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이 순간은, 언젠가의 유토피아

미래의 내가 건네는 안녕

by 본담

"그때가 좋았지"


사람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순간을 언젠가 '그때'라고 부를 거라는 사실엔 인색할까?




혼란은 나를 지운다.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소중함을 망각하게 하고, 지금 존재하는 시공간의 빛을 지운다. 무언가를 향해 피어오르는 열정을 무의미로 느끼게 하고, 폭풍 같은 감정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속삭인다.


그러니 현재는 꽤 보잘것없이 느껴지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우리는 혼란의 장막이 걷힌 지난날을 회상하며, 그 순간의 가치를 비로소 체감한다. 지나고 나서야 깨달은 본인을 향해 바보 같다고 쏘아붙이기도 하면서도, 그렇게 쏘아붙이는 지금 이 순간의 혼란의 장막 또한 곧 걷힐 거라는 건 모른 채로 말이다.


그러나, 혼란은 참 얄팍하다. 걷히고 나서 들여다보면, 내 옆에 있는 존재가 나에게 있어 떨어뜨릴까 봐 조마조마한 여리고 빛나는 유리구슬처럼 얼마나 소중한 존재였는지 보여준다. 그 순간 살아가고 있는 시공간의 빛이 어떤 색을 이루는지, 그 향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비로소 드러낸다. 무언가를 향해 쏟아냈던 열정의 아지랑이가 얼마나 뜨거웠는지, 그로 인해 나를 이루었던 폭풍 같은 감정들이 얼마나 찬란한 것이었는지, 이 모든 게 내 안에 숨 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위안을 주기도 한다. 마치 한순간의 기억으로 평생을 살아가는 이가 존재하는 것처럼.


의식을 다시 불러오기도 어려울 만큼 버거웠던 과거의 순간에도, 아주 작은 유토피아의 조각은 존재했다. 그 순간의 유일한 피난처가 되어준 인물이나 취미 활동, 죽고 싶은 순간에 먹었던 참 맛있던 음식, 눈물이 잔뜩 맺힌 눈 안에 들어온 이름 모를 고양이.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나를 숨 쉬게 해준 그날의 길 잃은 나.




디스토피아로 여겼던 순간들도 사실은 유토피아였음을 우리 모두는 "그때가 좋았지"라는 문장으로 체감하며 살지 않는가. 그 혼란의 장막 덕분에, 소중한 것을 이제는 놓치지 않으려고 손에 힘을 꽉 쥐고 살아가지 않는가.


저 멀리 한참 지나있는 시간선 위에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은, 현재의 나, 즉 과거의 자신에게 이렇게 읊조릴 것이다. 지금 그 순간에서 가장 작은 행복들을 찾으라고. 네가 있는 시간선에서는 잘 보이지 않겠지만, 여기서는 너무나도 잘 보인다고. 그러니 조금씩 찾아보고 체감하면서, 지금의 내가 존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충분히 안녕하라고.


언젠가는 유토피아로 여길 현재의 순간을 곱씹으며 살아가라고. 거기는 결코 디스토피아가 아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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