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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꼭! 꼭! 숨어라."

삶이란?

by 정달용

5. "꼭! 꼭! 숨어라."



오늘도 우리 집은 손녀의 흔적으로 시작해서 손녀의 흔적으로 마무리되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재미있어하는 것은 "술래잡기"다.


이국의 생활에 익숙해 있는 손주에게 심어 줄 수 있는 방안을 생각했던 것이 전통놀이다. 그중에서도 "술래잡기"가 대표적인 손주의 흥밋거리였다. 손주가 부르는 "꼭꼭 숨어라"는 웃는 소리와 뛰어다니는 소리가 밤 깊은 줄 모르게 하였다.


쿵쿵 거리는 소리에 아랫집에서 뛰어 올라올까 두꺼운 이불을 거실 바닥에 깔아놨다. 그러나 술래잡기는 거실 내에 두꺼운 이불 위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작은방도, 화장실도, 베란다에도, 심지어 커튼 뒤에도 몸을 숨긴다. 쿵쿵거리면 뛰고 웃으며 놀다 보면 자야 할 시간에서 한참 지나 있다.


불과 몇 년 전,

내가 사는 집 위 층에 어린 두 딸을 가진 젊은 부부가 살고 있었다.


그 젊은 부부는 어쩌다 마주치면 지나칠 정도로 자신을 낮추어서 인사를 했다. 특히 신랑은 지나가다 우연히 만나면 형님이라 부르며 마치 조폭의 우두머리에게 하는 것처럼 허리를 굽힌다.


처음에는 너무 심한 것에 거부감이 있었지만 여러 번 반복되다 보니 조금은 어색함이 덜해졌다.

문제는 이제 커가는 어린 딸이 둘이나 되는데 애 엄마는 또 임신한 몸이었다. 또 딸이란다.


분명 아들을 원했겠지만 무슨 말로 위로해야 될지 선뜻 생각이 나지 않는다.


어느 날 윗집에서는 아기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둘이서 놀던 윗집 운동장은 하나가 더 늘어 셋이서 뛰며 노는 소리는 가히 장관이었다. 아이들도 점점 덩치가 커가니 울리는 진동도 묵직해졌다.


어린 시절 초가집에 겨울이 깊어갈 때쯤이면 골방에 담아 놓은 고구마, 쥐들과 나누어 먹다 보니 절반으로 줄어있고, 어린애들 운동장에서 뛰어놀 듯 종이로 바른 천정 위에서는 어미 쥐와 새끼 쥐들이 노는 운동장이었다. 그 쥐들의 "찍! 찍!" 거리며 몰려다니는 소리가 하도 거슬려 시끄럽다 천정을 두드리면 놀란 쥐들은 쥐 죽은 듯 조용하고 조금 지나면 또한 마찬가지였다.


윗집 아이들의 웃고 떠들며 쿵쾅 거리는 소리가 수십 년 전 곤궁하게 살았던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그렇게 살았던 우리들이었는데...


그래도 아기들이 귀한 요즈음 모처럼 아기 울음소리도 듣기에 좋았다.


어느 날 오랜만에 윗집 부부를 만났다. 그들은 우리를 볼 때마다 무슨 큰 죄를 지은 것처럼 어려워한다.


"애들이 너무 시끄럽게 하죠?"

"애들 클 때는 다 그런 거지요."

"이해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젊은 새댁은 또 뱃속에서 넷째가 자라고 있었다. 또 딸이란다.


그렇게 네 명의 딸을 두었던 윗집 부부는 돈을 많이 벌었는지 같은 단지의 다른 동 지금보다 더 넓은 평수로 이사를 갔다. 요즘 보기 드문 대가족이니 넓은 곳이 필요도 하겠다.


이후 오랜만에 위집 부부를 만났다. 어느새 세월이 흘렀는지 큰 딸은 제 엄마만치 커 있었다. 예전 모습으로 깍듯이 인사를 하는 부부는 "그때 너무 고마웠어요!"라고 인사를 한다.


그 말속에는 아마 이사 간 곳에서는 예전 저럼 아이들이 자유스럽게 뛰놀지 못하는 것 같다는 감정이 담긴 것처럼 들렸다.


오늘도 손주는 "꼭꼭 숨어라"를 한다.


기껏 숨는다는 것이 제 눈에만 보이지 않으면 남도 못 보는 줄 알고 거실 바닥에 던져놓은 이불을 뒤집어쓰고 숨는다. 마치 들판에서 모이를 주워 먹던 암탉이 하늘에 매가 나타나자 급한 김에 머리만 풀 속에 박고 숨듯이.


다 보이는데...


그리고 옆에 두고도 "어디 있지? 안방에 있나?" 하고 중얼거리며 찾는 시늉을 하면 들킬까 두근거리던 조그만 손주의 가슴은 그만 참지 못하고 "나 여기 있는데!" 하고 자수를 한다.


"여기 찾았다!"


그 순간이 손주에게는 최고의 짜릿한 순간이다.


이제 손주가 술래가 되어 너스레를 떤다.


"할아버지 어디 있지! 여기 숨었나?"


그렇게 손주는 때로는 힘들고 귀찮을 때도 있었지만 사회의 주류에서 점점 멀어져 가는 두 부부의 메마른 삶에서 두어 달을 웃음과 생기로 넘치게 만들어줬다.


"이것이 사람 사는 것인 것을!"


딸이 떠난 며칠 후 호젓하게 우리 둘만이 거실에 말없이 있는데 아내는 그때가 생각나는 모양이다.


"할머니, 사랑해!"

"나는 할머니가 제일 좋아!"


그런 소리를 듣던


"그때가 자신이 살아 있는 것 같았다"라고.


그리고 아랫집에 사는 이웃이 고맙다. 딸 가족이 떠날 때까지 참아 주셔서.


그리고 혼자 생각해 본다. 태어나는 모두가 따뜻한 사랑을 담으며 성장했으면 하는 소망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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