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문해력(Senior Literacy)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 거지?

by 찾다가 죽다



달력을 보니 토요일이다.

옆에 일요일이고 그 옆에 다시 붉은 글씨로 숫자가 쓰여 있다. 뭐지? 밑을 보니 대체 휴일이라고 적혀 있다.

그러고 보니 3일 연휴인 셈이다. 연휴면? 주중과 주말에 대한 구분이 별로 없다.

딱히 은퇴해서라기보다는 이 전의 삶도 그랬다 대학에 있을 때는 정해진 시수(수업 시간)만 지키면 되니 정해 진 출퇴근 시간이 없다. 그에 앞서 사회에 있을 때도 남들보다 조금은 일찍 주 5일의 외국 회사 생활을 했다 여간해선 야근이 없다. 국내 기업에 다닐 때도 하루가 멀다 하고 잦은 해외 출장으로 여름휴가니 월차니 하는 개념이 희박했다. 그래도 은퇴는 다르다. 드물게 강의나 상담 요청 등이 있지만 출퇴근과는 다르다.


해서 뭔가 공허하고 비 생산적이라는 생각(처음엔 자책이나 자괴감이라고 표현했지만 몇 해 지나니 그 정도는 아니다.)을 (아직 까지는) 떨쳐버리기 힘들다. 아마존에서 책을 한 권 사서 읽다가 말고 이 글을 쓴다.

책 제목은 우리말로 ‘은퇴와 불만(Retirement and its discontents)’쯤 되지 싶다. 왜 나 같은 생각이 드는 건지에 관한 책이다. CEO, 병원 의사, 교수, 운동선수 등을 분야별로 대여섯 명씩 인터뷰한 내용을 섞어 쓴 글이다. 그 가운데 교수들에 관한 글을 먼저 골라서 읽는다.


그 서두에 ‘은퇴란 언어 가운데 가장 추한 단어다’라는 헤밍웨이의 인용문이 눈에 띈다.


책에서 일은 돈벌이 로스도 물론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자기 정체성과 만족감으로 서의 의미'를 강조한다. 생산적이지 못한 데 대한 부채 의식을 이 책에서는 ‘성실 윤리(busy ethics)’라고 표현한다. 초중고등학교 시절 교실 칠판 양 옆에는 각기 교훈과 급훈이 성실 과 근면인 시대를 살아왔다.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을 들추지 않더라도 크리스천이다. “새벽종이 울렸네 새 아침이 밝았네”하는 새마을 노래를 줄곧 들으면서 살아온 전형적인 베이비 부머 세대로서 은퇴 후에 갖게 되는 부담감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른다.


아니 어쩌면 연금 수령이라는 확실한 장치가 은퇴자임을 자각하고 스스로 세상과의 단절 내지는 괴리감을 자처하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해서 이 책에 이르기까지 더듬거리며 찾고 있는 것은 노후에 필요한 삶의 정당성이다. 챗 지피티에게 물어봐도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라. 전공과 경험을 살려 봉사하라. 이웃과의 관계를 넓혀라 등 공허하다. 어쩌면 좌우로 찢어져 악다구니를 쏟아내는 저들도 이런 허전함 때문일까?

누군가 내게 명쾌한 노년의 문해력(Senior Literacy)을 알려 줬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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