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을 저편엔 그리움이
달밭 제실에서 땀과 흙으로 범벅이 된 몸을 씯고 밖을 나오자 어두워지는 저녁인데도 빨래터에 사는 근국이 형님이 밭에서 꽤를 심다 말고 나를 보자마자 "동생 왔어? 늦게 왔네!" 라고 인사를 한다. "아뇨, 아침에 와서 일 좀 하고 지금 올라가려구요!" 나는 승용차를 몰고 집을 향했다.
< 아침에 일어나 문밖을 나서니 작은 정자나무 방향에서 근국이 형님이 자전거를 타고 올라오며 "동생! 나 오늘부터 자전거 타고 오기로 했어!"라고 인사를 한다, 그리고 속도를 내서 동내 앞 논과 우리집 앞 담을 따라 나 있는 조그만 길로 달린다. 길은 조금 오르다 비스듬이 내리막으로 되어있고 그 쪽에는 동네의 주인인 듯 늠늠히 서있는 큰정자나무가 있다. 그 형님은 속도에 못미쳐 그만 우리 흙벽돌로 쌓아 놓은 담 밑 주춧돌을 올라 기울어진채 타고 달리는데 자전거는 세울 수 없고 "어!, 어!, 어!"라고 허둥대다 넘어지고 만다.
나는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어디선가 서정주의 "바람, 바람아"란 노래가 조용히 흘러나온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3년전 돌아가신 노모가 떠오르며 눈가에 눈물이 고인다. 그리움의 눈물이다.
일요일 아침,
평상시 같으면 축구 유니폼을 입고 가방을 챙겨 일요일마다 찾는 운동장을 향해야 되었다. 그러나 오늘은 빵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한 후 달밭으로 향했다. 애초에 토요일인 어제 가려했으나 다니는 회사의 일 때문에 불가피하게 일정을 조정한 것이다. 도로는 예상외로 붐비지 않아 승용차는 빠르게 달려간다. 이인 들에서 일을 하시는 큰형님을 뵙고 달밭을 향했다. 내가 자란 달밭에는 노모에게서 상속받은 상여집께의 논과 음말 밭이 있다.
노모는 내가 11살 되던 49세에 홀로 되셨다. 두분은 억척같이 일을 하셨다. 그래 제법 장만해 놓으신 농사체를 이후 홀로 감당하셨다. 나는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맨몸으로 세상에 도전했다. 남에 의탁해서가 아니라 내 노력으로 세상에 도전해서 바로 서보자고 작심한 청년이었다. 그때의 나의 모습은 "청춘의 꿈"에 그려져 있다. 세상에 도전하기 위해 고향을 떠날 때도 많은 고민을 했다. 홀로 계시는 노모의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렸다.
"시골에서 노모를 모시고 살까?"
아냐, 나는 아직 젊다! 성공해서 노모를 모시는 방법도 있잖아!"
고민하다 노모에게 인사드리고 집을 나섰다. 이후 공무원이 되었지만 마음과 같이 되지 않았다. 대신 자주 내려가는 것으로 만족해야 했다. 세월은 자꾸 흘렀다. 노모는 정신이 희미해지셨다. 90이 다 되어서야 아들의 집으로 모셔와 10여년을 사셨다. 그래도 그때가 노모의 102년의 삶에서 진함이 배어있는 기간이었지 않나? 생각한다.
노모가 연세가 들어 아마 80정도 되었을 때인가보다. 노모는 알뜰히 장만한 논을 4명의 아들들에게 물려주고 음말에 있는 1000평 정도의 밭은 서운하니 당신 앞으로 해 놓으시겠다는 계획을 막내인 나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세월이 흐른 어느날 노모는 "음말 밭을 네 앞으로 해놔라!" 어느날 당신이 세상을 뜨면 형제들간에 분란이 일어날 것을 염려하신다면서...
너무 소중했다. 내 생전에는 이 유산을 꼭 지키겠다고 다짐했다.
그 밭과 논은 오랬동안 묶었었다. 묶는 것이 노모에게 죄송해서 무엇이라도 심기로 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음말밭의 절반 정도에 후손들을 위한 소나무를 심었고, 남는 여분에 과일나무를 심었다. 그리고 동쪽 계룡산 정상이 희미하게 보이는 양지바른 곳에 할아버지, 할머니 산소와 아버지 산소가 이미 모셔져 있었고, 3년 전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이곳에 모셨다.
그리고 상여집께의 논에는 토질을 개선 해 준다는 수잔글라스라는 풀를 심었다. 그러나 시골 일이라는 것이 풀과의 싸움이었다. 몇 주 전에 예초기로 잔디를 깎았더니 산소는 보기에 좋다.
노모가 잘 드시는 수박을 상석에 올려드리려고 어제 크고 맛있어 보이는 수박을 샀다. 그러나 가져간 수박을 사정이 생겨 올려드리지 못했다. 마음이 아쉽다.
"우리 어머니 잘 드실텐데!"
"벌써 3년이 되었구나!"
노모가 살짝 그립다.
해가 질 무렵이 되어서 연장을 거두고 노모께 인사를 드렸다. 어둠은 서둘러 오고 나도 서둘러 집을 향했다. 무료함을 달래고 잠도 쫒을 겸 음악을 틀었다.
정서주의 "바람 바람아!"란 노래가 흘러 나온다. 가사 속에서 노모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워진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낯선 바람 바람아
덧없는 한 세상 답답한 맘을
너는 달래주려나
세상에 지쳐 울고 싶은 날
나는 바람이 되어
한없이 위로가 되는
당신 곁으로 가서
참아온 눈물을 쏟고 싶구나
바람 바람 바람아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느냐
낯선 바람 바람아
떠나간 세월 내 청춘처럼
너도 떠나가느냐
마음이 다쳐 울고 싶은 날
나는 바람이 되어
꽃향기 흐드러지는
그 먼 곳으로 가서
참아온 눈물을 쏟고 싶구나
바람 바람 바람아
바람 바람
바람아 바람아
바람아 바람아
덧없는 한세상 답답한 맘을
너는 달래주려나
바람 바람 바람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