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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름다운 시절-1

친구여! 잘 가게.

by 정달용

[아름다운 시절-1]


우리 친구들은 6.25 전쟁이 끝나고 베이비 붐의 최절정기에 태어난 57년 닭띠, 58년 개띠생들이다.


그중 근열 친구는 동내 앞 빨래터의 바로 앞에 산을 등지고 외딴집에서 태어났다. 그의 집 앞으로는 삼반에서 발원하여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이인천의 맑은 물이 흘렀으며, 냇가에는 널찍한 바위가 깔려 있어 동네 아주머니들이 빨래하기 좋아 빨래터가 되었다.

코흘리개 소년들은 어느새 칠순을 바라보고...

그는 또래 중에서 생일이 가장 빨랐으나 키가 작고 몸은 땅땅하여 힘이 좋았다. 성격은 우직했고 매사에 침착했다.

그 친구는 초등학교는 1년 선배였지만 중학교는 함께 다녔다.


그는 눈썰미가 있어 계곡에서 가재나 게, 또는 물고기가 숨어 있는 곳을 잘 찾아냈다.


나는 그 보다 나이가 한 살 어렸고 생일도 늦었지만 민첩한 몸과 운동신경, 작은 체구에도 또래들에게 결코 밀리지 않는 힘은 있었다. 우린 동내 큰 마당인 근동이네 마당에서 줄을 그어놓고 격렬하게 몸싸움을 하는 삼팔선이나 오징어 게임을 하고, 저녁을 먹은 이후에는 달빛 아래서 진또리와 공차기를 하며 유년시절을 보냈다.


태어나 자라는 곳은 "아랫달밭"이란 좁은 고랑탱이였지만 담장 사이로 다닥다닥 붙어있는 집집 마다에는 거의 빠지지 않고 동네 또래들이 있었다. 그들은 무리지어 다니며 가장 기초적인 사회란 것을 자신도 모르게 배웠으며, 어려서부터 뛰어놀면서 체력을 키워 나갔다.


그의 부친과 일찍 세상을 뜨신 나의 부친은 아랫달밭에서 유일한 동갑내기로 두 가족들은 알게 모르게 친근하게 지냈다. 6.25 전쟁통에는 북한군이 온다는 소문이 돌면 동네 마을 뒤편 헛간너머의 땅굴에서 두 가족이 생활했단다. 우리 논의 대부분이 그 땅굴이 있는 헛간너머에 있어서 그 땅굴 입구에서 무거운 지개를 바쳐놓고 잠시 쉬었다 가는 곳이기도 했다.

뛰놀던 정자나무는 옛 그 자리에 있는데

6남매 중 막내인 나와 4남매 중 아들로서는 막내인 그와는 성격이 잘 맞아 어린 시절부터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다. 중학교 시절에는 저녁에도 그의 집에 마실을 가서 공부도 하고 밤늦도록 이야기도 하며 보냈다.


그의 방은 안방과 떨어져 있는 사랑방이라 어른들의 눈치를 덜 느낄 수 있어 좋았고, 따라서 종종 그의 집에서 잠을 자고 오기도 했다. 어쩌다 거꾸로 그가 우리 집에 마실 올 때도 있었지만 내 방은 안방과 붙어있는 작은방이라 밤늦게까지 있지는 못했다.


그 친구의 부모님은 내가 가면 "달용이 왔냐?"며 반가워하셨고 때로는 그의 집에서 저녁을 먹기도 했다. 친구집에서 먹는 밥은 우리 집에서 먹는 밥보다 훨씬 맛이 있었다. 항상 밥에 콩이 듬뿍 들어있어 콩밥을 좋아하는 나에게는 별미였다. 때로는 나도 나의 어머니에게 우리도 콩을 넣어 먹자고 말씀드렸지만 잠시뿐이었다.


낭군이 일찍 세상을 뜨고 홀로 된 몸으로서 제법 많은 농사체와 어린 자식들을 감당해야 하는 나의 어머니에게는 철없는 아들이었고, 지금 생각하면 사치였을 따름이었다.

소래생태공원에서

동내에는 많은 또래들이 있었지만 그 친구와는 특히 잘 통했다. 토요일이나 일요일에는 소를 몰고 들과 산을 누비고 다니며 소에게 배불리 풀을 뜯겼으며, 때로는 산에 소를 풀어놓고 우리는 우리대로 도라지와 잔디를 캐고 가재와 게도 잡고, 머루와 으름도 따먹기도 했다.


때로는 한 번도 가보지 않은 동네의 깊은 계곡 속을 가보기도 하였으며, 하교길에는 상개고개에서 동쪽으로 삼반을 병풍같이 둘러싸고 있는 높은 동네산의 능선을 따라 마을로 오기도 했고, 국동 곁을 기세 좋게 뻗어있는 신비의 산 국사봉을 가보기도 했다. 그저 철없는 중학교까지의 시절, 아름다운 추억을 가득 심어 놨다.


또한 스릴있는 것을 좋아해서 남의 수박살이나 주막집에서 시원하라고 우물에 담가 놓은 막걸리 훔쳐먹는 일들은 지금도 아주 짜릿한 미소를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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