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의도적인 기억상실 / 박지영
겉절이에 파슬리가루를 뿌린다
네가 좋아하는 맛
삼계탕에 위스키를 곁들인다
내가 좋아하는 맛
너와 나는 퓨전을 좋아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토마토소스 순두부탕에 군내 나는 멸치를
볶아 얹은 김치 스파게티
복잡한 거 싫은 너와 나는 중간쯤서 딱 멈추지
완벽하게 복잡한 절정을 만나지
종점이 정점으로 변하는 시간
익숙했던 경험으로 우리는 계속 사랑을 한다
두루마기의 검은 너, 시스루 노란 스커트 나
기자 눈에 띈 너와 나는 방송국에 출연한다
‘원만한 관계를 위한 휘발유에 관한 명상’
너와 나는 카메라를 탈출한다
너와 내가 마주쳤던 복잡한 꼭대기에서
우리는 늘 그러지
“멈춤” 그리고 지워버린다
울고 있던 친구의 눈물이 와인잔에 떨어진다
사람 하나 잔에 빠져 죽는 줄 알았지
눈물 젖은 빵은 알아도 눈물 빠진 와인은 처음이라
친구의 떨림이 진정되었을 때 그에게 건네준 수세미
지워버리기엔 그만한 게 없을 테니
별거 아니다 사는 일이
해와 달이 어울려 꽃자루 하나 키워내는 신비
식상해서 지겨워진 말, 하지만
너와 나에겐 전부인 언어
잃고 싶지 않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