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고요히 남은 방식
첫사랑은 레몬 향이 난다고 하던가. 내 지난 사랑을 돌이켜봐도 그랬던 것 같다. 몸이 바르르 떨릴 정도로 강렬했지만, 그만큼 향긋했다. 계속 맡고 싶을 만큼. 그 향기에 잠식되어도 좋을 것 같다고 생각했었으니까.
그래, 그럴 때가 있었다. 사랑을 한 차례 거한 의식으로 떠나보낸 이후, 당분간 아무랑도 사랑하지 않겠다는 나만의 선언을 했다. 그 선언은 더는 자발적이지 않을 때까지 이어졌다. 이제는 누군가를 삶에 들여도 괜찮겠다고, 내가 누군가의 우주를 유영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어도, 좀처럼 그 희망은 현실로 구조화되지 않았다.
뜨겁고 찬란하며 오만한 사랑을 했던 나에게 사랑은 참 쉬웠다. 손만 뻗으면 바로 가질 수 있는 도구 같은 개념이었을지도. 나의 다정은 누군가에게 희망이 됐고, 그 희망은 사랑이라는 고백으로 전환돼 내게 주어졌다. 그건 곧, 주는 법을 몰랐던 사랑을 했다는 의미다. 사랑을 총량으로 정의한 후, 내 기준만큼 채워지지 않은 날에는 상대를 점점 소멸시켰다. 아니, 상대는 점점 소멸했다. 나는 공허의 통증과 스스로 재가 되기를 희망한 사랑이 나의 전부였음을, 지나고 나서야 깨달았다.
'별의 충돌'
사랑을 굳이 시각으로 표현하자면 이 문장이지 않을까,하는 사유가 들었다. 각자 다른 곳에서 다른 빛과 형태로 존재하고 있던 두 별이, 중력의 법칙도 거스르고 기꺼이 서로를 향해 충돌한다. 말로 표현하지 못할 만큼 뜨겁지만 두렵지는 않다. 충돌로 인해 발생한 잔해들은, 두 별의 달이 되어준다. 그것이 본래 탄 흔적일 뿐인 재일지라도, 두 별은 더 이상 어둠이 무섭지 않다. 서로를 통해 생성된 여러 빛이 어둠마저 우주의 한 조각으로 비춰주기에.
하지만 타오를 듯했던 열은 점점 식어간다. 식어버린 두 별에는 충돌로 인한 서로의 모양만이 흉터처럼 짙게 남았다. 각자의 모양을 새기고 살게 된 우리는, 내가 너일까 네가 나일까. 서로의 모양으로 살아가면서도 고유히 각자의 이름으로 불리는 두 별은, 앞으로 어떤 빛을 내야 할까. 아니, 본래 어떤 빛과 형태였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다. 이미 충돌한 그 시점부터, 그런 건 아무 의미 없어졌으니까.
연인, 친구, 우연히 만난 인연 등 우리는 다양한 충돌을 하며 살아간다. 앞으로도 계속 그럴 테지. 남겨진 자국은 서로의 중력이 얼마나 강했는지에 따라 선명도가 다르겠지만 확실한 건, 다양한 형태의 모양을 품은 현재 시간선의 우리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유한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 그 사실이 참 슬프면서도 시리게 다행이지 않은가. 이렇게나 많은 모양들을 품고 있는 고유한 별끼리, 또다시 기꺼이 충돌하며 기존에 있는 흉터와 각인들을 본인의 모양으로 새로이 덮어주겠다는 이 모든 것이.
더 이상 나를 공전하는 별이 스스로 재가 되도록 태우지 않으려고 한다. 사랑은 희생이 아니라, 서로의 궤도 안에서 존재해 주는 거니까. 어떤 모양을 품고 있든, 얼마나 강력한 중력으로 나를 끌어들이든, 더는 두렵지 않다. 그저 존재해 주길. 온전하고, 완전하게. 수많은 별들의 충돌 이후에도, 여전히 우주는 아름답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