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하면 내가 대표 해야지뭐

대표님처럼 살고싶네요

by 글쓰는 최집사

월급쟁이로 살면서 서럽고 화가 나는 순간이 한 두번이겠냐만, 역시 가장 손쉽게 불행해질 수 있는 방법은 '남과의 비교'이다.


회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내 주위만 봐도 일의 양이나 내용 등 업무와 직접적으로 관련된 문제보다는 인간관계로 인해 회사생활이 괴롭다고 하는 경우가 많다. 상사가 지랄맞거나, 동료가 지랄맞거나, 동료가 일을 너무 안하거나, 나만 개고생하는 것 같거나.


우리 회사는 스타트업이기 때문에 모든 직원이 일당 백을 해야 했다. 인력도, 자원도, 모든게 부족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회사에서 처럼 나의 직무나 역할이 한정적이지 않았고 나 역시 기획부터 홍보, 마케팅 나아가서 회계, 때로는 디자인까지 진행을 하곤 했다.

대표님 역시 마찬가지였다. 회사 대표면 조직관리나 운영에 대한 고민을 하고, 적재적소에 인력을 배치하는 등 경영적인 부분만 신경쓰면 되는 줄 알았지만, 대표님은 직접 콘텐츠 기획부터 공연 연출, 회계와 담당자 미팅까지 직접 진행해야 했다. 대부분의 스타트업이 그렇듯, 회사가 커지고 체계가 잡혀서 매뉴얼대로 굴러가기 전까지는 대표 역시 일당백의 임무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그런데 내가 회사 업무의 중심으로 자리잡고 성장해가면서, 대표님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외근을 나갔던 대표님이 퇴근시간이 다 넘어서 다시 회사로 돌아오겠다며 일에 대한 열정으로 직원들을 힘들게 했다면, 이제는 오후에 미팅이 있으면 굳이 회사로 출근하지 않고 댁에서 미팅 장소로 바로 간다고 하신다.(아침 시간에 집에서 무엇을 하시든 직원인 나는 알 바 아니다.)

6시 반 퇴근은 아직 멀었는데 4시쯤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먼저 들어가보겠다고 말씀하신다. (왜 갑자기 퇴근을 하는 지는 아무도 모른다.)


나는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고싶어도 30분만 일찍 퇴근하겠다는 말을 못해서 치료 시기를 놓치기 일쑤인데, 대표님은 개인적인 용무를 24시간 중 언제든 처리하러 간다. 대학동기를 만나거나 가족 모임을 하거나 비지니스와는 전혀 상관 없는 지인과의 만남도 '미팅'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고, 출퇴근 시간을 마음대로 조정할 수 있는 자유가 대표님에게는 있다.


그전에도 종종 있던 일이지만, 나를 제외한 모든 정직원이 퇴사하고 나와 대표님 단 둘이 일하는 일이 잦아지자, 대표님을 보며 점점 불행해지고 있었다.

회사에는 나와 대표님 둘 뿐인데(파트타이머로 가끔 오는 직원과 대학생 인턴을 제외하고 정직원만 따지면)나는 9시반 출근시간을 지키기 위해 버스를 놓치지 않으려고 아침마다 백미터 달리기를 하고 6시반 정시에 퇴근을 할 수 있을지 5시부터 눈치를 보기 시작하는 반면, 대표님은 아무 말 없이 11시에 출근을 하고 갑자기 4시에 들어가본다고 말하니 말이다.

울리는 핸드폰 속 카톡 메시지가 궁금해도 꾹꾹 참았다가 엑셀모드 컴퓨터 톡을 열고 대표님의 눈치를 보며 확인하는 나와 달리 업무시간에 당당하게 인스타그램을 하는 그가 너무 부럽다.


그래. 작년부터 나는 '나만 개고생하는 것 같아'라는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심지어 이건 내 회사도 아닌데!!! 대표님 회사인데!!!

이 억울한 마음 역시 내가 퇴사를 고려하게 된 이유 중 하나임은 확실하다.


물론 회사 대표라는 자리가 남들이 보는 것만큼 마냥 편하고 자유로운 건 아니라는 것을 백번 이해하고 있다. 남 모를 고민도 많고, 몸이 집에 있다고 해서 일 생각을 안 하겠는가.

다만 근무시간에 sns를 하는 일은 '리서치'라는 핑계를 댈 수 있고, '미팅'이라고 둘러대기만 하면 누구든 만날 수 있고, 오전 10시에 일어나서 '오늘 오후은 출근합니다'라고 당당하게 말 할 수 있음이 부러울 뿐이다.


이 회사 안에 핵심 사업을 진행할 수 있는 사람은 나를 포함해 둘 뿐인데, 하필 나머지 한 사람이 대표다.

일반 직원이었으면 돌려서 까든, 앞으로 대놓고 까든, 내 성격에 둘 중 하나는 했을 텐데, 상대가 대표니 할 말이 없다.

월급쟁이가 별 수 있나. 억울하면 내가 대표해야지. 스스로를 달래며 매일같이 중얼거린다.






20200111 예비백수의 일기






추신. 대표와 단 둘이 일을 하고 있고, 퇴사를 준비중이어서 심사가 조끔 꼬였을 수 있음

대표라는 자리를 무시하거나 비판할 의사는 전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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