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여! 잘 가게.
갔다. 아주 멀리 갔다. 원래 왔던 곳으로 돌아갔다. 친구는 내가 사는 곳 하고는 다른 세상으로 영원히 갔다. 꽤나 오랜 기간 동안의 투병생활, 끝내 이겨내지 못하고 주저앉았다.
혈액암!
무시무시한 병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잘 극복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친구도 극복하겠지!라고 희망을 가졌었다. 그러나 그놈은 친구 곁을 떠나지 않았다.
불과 어저께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잠시 소파에 앉아 있는데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는 근열 친구한테서 전화가 왔다.
그의 목소리는 약간 기운이 부친 목소리였지만 낮고 침착했다.
바쁘냐? 고 묻는다. 좀 아쉬운 듯 한 목소리였다.
바쁘다고 대답했다.
오랫동안 희귀병인 혈액암과 싸우면서도 다니던 회사의 배려로 얼마 남지 않은 정년퇴직을 마무리하였고, 결혼 이후 지금까지 살고 있는 소래 인근의 공원을 산책하며 조그만 희망을 갖기도 했었다.
날아가는 물새들을 바라보며 소중한 삶을 터득하기도 했고, 바래가는 공원의 갈대숲을 보며 다해가는 자신의 짧은 목숨을 슬픈 모습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다.
나는 힘을 내라고 했지만 그에게는 감정 없는 밋밋한 소리에 불과했다.
어쩌다 시간을 내서 기운 내라고 그가 먹고 싶은 저녁을 사줬지만 그의 운명을 바꾸는 데는 전혀 영향을 줄 수 없었다.
70도 채 살지 못한 그의 삶은 그의 순박한 성품과는 어긋나게 펼쳐졌다. 우직하고 선한 성품은 칼바람과 같이 날카로운 도시 속 사람들과는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간극이 컸다. 나름 오랫동안 생활한 도시 생활이었지만 시골의 냄새가 짙게 묻어나는 친구였다.
금요일 면회를 못 간 사정을 설명했다. "저녁 면회가 가족은 되지만 친구는 안 된다고 하더라."라고,
그는 "그럼 가족이라고 하지!"라고 아쉬워했다. 먼저 병원 측에서 물어 대답했으니 그렇게 되었다고 설명을 해줬다.
토요일에는 뭐 하냐?
시골 내려가야 돼.
왜? 할 일이 많냐?
응.
음말 밭에 갈 거냐?
그래,
소나무는 잘 크냐?
응, 잘 커, 그렇잖아도 어린 소나무가 겨울을 잘 견딜지 걱정이다.
나무가 얼마나 큰데? 1m?
아냐, 한 30cm 정도,
어린 소나무는 약하기 때문에 겨울에 보온을 잘해줘야 돼, 공원의 나무들 봐, 그런 걸 하려면 나름 공부를 많이 해야 되지.
그럼 그동안 베어놨던 풀을 덮어주면 되겠네.
그것도 좋지,
논은 어떻게 하냐?
내년에 서리태 콩을 심으려 한다.
그것도 좋지, 들꽤도 괜찮아. 들꽤가 상추 싸 먹기는 최고지.
일부분에 들꽤도 심어볼까!
그것도 괜찮지.
들꽤는 언제 심지? 이모작 할 수 있는 건가?
글쎄
들꽤도 심어야겠다.
그렇게 한 시간 남짓 긴 통화를 했던 친구였다.
그가 운명하던 토요일 저녁 헬스장에서 운동이 끝나고 집으로 오던 순간 문득 어린 소나무의 월동 방법 중 왕겨를 덮어주면 어떨까?라는 신선한 생각이 머릿속에 떠오른다. 그런 것에 누고 보다도 잘 아는 근열 친구에게 물어봐야겠다.
그런 친구가 이승에서 모든 것을 놓고 떠났다. 약해질 대로 약해져서 자신의 목숨을 유지하고 있는 주변의 한 뼘에서부터 창살 없는 감옥이요, 누가 자신을 알아줄까? 이 세상에서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은 가족 외에는 오직 나뿐이었을 텐데!라고 생각하니 어제 문병을 놓친 것이 후회가 크다.
"그 친구도 마지막으로 나를 보고 싶었었구나!"
친구가 수원 요양병원에 입원했을 때 달친회라는 모임을 하고 있는 친구들이 면회를 간 후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다. 기회가 온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이 조금 부족했던 것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