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제발 일어 나봐, 눈 좀 떠봐.

그리고 나하고 말 좀 해봐

by 초록 향기


제발 일어나 봐.

눈 좀 떠봐.

그리고 나하고 말 좀 해봐.

제발….


당신 무덤 앞에 꽃다발이…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당신 죽음을 슬퍼하며,

당신을 사랑했다고…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나보다 더, 더 슬퍼하며,

당신 친구라고…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더 잘해줄 것을, 더 잘해줄 것을 후회하며,

내 앞에서 당신을 위해 통곡하며…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당신, 일어나 봐.

일어나서 이게 무슨 일인지 나한테 말 좀 해봐.

당신 좀 일어나라고.


일어나서 제발,

나한테 이야기 좀 하라고.


제발, 제발 일어나서

나한테 이야기 좀 해봐.

이야기 좀…


왜 저 여자가…

왜 저 여자가 울어야 해?


왜 저 여자가 나보다 더 슬퍼해야 해?


저 여자는 뭐지?

저 여자는 도대체 뭐냐고?


저 여자, 남편은 뭐야?

당신하고 친구라네…


이게 뭐야.

이건 뭐냐고.

이게 뭐냐고…


당신, 일어나 봐.

제발 일어나서 이야기 좀 해줘.


아니, 꿈에라도 나타나서

제발 나한테 이야기 좀 해줘.


제발… 제발……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 그랬었구나…


당신이 했던 말, 당신의 행동…

그래, 그랬었구나.


그래, 이제야 이해가 가.

그래.


당신, 정말 힘들었을 거야.

너무 힘들었을 거야.


당신 성격에…

얼마나 힘들었니.

얼마나 괴로웠니?


아마 당신, 죽을 만큼 힘들었을 거야.

아마 죽고 싶었을 거야.


그래, 그랬을 거야…


그래, 그럴 수 있을 거야.


이 세상에서

내가 아닌 다른 여자도 당신을 사랑할 수 있었을 거야.


그럼, 그럴 수 있지.

왜 그렇지 못하겠어.


당신 같은 남자를

왜 다른 여자가 사랑하지 못하겠어.


그럴 수 있었을 거야…


그래도, 그래도

나는 뭐가 뭔지 모르겠어.


저 여자는 왜 저리 슬피 울지?

저 여자는 왜 저리 아파하지?


나, 어떡해야 해?

나는 어떡해야 하지?


나는 담담하게

우는 저 여자를 바라보고 있어.


나보다도 더 힘들다고 하는

저 여자를, 나는 이렇게 바라보고만 있어.


당신이 돌아올 수만 있다면…

돌아올 수 있다면


이런 건 아무것도 아니지.

얼마든지, 얼마큼이든 참아줄 수 있지.


당신, 이야기 좀 해줘 봐.


이럴 땐 나, 어떡해야 하느냐고…

말 좀 해봐… 말 좀……


머리가 헝클어졌습니다.

과거와 현재의 모습들이 헝클어져

어찌할 바를 모릅니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가 없습니다.


미칠 것 같습니다.


당장이라도 뛰어나가

그의 무덤을 파헤치고

그를 잡아 끌어내고 싶습니다.


그를 일으켜 세우고 싶습니다.


할 수만 있다면… 할 수만 있다면…


한 번만이라도

소리치면서, 소리치면서

그렇게 울부짖고 싶습니다.


이게 뭐냐고…

이게 뭐냐고…


이게 당신이 살아온 결과냐고.

그렇게 성실했던 당신이…


이게 뭐냐고…

이게 뭐냐고…


말하라고 했지.

나한테 말하라고…


당신 혼자서는 견디기 힘들다고.

나한테 말하라고…


말해 달라고…

말해 달라고…


당신, 항상

“괜찮아. 괜찮아. 나는 괜찮아.

걱정하지 마. 걱정하지 마.


다 잘 될 거야.

다 잘 될 거라고…


너는 공부나 해.”

그랬잖아.


괜찮긴 뭐가 괜찮아…

이게 뭐야, 이게 뭐냐고...


그는

그렇게 나에게

너무나 많은 숙제를 남겨놓고 떠나버렸습니다.




1997년, 5월

내 남편의 무덤 앞에

내가 아닌 다른 여자가 있었다는

그 사실을


나는

오늘, 처음으로 끄집어 내봅니다.


그땐

인정도, 이해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냥 받아들여야만 했습니다.


지금도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말할 수는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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