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 막 길을 걸으며
그렇지 않아도 후들거리는 다리에 누군가 뒤에서 등을 떠미는 느낌이다.
노년의 시간은 그렇게 빨리 지나간다
오뉴월 하루 해가 지루한 데 남은 삶이 아쉬운 건 무슨 변고인고?
인류 진화와 사회 문명은 동행한다.
때론 진화가 또 어떤 때는 문명이 앞서 가지만 작금은 문명이 너무 앞서가는 느낌이다
챗지피티가 등장하기 16년 전에 스마트 폰이 그 앞서 16년 전에 월드 와이드 웹(www)이
출현했다고 한다. 고작해야 32년, 60을 넘긴 내 나이에 고작 절반이다.
그 새에 세상은 뒤집어졌다. 그것도 두 차례나
어디 그뿐이랴, 쓰나미처럼 밀려오는 초고령 사회, 역사책에서나 보았던 중세 흑사병 같은 코로나19…
헌데 신기하다. 불과 1년 전만 하더라도 대문 밖 외출을 두려워하고 두문불출하며 온통 마스크와 소독제를 몸에 감고 살았는 데, 언제 그랬냐 싶다..
아직도 공식 집계와 발표가 없어 그렀지 여전히 감염자는 발생하고 때로 그 후유증이 심각하다는 얘기를 심심찮게 듣곤 한다. 이 것이 진화인가?
환경에 적응해 간다는 측면에서 볼 때 그렇게도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그런 불안을 거치면서 보다 소중한 것에 눈을 뜬 게 진정한 진화이지 싶다
“내려올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못 본 그 꽃..”
하이쿠 같은 어느 노 시인의 시구다(이름은 생략)
인터넷을 뒤져보니 이 짧은 시와 연관 지어 “너희가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며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마가복음 8:18)”라는 성경과 [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마음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고 들어도 들리지 않으며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라는 대학의 구절이 같이 검색된다.
모두가 비로소 나이 들어 가능해지는 일들이다.
요는 마음(관심)을 어디에 두느냐이다.
제대로 마음 둘 곳을 찾는 이, 그것이 나이 들며 하는 일이다.
하여 인생은 未완성이며 美완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