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으로 받은 설 보너스가 반갑지 않은 이유

끝나지 않은 퇴사 전쟁

by 글쓰는 최집사
이건 설 보너스고...

설연휴 전날 대표님과 지방 출장을 갔다가 버스 터미널에 도착하자, 대표님께서 봉투를 건넸다.

갑자기 은행 업무를 보셔야 한다고 기다려 달라고 하시더니 급하게 준비해 오신 5만원짜리들이 꾸깃꾸깃 정체를 알 수 없는 편지봉투에 담겨있었다.


얼른 버스 시간 맞춰 갈 생각에 마음이 급했던 나는 다소 어안이 벙벙해 봉투를 받았다.

감사합니다. 대표님 명절 잘 보내시고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인사를 드리고 버스에 타서 봉투를 확인하는데 예상치 못한 꽁돈이 생겼다는 마음에 들뜨기도 했지만 동시에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명절 보너스라. 입사 하자마자 맞은 설날에 교통비라도 보태라며 5만원짜리 한 장을 주셨던 것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뭐 그 이후에도 종종 (정말 종종 대표님 기분 내키는대로) 법카를 자유롭게 쓰라거나, 법카로 가족들과 식사 하라고 한 적은 있지만 제대로 된, 그래도 보너스라고 말 할 수 있을만 한 액수를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명절보너스가 누군가에게는 너무 당연한 것이라 생각될 수 도 있겠지만 우리 기업은 흔히 법에서 '5인 이하 사업장'으로 분류하는 아주 영세한 회사다. 고정비를 아끼고자 매일같이 엑셀을 두드리시는 대표님. 그리고 그 아래서 '돈 들어가는 복지'는 꿈도 못꾸는 직원들.

처음에는 좀 너무한게 아닌가 생각했지만 그래, 세상 모든 기업이 다 잘나가는 건 아니니까. 당장의 몇 만원이 아쉬운 회사도 있는거니까. 상여금, 수당 같은 건 꿈도 꿔 본 적이 없고, 내가 일 한거에 대한 적절한 보상만 받으면 플러스 알파는 바라지도 않게 되었다. (결국 내가 하는 일에 대한 적절한 보상도 받고 있지 못하다는 생각이 퇴사를 결정하게 했지만..)


게다가 우리 대표님은 그렇게 세심한 사람이 아니다. 더 솔직히 말하면 사람 다룰 줄 모르는 분이시다.

때로는 무작정 졸라 매는 것 보다 사람에게 적절한 투자를 했을 때 그 사람이 몇 십배의 이익을 가져오기도 하는 법인데, 대표님은 어쩌다 인심을 쓰고도 꼭 뭔가 애매하게 생색을 내서 욕을 먹는 사람이다.

그래서 이번에 내가 보너스가 든 봉투를 받고 다소 고개가 갸웃거려진 것이다. 아무리 생각을 해도, 갑자기 설 보너스를 챙겨주겠다는 마음의 동기는 나의 퇴사 선언에 있는 것 같으므로...


아니길 바랬지만, 고향집에 도착하자마자 대표님께 전화가 왔다.

오늘 출장 마치고 여유가 있었으면 하고 싶은 이야기도 좀 있었다며. 이미 3월 퇴사를 이야기 한 바 있지만, 앞으로 회사 운영이나 사내 문화를 어떻게 바꿔갈 예정이고 계획이 어떤지 공유해 줄테니 한 번 더 고민해보라는 게 요지였다.

전화를 받고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첫째, 퇴사하겠다는 내 마음을 돌려보겠다고 보너스를 챙겨주시려고 하신 게 아니길 바랬다. 둘째, 사내 문화라니. 우리 회사는 대표님이 곧 사내 문화가 아닌가.


챙겨주신 보너스가 얼마든 상관없었다. 남들에게는 '그게 무슨 보너스야~'라고 할 만 한 액수여도, 여의치 않은 살림에서 떼어 준 정성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전화때문에, 결국 반갑지 않은 보너스가 되고 말았다. 나와 대표님은 또 그 얼마 되지도 않는 액수의 돈 때문에 마음의 짐만 늘어났을테고, 연휴가 끝나면 나는 또 불편한 마음으로 대표님 앞에 앉아야 할 것이다.






20200124 예비백수의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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