤이 가득해 보이는 그녀의 모습에서 엄마라는 이름과 자신의 일, 모두를 포기하지 않으려는 결의가 느껴졌다. 


“이런 나라에선 임산부들은 국가에서 개인 운전수라도 한 명씩 붙여줘야 되는 거 아니야?”


이런 이야기를 하면 ‘그럴 돈이 어딨냐.’, ’‘남들 다 하는 임신으로 (전혀 아닌데) 유난 떨지 마라.’와 같은 답이 돌아오는 나라에서 뭘 바라겠냐고, 유군이 한숨을 쉬었다. 나라가 망하게 생긴 상황에서 임산부는 빛과 소금과 같은 존재 아닌가. 되려 눈치보고, 많은 걸 포기해야하는 상황에서 젊은 여성들을 아무리 닦달한들 무슨 변화가 있을까. 

앞서 말했듯 사람들은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을 믿기 때문에, 아직 오지 않은 인구절벽 시대의 일은 머리로는 이해하지만 가슴으로 와 닿지 않는 모양이다. 최양과 유군이 느끼기엔 사회가 말로만 ‘저출산으로 나라 망한다’ 하지, 별로 심각성을 못 느끼는 것 같다. 정말로 나라가 망한다면, 전쟁과 같은 상황이라면 이렇게 손 놓고 여유부리고 있을 리가 없다. 


빨리 아이를 낳아야 한다는 주변 어른들의 말을 들을 때, 최양은 화가 나는 게 아니라 슬퍼졌다. 누구보다 그걸 바라는 건 최양 본인이기에. 빨리 아이를 낳고 싶지만 그럴 수 없는 현실에 좌절하고 있기에. 부부는 최근 ‘냉동 난자’에도 관심을 갖고 있다. 이제 서른을 막 넘긴 최양이기에, 조금이라도 젊을 때 대비를 해 두는 게 좋지 않을까 싶어서. 당장은 엄마가 되는 것을 꿈꾸기 어렵지만, 몇 년 안에 두 사람도 2세를 생각할 수 있는 때가 올 지도 모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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