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순

너를 품고, 나를 기억하는 일

by 본담

"며칠 전, 조카가 태어났어요. 세상에 한 번도 딛지 않은 발을 보며, '나 아기 좋아했었구나'를 자각했어요. 지금껏 좋아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때, 예전에 꿈꿨던 교사의 길을 놓은 걸 잠시나마 후회하기도 했어요. 이것도 모순이라면 모순이겠지요. 하하."


최근 한 모임에 나가서 지인에게 들은 문장이다. 우리는 '모순'을 주제로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작은, "왜 사랑하면 더 숨기고 싶고, 두려움이 발생하는가?"라는 문장이었다. 그야말로 모순이 아닐 수 없었다. 사랑은 그 사람과 하나가 되고자 하는 연결감인데, 어째서 다른 성질의 감정이 피어오르는가. 너무나 당연해서 의문조차 가지지 않았던 그 이중성에 관해서 우리는 서로가 살아오면서 느낀 모순성을 부드럽게 나누었다.


음과 양, 이원성이 뚜렷하다 못해 정체성이라 할 수 있는 이 푸른 행성에 거주자인 우리들은 우주와 마찬가지로 수많은 주파수를 품고 있다. 그 진동 안에는 다양한 기억이 존재하는 만큼, 서로 상반되는 성질의 파동이 무수히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는, 그 모든 것을 아울러 제 정체성을 찾아가는 존재들이다. 모순이라는 단어는 대개 부정적 의미로 많이 사용되지만, 결국 우리는 모두 모순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정의해도 할 말이 없는 셈이다. 그리고 그 모순은, 생각했던 것만큼 간사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은 왜 두려움을 동반할까. 설레는 마음으로 인해 두근거리는 심장이 불편하게 느껴져서? 외적으로 나아 보이고자 하는 욕망으로 인하여? 호르몬의 짓궂은 장난질로 인하여?


조금 더 본질로 들어가 보자. 사랑은 '통합'의 에너지다. 경계와 분리가 없는, 고차원의 하나 됨의 성질이다. 자아로써 활동하고 있는 우리들은 타인의 주파수에 쉽게 전염되지 않도록 단단한 물리적 구조를 갖게 되었다. 그 결과, 분리와 경계를 중심으로 타인이라고 여겨지는 수많은 대상들과 여러 에너지를 교류하고 공동 창조하게 된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기를 기꺼이 희망하는 사랑은, 그러니 당연히 두려움을 유발할 수 밖에 없다. '나'라는 경계가 허물어지는 느낌은 위협으로 느껴지기에 아주 타당하다. 점점 나를 잃어가는 듯한 감각. 내가 누구였고, 원래는 어떤 사람이었는지 깊이 사유하게 되는 구조의 붕괴는, 경계라는 이름의 성벽을 세우기에 충분한 이유가 된다. 혼란의 원인이 되며, '내 사랑은 왜 남들처럼 아름답지 않은가?'라는 물음을 자신에게 던지게 만든다.


과거, 지금 돌아보면 유토피아였던 한 존재와의 사랑은, 당시에는 나를 끝도 없이 태웠다. 서로의 모양대로 깎이고 깎여 그를 만나기 전 시간선의 내 흔적은 더는 찾아볼 수 없었다. 정확히는 그랬다고 생각했다. 서로를 소멸시킨 사랑. 그렇다면 우리가 서로에게 남긴 건 구태여 이제는 아무런 쓸모없는 한 줌의 재밖에 없게 되는 걸까.


지금까지 함께했던 여정에 비해 관계의 마침표를 찍는 순간은 어찌나 짧은가. 손가락으로 콕, 한 번 찍으면 충분했다. 알량한 매듭의 문장이 우리를 더는 물리적으로 만날 수 없게 만들었지만, 내 안에는 놀랍게도 그의 결이 살아 숨 쉬고 있었다. 평소 수줍음이 많고 낯선 자리에 잘 못 어울리던 내가, 그의 주저 없는 밝음과 경계 없는 환함을 닮아있었다. 나는 어느 자리에 가나 그가 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건, 결코 자아의 '소멸'이 아니었다. 새로운 나, 새로운 시공간의 나로 '확장' 된 경험이었다. 나도 몰랐던 내 모습을, 사랑을 통해 알게 된 것이다.


통합은 그런 것이다. 서로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고귀한 경험은, 본래의 나를 죽이는 게 아니라, 더 넓고 깊은 나로 회귀하는 것이요, 잊고 있던 근원에게로 향하는 경험이다. 그 과정에서 마치 모순처럼 반대되는 감정들이 피어오르는 건, 자아가 고유성을 지키려는, 생존본능과도 같은 반사적 현상이지만, 우리가 사랑을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문장으로 정의하는 이유는, 서로의 수많은 모순조차도 기꺼이 전부 품겠다는 용기의 선언이 아닐까.


사랑은 흡수가 아닌 순환이자, 마모가 아닌 성장이자, 동화됨이 아닌 더 깊은 나에게로 향해가는 달콤한 여정이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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