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비사비와 저장강박증
와비사비: 일본어다. 사전을 찾아보면 ‘투박하고 조용한 상태’라고 나온다.
오래된 일본의 다실(茶室)을 연상케 한다. 하지만 내게는 소설 은교에 나오는 노 작가의 집(얼마 전에 실제 촬영소를 다녀오기도 했다)을 떠 올린다.
다실은 단출하다.
반면에 작가의 집은 온갖 색 바랜 책과 원고지 뭉치로 부산하다.
내게 와비사비는 그런 공간으로 거기에 비추어 소유물은 좀 과하고 이질적이다.
하여,
은퇴를 계기로 세운 결심 중 하나가 소유물을 정리하는 것이었다.
굳이 과거형을 쓰는 이유는 은퇴하고도 두 해가 넘어가지만 별반 줄어들지 않은 물건들 때문이다. 엄밀히 따지면 외려 늘어난 셈이다. 3년 전 어머님을 여의일 때 남겨진 유품이라 고는 주민증, 손톱 깎기, 전화 번호부 손수첩과 돋보기 하나가 전부였다.
수천 권의 전공 관련 서적은 대학원생 연구실로 옮겼다. 말이 기증이지 내다 버린 셈이다. 한 학기 전 앞 방 교수가 은퇴하면서 복도에 내놓은 책들을 폐지 줍는 분들이 차로 실어가는 모습을 봐서 그 흉한 꼴은 모면해 다행이지 싶었지만 별반 다를 게 없다.
문제는 은퇴 후 사 모은 책들이 또다시 3백여 권에 이른다.
예전 회사 다닐 때 명품이랍시고 사 입은 옷가지, 온갖 전자 장비, 필기구… 여기에 더해 취미네 하고 전 세계를 다닐 때마다 주섬주섬 사 모은 골동품 축에도 못 끼는 고가구며 소품이 한 트럭이다. 또, 차를 즐긴다고 사 쟁인 온갖 종류의 다기와 차 봉지 등등.. 전혀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핑계는 있다.
주위에 나눠주니 하나하나 어렵사리, 신중하게(가격도 그렇고) 모은 건데 마치 자기에겐 필요 없는 물건을 받아주는 형세다. 그렇게는 도저히 못 하겠다. 해서 멈춘다.
주변에서는 저장강박증(!)이라는 반 농담성 지적을 내놓는다.
반박하지 못한다.
혹자는 모두 비우면 허전할지 모르니 좀 더 간직했다가 세상 떠나기 전에 비우라고 한다. 그럴 것 같다. 문제는 그때를 모른다는 것이다.
유품정리 사업자를 미리 만나봐야 할까…
내 삶에 흩어진 이런저런 모순들을 조율하고 싶다.
우선 물건들부터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