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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Feb 07. 2022

정의가 없는 사회

正義? 혹은 定義?

마이클 샐던의 ‘정의란 무엇인가?’라는 책이 국내에서 베스트셀러의 반열에 오른 이유는 그만큼 우리 사회가 정의에 관심이 많고 희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뒤집어 말하면 정의 부재 사회를 반증한다고도 할 수 있다. 

뒤이어 나온 ‘공정하다는 착각’역시 이런 맥락에서 수긍할만하다.

샐던이 말하는 정의(正義, justice)는 응당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로 사회를 살아가는 데 있어서 모두가 지켜야 하도록 강제하는 규범’이다.     


오늘 우리 사회의 정의 부재는 정의에 대한 정의(定義, definition)를 포함한 온갖 정의가 부재하기 때문이다. 

 일찍이 조동일 교수는 수입학에 의존한 우리 사회가 시시비비를 가리는 시비학의 과정을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 나름의 자립학 수립에 실패했고 이는 결국 창조학의 벽에 부딪칠 수밖에 없는 한계를 드러낸다고 지적한 바 있다. 

 최진석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를 질문하지 않는 사회 곧 무조건적인 서구 문물의 수용으로 인한 호기심의 부재를 염려하고 있다.

  근자에 박태웅(눈떠보니 선진국)은 우리가 질문하지 않는 이유는 문제의식이 없기 때문이고 이는 결국 온갖 용어나 개념에 대한 정의(定義) 부재를 가져와 각자도생, 내로남불의 사회를 초래했다는 비판이다. 

그 예로 대통령 직속 4차 산업혁명위원회 어디를 봐도 4차 산업에 대한 정의가 부재함을 지적하고 있다.


교수들이 쓰는 논문에서 가장 중요시되는 항목이 조작적 정의다. 

이는 어떤 개념을 과학적으로 정의하는 방식으로 사회과학에서도 측정하고자 하는 변수를 먼저 정의하고 그에 따라 통계분석을 진행한다. 따라서 논문에서 정의(定義)는 곧 정의(正義)를 판별하는 기준이 된다. 

    

우리 속담에 ‘나는 바담 풍하여도 너는 바람 풍하거라’는 표현이 있다. 세속적으로는 ‘개떡같이 말해도 찰떡같이 알아듣기’가 있다. 이게 가당키나 한 말인가?


화자와 청자 사이의 불일치는 응당 불을 보듯 뻔한 노릇이다. 이때 옳고 그름의 판정 기준은 무엇인가? 윗사람, 힘 있는 사람, 곧 결정권을 가진 갑(甲)의 몫이다.     


우리 사회가 정의를 논하고 그것이 정착하기 위해서는 먼저 정의가 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공유(consensus)할 수 있다     


  과거의 결정권자들은 자신의 부정 의한 주장을 구두로 전달했다. 

설사 글을 사용해도 학식이 짧은 사람이 이해할 수 없는 한자에 의존했었다. 

 그러나 이제 다행스러운 것은 SNS 시대에 접어들면서 모든 것들이 활자든 영상이든 기록으로 남는다는 사실이다.      


기록은 디지털로 남는다. 

디지털은 추상적 수사를 지양하고 객관적이며 명료한 표현을 지향한다. 


정의(定義)가 광범위하게 확산될 때 정의(正義)는 제대로 정착될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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