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 고명재
가게문을 닫고 우선 엄마를 구하자 단골이고 매상이고 그냥 다 버리자 엄마도 이젠 남의 밥 좀 그만 차리고 귀해져 보자 리듬을 엎자 금(金)을 마시자 손잡고 나랑 콩국수 가게로 달려 나가자 과격하게 차를 몰자 소낙비 내리고 엄마는 자꾸 속이 시원하다며 창을 내리고 엄마 엄마 왜 자꾸 나는 반복을 해댈까 엄마라는 솥과 번개 아름다운 갈증 엄마 엄마 왜 자꾸 웃어 바깥이 환한데 이 집은 대박, 콩이 진짜야 백사장 같아 면발이 아기 손가락처럼 말캉하더라 아주 낡은 콩국숫집에 나란히 앉아서 엄마는 자꾸 돌아간 손가락을 만지작거리고 오이고추는 섬덕섬덕하고 입안은 푸르고 나는 방금 떠난 시인의 구절을 훔쳤다 너무 사랑해서 반복하는 입술의 윤기, 얼음을 띄운 콩국수가 두 접시 나오고 우리는 일본인처럼 고개를 박고 국수를 당긴다. 후루룩 후루룩 당장이라도 이륙할 것처럼 푸르륵 말들이 달리고 금빛 폭포가 치솟고 거꾸러지는 면발에 죽죽 흥이 오르고 고소한 콩물이 윗입술을 흠뻑 스칠 때 엄마가 웃으며 앞니로 면발을 끊는다 나도 너처럼, 뭐라고? 나도, 나도 너처럼, 엄마랑 나란히 국수 말아먹고 싶다 사랑을 줘야지 헛물을 켜야지 등불을 켜야지 예민하게 코끝을 국화에 처박고 싶어 다음 생엔 꽃집 같은 거 하고 싶다고 겁 없이 살 때 소나기 그칠 때 구름이 뚫릴 때 엄마랑 샛노란 빛의 입자를 후루룩 삼키며
ㅡ 세상이라는 거대한 공간에 내던져지기 전 먼저 해야 할 일이 있다. 엄마와 나를 연결하고 있던 동아줄 같은 태를 끊는 일. 가위로 잘려 나간다는 것은 한 인격체가 스스로를 거두어야 한다는 암시이다. 태어나서 처음 느끼는 공포일 것이다. 하지만 끊어내야 산다. 끊어내고의 삶은 스스로 호흡하고 목구멍으로 먹을 것을 넘기는 일이다. 하지만 끊어내고 난 이후의 삶이 엄마로부터 영원히 자유로울 수 있는가? 엄마 젖이 필요 없는 나이가 되어서도, 엄마처럼 흰 머리카락을 서리처럼 머리에 얹고서도 우리는 한평생 한 여자를 부른다.
엄마, 엄마, 엄마...
식당을 운영하며 한평생 남의 밥만 차리고 살았던 엄마에 대한 회상이다.
"엄마를 구하자. 귀해져 보자."
화자는 어느 날 일부러 날을 잡아 일하시던 엄마를 차에 태우고 외출을 시도한다.
가는 길에 소낙비가 내리고 엄마는 시원하다고 말한다. 평생 말 못 하고 가두어두고 살았던 엄마의 절절한 한이 쏟아지는 빗물에 씻기어 내려가는가 보다. 둘이 국수가게를 찾는다.
낡고 허름한 국수가게에 앉아 콩국수를 베어 물던 엄마가 말한다.
"나도 너처럼 엄마랑 나란히 국수 말아먹고 싶다."
아마도 엄마는 엄마와 함께 콩국수를 먹던 어느 시절을 기억해 냈는지 모른다.
엄마도 처음부터 엄마는 아니었지.
엄마에게도 시도 때도 없이 부르고 싶은 엄마가 있었지.
엄마도 소나기 그치고 구름이 뚫리는 좋은 날이 오면 엄마의 엄마와 국수 한 그릇 마주하고 앉아 끈적한 모정의 국수 한가닥 후루룩 베어 먹겠지.
사랑은 샛노란 빛의 입자로 햇살처럼 우리들 곁에 영원히 머무를 것이다. 너무 사랑해서 반복하는 입술의 언어! 그것은 엄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