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말이라도 알아들을 수 있게 해줘
처음 입사하고 최근 퇴사를 결정하기까지, 나의 업무를 쉽지 않게 만든 큰 문제 중 하나는 바로 대표님의 의사소통법이었다.
회사의 리더들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 하나인 '말하기와 글쓰기' 능력. 많은 리더들이 어떻게 하면 타인에게 자신이 원하는 바를 잘 말하고 잘 써서 전달할 것인가를 고민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생각을 가지고 있고 뜻이 있다 해도, 그것이 함께 일하는 동료들에게 제대로 전달이 되지 않는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우리 대표님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당최 뭘 원하는건지 알 수 없게 업무지시를 하는 사람. 이야기를 듣고 있자면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파악 할 수 없는 사람.
제가 제대로 이해 한 게 맞나요?
대표님의 업무 지시나 전달사항을 들으면 이 질문을 몇 번씩 다시 해야 한다. 내가 제대로 이해한게 맞는지, 혹시 오해 한 부분은 없는지. 말을 개떡같이 한 건 대표님인데 찰떡같이 알아들으려고(거의 해독하려고) 애쓰고 있는 나를 대표님은 꼭 '왜 이렇게 이해를 못하니'라는 표정으로 바라보곤 한다.
처음에는 내가 문제인가 생각했지만, 대표님과 마주하는 사람마다 나와 동일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고는 깨달았다. 이것은 발신자의 문제지 수신자의 문제가 아니다.
차마 대표님께 대놓고 '대표님의 의사소통에는 문제가 있습니다'라고 말 할 수 없어 여러가지 방법으로 돌려 표현해보았지만 결국 그는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했다.
말을 잘 하는 법에는 여러가지 방법이 있지만, 사실 기본만 지켜도 중간은 갈 수 있다. 언젠가 대표님께 이 이야기를 직접적으로 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내가 바라본 대표님의 나쁜 말하기, 글쓰기 습관 3가지를 지적해보고자 한다.
1. 주어, 목적어를 분명하게 사용하지 않는다.
겪어 본 바, 이게 최악의 말하기 방법이다. 우리 대표님은 꽤나 자주 문장의 주어와 목적어를 분명하게 밝히지 않고 말을 하는데, 여러가지 업무가 쏟아지는 상황에서 이런식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면 쉬운 일도어렵게 하게 된다.
여러 거래처에서 문의가 오고 있는 상황에서 각 문의에 대한 대표님의 피드백이나 컨펌이 필요한 경우, 나는 표로 각 거래처를 명시하고 그들이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정리해 대표님께 전달한다. 그런데 대표님의 피드백에는 주어와 목적어나 하나도 없이 그저 대표님이 원하는 것만 있다.
그러면 나는 이 문장이 내 질문 중 어떤 것에 대한 답변인건지, 누구에 대한 피드백인지 다시 일일히 묻고 확인해야 한다. 한 번의 소통으로 끝날 일이 열 번도 넘게 왔다갔다 해야 결론이 난다.
2. 원하는 바를 돌려 말한다.
자신의 생각을 직설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이 미덕이라고 생각한다면 큰 착각이자 오산이다. 타인이 기분 상하지 않게 의견을 전달하는 것과, 의견을 분명하지 않게 전달하는 것은 다른 것이다.
거래처나 협력사와 소통을 하다보면 이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아.... 처음에 대표님께서 말씀하신 것과는 조금 다르네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에 대해 정확하게 전달하지 않은 결과이다. 대표님 나름대로는 실무자인 내가 업무를 원활하게 진핼할 수 있도록 권위를 가진 대표자가 먼저 소통을 해 주겠다고 배려를 해 준 것인데, 오히려 상대방의 오해를 사서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정확한 지시나 요청이 아닌, '그냥 디테일 부분만 조금 손 봐 주시면 돼요'처럼 애매한 말로 듣는 사람에게 오해를 심어주는 게 문제이다.
3. 한번에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이야기 하지 않고, 말이 계속 이어진다.
기획회의나 전략회의를 진행하다보면, '그래서 하고 싶으신 말씀이 뭔가요'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차오를 때가 있다. A라는 이야기로 문장이 시작된다. 그런데 마침표를 찍기 전에 B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리고 B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다시 C이야기가 진행된다. 길고 긴 이야기 끝에, 내가 "그래서 A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라고 되물으면, 대표님은 다시 A로 시작해서 B를 거쳐 C로 끝나는 알 수 없는 이야기를 시작하신다.
좋은 회의 방법은 두괄식, 즉, 1) 나는 ~~~라고 생각한다/~~~가 좋다. 2) 왜나면 ~~~이기 때문이다. 라는 사실이 자명한데, 대표님은 ~~~라고 생각하기까지의 자신의 머릿속을 스쳐간 모든 이야기를 다 쏟아내고, 그러다가 그 이야기에서 파생 된 또 다른 이야기를 이어가면서, 결국 전혀 다른 이야기로 문장을 끝맺는다.
말을 듣고 있다보면 당최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어 멍을 때리게 되는 것은 다반사고, 핵심을 찾아내기 위해서 키워드를 메모해보아도 그 키워드들이 결국 모두 다른 주제임을 깨닫게 되는 경우도 많다.
언젠가 파트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디자이너가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일을 다 우리한테 떠 맡기는 건 괜찮아.
제발 업무 지시라도 제대로 해 줬으면 좋겠어
동감이다.
오죽하면 주변 파트너들이 나를 보고는 '대표님 통역기'라고 한다. 대표님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이 오래 같이 일 한 나 뿐이라며.
리더가 나쁜 말하기 습관을 가지고 있으면, 조직 전체가 피곤해진다. 성과를 내기 위해 쓰는 에너지보다, 리더의 말을 알아듣기 위해 쓰는 에너지 소모가 더 크다. 그건 함께 일하는 사람들의 피로도를 높일 뿐 아니라, 조직의 효율성을 떨어뜨려 좋은 결과를 만드는 일을 방해한다.
정확한 말하기. 커뮤니케이션 능력이야말로 리더들이 1번으로 갖추어야 할 덕목이 아닐까 싶다.
20200206 예비백수의 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