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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개그처럼

by 박지영 Mar 09. 2025

웃고 배우라. 왜냐하면 우리 모두는 실수를 저지르니까.

ㅡ 웨스턴 던랩


 아가 때부터 소꿉놀이하며 같이 자라온 남자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네가 우리 집을 따라 새로 이사 한 동네에서 더 친하게 지냈었다. 낮이고 밤이고 붙어 다니며 놀던 그 친구를 초등학교 고학년이 된 이후 어느 순간 멀리했다. 이후 성인이 되어서까지 한 동네 살았지만 그 친구랑 같이 놀 기회는 영영 없었다. 그 친구는 결혼하고 미국으로 가버렸으니 나의 어리석은 고지식함이 남자들끼리 말하는 소위 'ㅇㅇ친구'를 잃어버리게 한 것이다. 어린 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안타까운 부분이다. 평생 가깝게 지낼 수 있는 둘도 없는 친구가 될 수 있었는데 왜 나는 그 친했던 친구를 멀리했는지.

3학년까지도 같이 놀았었다. 그 아이가 작은 눈뭉치를 만들어 내 손목에 올려놓아주며 빙긋 웃던 일, 하교 후 같이 땅따먹기를 했던 일이 기억난다.

 4학년이 되자 학교에서 갑자기 남학생 반, 여학생 반으로 반을 갈라놓았는데 당시 내게는 이상한 충격이었던 것 같다. '남녀사이에 뭔가 비밀스러운 것이 있나 보다'라는 금기 섞인 의문이 자리 잡은 것이다. 그렇게 그 친구를 멀리 했지만 신경은 엄청 썼다. 하굣길에 우연히 만나면 안 보는 척 고개를 푹 숙이고 지나갔다. 하지만 마음속으로는 다가가 반갑게 인사하고 싶었다. 그렇게 데면데면 내외하며 지내던 6학년 꽃샘추위가 한창인 3월이었다. 추위를 유난히 타던 나는 먼 등굣길이 너무 고통스러웠다. 손은 곱아서 펴지지  않고 입술은 퍼렇게 얼어붙은 채 코를 훌쩍거리며 교문을 들어서는데 그 친구가 교문 앞에 서 있었다. 학생 선도부였다. 앗! 추워서 유난히 초라해 보이는 내 행색이 엄청 신경 쓰였다. 안 보는 척 그 친구를 의식하며 들어서다가 교문 바로 앞에 경사지고 얼어붙은 땅바닥에 네 다리를 쭉 뻗은 채 엎어져버리고 말았다. 대형사건이었다. 얼마나 창피했던지... 그 친구가 나를 바라보고 있을 거란 생각에 얼음장 같던 얼굴이 불처럼 뜨거워졌다. 그날만 생각하면 지금도 창피하다.

이 일을 실수라고까지는 말할 수는 없지만 덜렁대고 급하면서도 소심한 내 성격이 보이는 사건이다.


 나는 살면서 유난히 실수를 많이 하고 살아온 것 같다. 일일이 열거하자면 참 부끄러운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난 조신하고 우아하게 보이고 싶은데 그게 안 되는 것이다.

"웃고 배우라"는 말은 이런 내게 안도감을 주는 말이다. 누구나 실수하는 인생이지만 창피해하고 후회하고 속상해하기보다는 웃으면서 배우라는 뜻이리라. 

난 가끔 생각한다. '인생을 희극이고 개그라고 생각한다면 사는 일이 좀 더 부드럽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마음먹은 이후 마치 윤활유를 뿌려준 듯 인생이 경쾌한 발걸음으로 내게 걸어왔다.

개그의 주인공이 되어 좌충우돌하는 지금의 내가 그리 밉거나 불편하지 않다. 요즘은 오히려 사랑스럽다고 하면 징그러울려나? 그래도 상관없다.

은 개그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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