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에 산다는 것

by Grace k


여느 때보다 훨씬 일찍 눈이 떠진 이른 아침.
Shift 없는 날의 청개구리 같은 반란.
이불 속 뒤척임으로 하루를 느긋하게 시작하고팠던 욕심도,
인생사마냥 뭐 하나 내 맘같이 되지는 않는다.

친구를 만나 이른 점심을 챙겨 먹고,
한국을 다녀온 얘기를 나눌 테다.
고국 땅, 연로하고 병드신
같은 연세의 친정엄마를 걱정하는 공통 관심사에
우린 같이 염려하며 늘 눈물바람이었다.

멀리 떨어져 사는 것 자체가

부모님에겐 불효이다.

그러다 많이 약해지신 어머니와 먼저 이별을 맞은 친구의 슬픔이
내 아픈 손가락마냥 나도 아프다.
살면서 찾아드는 희노애락의 일들 중에
슬픔의 빈도수가 잦아든다고 느끼게 될 때가 많아진다.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현실이
비기너에게 바둑의 수를 몇 개 더 물려주고 시작하듯
불리한 듯도 하고, 불운할 일도 더 많다.

살아온 날만큼의 지혜가 불어나고
지식이 불어나는 거라면 얼마나 좋을까.

젊은이들은 엄마뻘의 연배를
못 견뎌 하듯 칭한다.
“나 때는 말이야”를 일삼는 꼰대들.
반은 틀려도 반은 맞다.
그래서 노인이 되어가지만
어르신이 되기는 어렵다.

문득 지나다 투명한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보면
헉! 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자동 고침마냥 적당히 보정되고
필터링을 거친 내 모습이 그나마 나일 거라 믿다가
Ugly함에 화들짝 놀라고 만다.

내면마저 들킨 느낌.
그래… 이게 정직한 나잖아.
거울 치료란 이런 거다.
그 모습이 내 진짜인 걸 인정할 줄 아는
주제 파악만으로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애써 입꼬리 올리며 웃는 연습을 해 본다.
모공 없이 매끈한 피부에
생글거리는 미소만으로 눈부신
10대, 20대가 내게도 있었다.

이젠 애써도 시간을 돌릴 수 없음을 인정하며,
그윽하게 어르신으로 나이 들어가고프다.
내가 존경하는 몇몇의 어르신들은
얼마나 아름답던가.

그래… 늙음이 죄가 아닌 걸.
힘주어서라도 환하게 웃어보자.
눈이 뻑뻑해도 사물을, 세상의 양지를 들여다보자.
내 손 한 뼘만큼의 닿음이라도
필요한 곳에서 온기가 되어주자.
그것이 글 한 줄의 위로든,
물질이든, 미약한 기도이든.

그렇게 오늘을 살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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