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리개와 아가리 / 박지영
사진 찍는 친구가 있었지
물 오른 손가락은 셔터의 문지기
필름 위에 슬쩍 태양빛이 범람하면
손가락은 조리개 파수꾼이 된다
친구만큼 날렵한 손가락을 본 적이 없네
진실을 살짝 손가락으로 문지르면
안 보이던 세상을 얻을 수가 있지
뒷산 아카시아 꽃 필 때
친구의 손가락이 놀러 왔지
하얀 꽃잎이 띠를 이루어 산자락을 휘감았어
동네 약수터가 무릉도원으로 변해버린
셔터가 만들어낸 찰나의 향연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빛 놀이가 사진이라고
그녀는 말했지
미처 담아내지 못한 아카시아 향기가 필름 끝에서 진동을 하더군
진실을 살짝 혓바닥으로 튕기면
풍문이 귀를 향해 돌진한다
그럴듯한 언어들이 하얀 말을 타고 달리다가
오만가지 애드벌룬을 하늘에 띄운다
추측이 만들어낸 허구의 향연
말잔치도 사진놀이라고 친구는 말했지
조리개를 다스리면 마법이 열린다
아가리를 다스리면 영혼이 마른다
진짜가 못 이루는 똥꿈을 흉내 내는
가십으로 가득한 구멍 너머 찰나의 세상
가짜를 알아보면 왕따다
구멍 안에서 숨죽이는 진실의 생존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