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권의 책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

by Grace k

중2병은 나라도 못 막는단다.
요즘 세대의 사춘기 앓이가

유별나다는 뜻일 것이다.
내가 중, 고등학교를 다니던 80년대는
어땠을까. 적어도 내게 있어서 사춘기는
특별하다 할 것이 없었다.
소설 읽는 재미에 파묻혀
읽을거리만 있으면 행복했다.

루이제 린저와 헤르만 헤세가 그 중심에
있었고 신여성 전혜린이 거기 있었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는
사춘기 여중생들의 지적 호기심과 동경을
불러왔다. 그 책은 그녀의 왕성한 지적탐구와
사상 그리고 독일 유학이야기를 담고 있었다.
매일 늦은 저녁에는 현학적이고 난해한
그녀의 문장을 흉내 낸 일기를 썼다.
전혜린 번역으로 소개된 독문학을 탐닉하며
읽었다.
다소 어렵고 철학적인 문학작품들이었지만
당시엔 그 글들에 깊이 공감했다.
그중, 맑고 쉬이 읽히면서도 감동을 선사해 주는
한 권의 책이 있었다.

재독작가 이미륵의 '압록강은 흐른다'였다.

일제 치하에서 독립운동을 했었기에

그는 우여곡절 끝에 독일 망명길에 올랐다.
반 나치주의자로 어려움 속에서
동물학자의 길을 걷다가 문학의 길로
들어선 분이다.
존경하는 박완서 작가님의 책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와
결이 닮아있다.
두 책 다 너무 아름답고 소중하기에
꼭 소개하고 싶다.
작가의 어린 시절을 둘러싼 추억,
자라나며 겪은 이야기들을
잔잔하게 풀어가는 자서전이다.
독일어로 간결하게 써진 글을 전혜린이 우리말로 옮겼다.
작가의 영혼의 결이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밑바닥이 투명하게 보이는 시냇물처럼 맑은데
심금을 울린다.
밴쿠버의 한 도서관에서 이 책을 다시 만났을 때
감격했었다.
책을 좋아하는 지인들에게 마다 권했었다.

요즘은 과거에 머물며 추억하는 시간이 많다.
사진을 들여다보고, 옛 도서를 꺼내 읽는다.
고전영화를 아카이브 필름 저장소에서
다시 본다.
과거의 나는 어서 어른이 되고싶었고,
그 미래의 청사진은 밝음으로 가득했었다.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미래는
디스토피아적인 상상이 가득하다.
과거에 머물 수는 없지만 지금도 지나온 시간을
그리워한다. 그러하기에
그 시대의 문학, 음악, 그리고 영상들이 고맙다.
지금보다 물질은 풍족하지 못한 시대였을지언정
정신은 풍요로울 수 있었던 예술의 힘이
그리워지는 겨울이다.

전혜린이 문인들과 자주 어울렸다는 대학로의

학림다방을 찾다

대구의 김광석 거리를 방문하다

그리움으로 대표되는 음악인의

흔적 옆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