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난 저런 어른이 되지 말아야지
어릴 적 명절 시즌이 되면 인터넷에 ‘명절 잔소리 피하는 방법’ 등과 같은 제목의 글이 많았다. 대학, 취업, 결혼, 출산과 같은 인생의 큰 이슈들에 대한 친척 어른들의 잔소리를 어떻게 하면 재치 있게 피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어린 나는 그들의 감정에 공감하기는커녕 ’뭘 그런 걸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아?‘하며 뒤로 가기를 눌렀었고, 마치 빨리 감기를 한 영상처럼 시간이 흘러 명절 잔소리를 직격타로 맞는 스물아홉의 내가 되었다.
따지자면 사촌 언니, 오빠들 사이에서 난 완벽히 막내다. 그들이 20대가 되어 함께 맥주를 마시러 갈 때 나는 나이가 어려서 가지 못해 속상했던 기억도 있다. 그만큼 나는 우리 가족들 사이에서 평생을 막내로 살아왔는데 그런 나에게 잔소리가 쏟아지다니? 미칠 노릇이었다.
한국 사회는 그 시기에 정해진 미션을 성공하지 못하면 우리를 마치 스테이지를 깨지 못해 슬퍼하는 캐릭터로 만들어버린다. 나는 아직 스테이지를 깰 생각조차 없었는데, 그냥 이 맵을 조금 더 즐기고 싶을 뿐인데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지 않는 나를 들들 볶거나, 조언을 얹어주거나, 쯧쯧 혀를 차기도 한다. 나는 그 불쾌한 격려를 받을 생각이 전혀 없다. 우리 부모님도 강요하지 않는 내 인생의 방향을 왜 타인이 정해주려고 애를 쓰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불쾌한 이유는 또 있었다. 단순히 명절 잔소리만이 아니라, 어른 같지 않은 어른들의 뼈 있는 말들 때문이었다. 술을 드셔서인지, 그냥 나를 무시하고 싶으셔서인지, 뭔지 모르겠지만 이번 명절에는 ‘선생 똥은 개도 안 먹는다’는 소리로 갑작스러운 교사 비하 발언을 선물 받았다. 또, 교사로서 새로운 도전을 꿈꾸고 있는 나에게 ’그런 거 하지 말고 연애 사업이나 제대로 하라’는 말도 덧붙이셨다. 나는 포장하고 포장해서 ‘제가 다른 사업 알아서 잘할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라는 말로 화를 참아냈다.
나이를 먹으며 어른이 된다는 걸 항상 멋지게 생각했고, 괜찮은 어른이 되는 내 꿈을 위해 진지하게 고민해 왔는데 오늘 제대로 알았다. 나이를 먹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더라는 것을.
세상에는 셀 수 없이 다양한 삶의 모습이 있다. 일부 어른들을 ‘꼰대’라고 칭하는 건 그 다양한 삶의 모습을 전혀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성장하는 과정에서 닮고 싶은 롤모델의 역할도 매우 중요하지만 ‘저 사람처럼은 절대 안 되어야지’도 꼭 필요하다고 들었다. 명절은 매번 숨이 막히지만, 스물아홉의 추석은 더 편치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오늘 어떤 어른이 될 것인가 배우는 하루였다.
남을 깎아내리기 위해 애쓰는 말들, 타인의 삶을 짐작해서 섣불리 조언하는 말들, 격려로 위장한 불쾌한 말들은 모두 괜찮지 않은, 아니 굉장히 별로인 어른들의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