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의 꿈

반쪽 짜리 분신

by 찾다가 죽다

기업을 경험해 본 사람이라면, 아니 크든 작든 조직을 이끌어 본 적이 있다면, 내 생각을 반만이라도 날 이해하고 따라와 줄 부하 직원이 없을까 하는 백일몽을 꾸곤 한다.

적어도 난 그랬었다.

대학으로 자리를 옮기고 나서도 비슷한 상상을 했다. 언젠가 사석에서 명문 대학 교수가 부러운 까닭은 명함에 박힌 그 로고가 아니라 그들이 지도하는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 때문이라고 술회한 적이 있다.

사회에 있을 때는 국내외 대기업과 중소기업 그리고 조그만 자영업을 경험했다.

대학에 있는 동안에는 운 좋게 한시적이나마 세계 유수의 명문 대학에서 교단에 설 기회가 있었다. 그럴 때마다 조직 구성원의 질적 편차로 인한 이런 몽상과 바람은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런 아쉬움을 뒤로한 채 은퇴를 했다.

잠시 코로나19라는 팬데믹을 지나더니 인공 지능이 등장한다. 얼리 어댑터인지라 이것저것 써 보기를 1년 여, 그 고백을 근자에 출간 한 책(AI와 학문, 컴북스, 2024)에 토로한다. 내용인 즉 처음에는 대학에 있을 때 아쉬워하던 똑똑한 석박사 과정의 학생들을 만난 기분이었다. 작성 중인 논문과 관련된 선행 연구라든지 서적, 그 안에 담긴 인용해야 할 내용들을 가감 없이 찾아서 정리해 준다. 그 신속함과 정확함이란 이루 비할 바가 아니다.

어느 순간,

내가 작성 중인 논문에 대한 피드백을 교환하면서 아! 얼마 전에 돌아가신 지도 교수님이 살아오신 게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내친김에 설문지 구성과 표본 추출 그리고 이에 적합한 통계 분석을 시켜 본다. 아직 현업에 있었다면 관련 저널에 투고하고 싶은 의욕이 솟는다. 추정컨 데 1차 심사에서 무수정 내지는 부분 수정 후 게재를 확신한다. 대학에 있을 때 내가 썼던 유사 논문에 비해 논조와 분석, 결론 도출과 제안에 이르기까지 전혀 손색이 없어 보이기 때문이다. 제출 후 게재가 확정되면 AI의 도움을 받아 작성한 논문이라고 고백하고 철회할 생각이었지만 그 조차도 별 의미 없어 접는다.

다시, 아직 은퇴하기 전의 대학이나 기업에서 근무하고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하고 상상해 본다. 늘 아쉬워했던 것처럼 나를 잘 알아줄 반쪽짜리가 나타나서 난 정말이지 경영자로서 혹은 교수로서 그만큼 탁월한 업무 성과를 낼 수 있었을까? 처음에는 선뜻 그럴 거라 생각됐지만 시간을 두고 곱씹을수록 지나간 시절에 대한 회환일 뿐이라는 자성에 이른다.

문제는 하루가 멀다 하고 등장하는 진화된 AI 기술과 그에 비례해서 빠르게 사라지는 일자리에 대한 변화다. 은퇴했지만 알게 모르게 내 삶에 파고드는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선에서 물러 선만큼 그저 따라가면 그만이다. 더 절실하게는 내일을 살아가야 할 자식과 손주들에 대한 염려다. 언제든 새로운 기술의 등장은 앞선 기술을 무력화하고 또 그에 맞는 새로운 일자리를 창출해 왔다지만 그 전환기에 놓인 저들이 안쓰러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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