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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찾다가 죽다 Jul 24. 2023

시니어 해부학 1

누가 멀리하는가?

대학에 있을 때 공공기관의 지원으로 일반인 대상 영상 장비 다루기와 편집 등을 강의한 적이 있다. 

한 과정이 12주, 근 3개월에 이르는 제법 긴 프로그램이다. 연령 제한을 두지 않다 보니 20대 대학생부터 5~60대의 은퇴한 사람에 이르기까지 제법 고른 분포로 시작했다. 

문제는 다음 차수에는 젊은이와 그렇지 않은 비율이 1:2, 그다음엔 압도적인 시니어 위주 그리고 그다음엔 운영을 위한 최소한의 신청 인원 미달로 폐강으로 끝나고 말았다. 

강사로서 그 조짐은 이미 처음부터 예견된 바다.

수업 시간에 모르는 걸 물어보는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 물음은 이내 자신의 경력(사담)으로 이어진다. 강의를 마치고 끝나는 시간이면 나이 든 수강생들이 커피를 사겠다며 급우들을 인근 카페로 안내한다. 나 또한 강사 자격으로 초대를 받는다. 여기서도 이야기의 주도권은 당연 시니어들이다. 두 세 차례 따라나섰던 젊은이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슬금슬금 피하더니 이내 경로당 모임이 되고 말았다. 


카톡에 들어서니 밴드로 다시 페북으로 인스타로… 저들은 기성세대를 끊임없이 따돌린다 왜?


굳어지기 때문이다

나이가 들면 굳어지게 마련이다. 뼈마디가 뻣뻣해지고 관절에서는 앉고 일어설 때마다 부서지는 소리가 들린다. 한번 난 상처는 쉽게 아물기는커녕 이내 검버섯으로 자리매김한다. 육신만 그럴까? 마음 또한 굳어져 간다. 매사가 내 맘 같지 않고 못마땅하다. 이런 경직에 멀어짐은 오히려 당연하다


달라지기 때문이다

왜 못마땅할까? 달라져 서다. 이제껏 내가 배우고 경험한 것들이 그 효용 가치를 상실한다. 아니 아예 폐기처분 당하는 기분이다. 예전 같았으면 오래 산 사람만이 가질 수 있었던 노하우가 별게 아닌 것으로 추락했을 뿐 아니라 그 정도는 인터넷에 들어가면 발길에 채일 정도로 흔하디 흔하다. 얼마든지 대체가 가능해진 세상이다. 


멀어지기 때문이다

제일 심각한 것은 죽을 때가 점점 더 멀어진다는 기대감이다. 

⃣연령별 생존확률

•70세-생존확률 86%

•75세-생존확률 54%

•80세-생존확률 30%

•85세-생존확률 15%

•90세-생존확률   5% 

 즉, 90세가 되면 100명 중, 95명은 저세상으로 가시고, 5명만 생존, 80세가 되면 100명 중, 70명은 저 세상으로 가시고, 30명만 생존한다는 결론이다.


오늘 아침 지인이 보내온 문자다.

내 나이 60대 후반, 70을 바라본다. 이웃이나 친구들도 비슷하다. 하지만 우리 대부분은 앞으로 30년 곧 100세 수명을 상정하며 수다를 떤다. 즉, 5% 미만의 확률을 자신으로 당연시한다.


장자에 보면 吾喪我(오상아: 나는 나를 장사 지낸다), 성경에는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린도전서 15장 31절) 그리고 옛 로마의 개선장군들은 귀환할 때 반드시 대열의 맨 뒤에서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죽음을 기억하라,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를 외치는 사람이 있었다고 한다. 


모두가 인간은 죽는다는 죽음을 상기하려는 노력이다. 

우리 선배들은 환갑이 고비이기에 그즈음에 다다르면 따뜻했고 후덕했다.  

헌데 작금의 고령, 고령화, 초고령 사회로의 전이는 우리를 마치 영생 불사할 것 같은 오만으로 인도한다.


멀어지는 건 젊은 저들이 아니라 나이 든 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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