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부동심
“어이.. 자네가 판 아파트 그때보다 1억이 올랐던데 알아?”
은퇴에 맞춰 아파트를 처분하고 서울 외곽에 마침 맘에 드는 전원주택이 있어 이사 온 지 반년이 지났다. 늦은 여름에 와 초봄을 맞으니 가을과 겨울을 지낸 셈이다. 그 새 불난 듯 단풍으로 뒤덮인 앞산과 뒷산, 온 세상을 새하얗게 뒤덮은 흰 눈을 만끽하니 글도 더 잘 써지고 생각도 더 깊어지는 듯싶어 흐뭇한 요즘이다.
코로나로 서로 떨어져 사는 세상에 굳이 전화를 걸어가면서까지 이런 소식을 전해 주는 심사가 뭘까?
아끼는 마음에 안타까워서일까? 평소 곱지 않은 마음에(나의 인격적 결함으로) 고소해서일까?
그 속내야 모르지만 심사가 편치 못하리라는 예측은 가능하다.
누가 그랬던가? ‘홀로 설 수 있는 사람은 결코 남을 흔들지 않는다’고. 혼자 서기가 힘들었을까?
또,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다.’는 사회적 복통 때문일까? 모를 일이다.
분명한 건 우리 모두가 거역할 수 없는 외부의 엄청난 힘에 휘둘리고 있다는 사실이다.
국가적 차원에서의 쏠림 현상이다. 누구의 일탈도, 예외도 허용하지 않는 패거리 주의의 광풍에 휩싸이고 있다는 느낌이다.
왜 이럴까? 이렇게까지 됐을까?
고속 성장의 후유증?
지나친 경쟁주의의 결과?
각자도생의 세계적인 추세?
그 이유나 원인이 뭐라도 상관없다. 단지 이건 사람 사는 세상이 아니지 싶다.
해법은 없을까? 앞서간 다른 나라들의 경우는 어땠을까? 싶어 책을 뒤적인다.
하버드 대학 교수를 지낸 사회학자 필립 슬레이터가 쓴 ‘부 중독자(Wealth Addiction)‘라는 책에 ‘원하는 집을 사기 위해 열심히 저축하는 사람은 중독자가 아니다. 진짜 중독자는 투기를 목적으로 돈을 벌기 위해 원하지도 않는 집을 사는 사람들이다’는 글이 보인다. 설마? 그 많은 사람들이 중독자들이란 말인가? 아니면 그들을 그렇게 만든 정책이 원인이라 말인가? 모를 일이다.
이번엔 동양 서적을 펼쳐 놓고 노자의 ‘부유불거 (夫惟不居) 시이불거 (是以不去)’를 읊조리며 또 공자의 ‘君子居之 (군자 거지), 何陋之有 (하누지유)’ 되뇌며 다시 사색에 잠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