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시!

생각하다.

by 피아노


기대하던 경기도서관이 개관을 했다. 어렸을 때 내가 사는 곳에 공공도서관이 세 곳 밖에 없어서 시험기간에 오픈런하기 위해 이른 아침 가도, 줄을 서야 했던 기억이 있다. 낡은 건물에 좁고 오래된 책상과 의자가 기억난다. 새롭게 지어진 초대형 도서관은 달팽이 모양으로 디자인되어 공간에 상당한 여유가 있고 자유롭게 가구가 배치되어 어느 장소에라도 머물러 책을 읽고 사유할 수 있다. 예술 관련 서적이 있는 곳이 특별히 마음에 든다. 대형도록이 비치되어 있고 잔잔한 클래식 음악도 흐른다. 편안하고 아늑한 공간도 조성되어 있다. 도서관의 변모가 놀랍다.

주말 아침, 새 도서관으로 향한다. 도서관이 넓은데도 마음에 드는 자리는 이미 다른 사람이 차지하고 있다. 요즈음 좋은 공간이 많아지고 새로 생겨도 사람들은 기가 막히게 알고 그 공간을 잘도 채운다.

자리를 잡고 <천천히 다정하게: 박웅현의 시 강독>을 펼친다. 시는 어렵다. 전하고 싶은 마음을 짧게 압축해서 전혀 다른 언어로 표현하는 시는 늘 어렵다. 그런 시를 박웅현 작가님은 친절하게 풀어 준다. 시와 가까워지는 시간이다. 이 시와 가까워지는 시간이 얼마나 소중한가. 책을 다 읽어 갈 즈음, 책의 맨 끝 부분에 있는 시가 너무나 가슴에 와닿는다.


<아주 낯선 낯익은 이야기 3, 이문재>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허파에 집중하며

가슴에 있는 풍선을 분다고

생각해 보라.


밥을 넘길 때마다

소화기관을 떠올리며

처음 봄 소풍 가는 딸아이

도시락을 싸주는 거라고


무엇인가 볼 때마다

다음 생을 위해

사진을 찍어두는 거라고


별을 올려다볼 때마다

저 별빛 중 하나가

천 년 전에 출발해

이제 막 도착하는 거라고

이제 막 지구를 스쳐가는 거라고

생각해 보라.


내 몸과 나는

얼마나 멀고 가까운가.

너와 나는

얼마나 신비롭고

거룩한 것인가.


시로 명상을 한다면 이런 내용이 아닐까. 내 호흡, 먹는 일, 보는 일, 별을 보는 일, 내 몸과 나, 너와 나.

삶의 자잘한 일들이 안 자잘해진다. 무의미의 축제들이 의미를 갖게 된다. 지금 여기 나를 알아차리고 내 시야에 들어오는 순간들이 포착된다.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보게 된다. 그래서 내 몸과 나의 거리를 좁힌다. 너와 내가 신비롭고 거룩하다. 나의 인생시를 만났다. 시를 크게 적어 어머니에게로 간다.


어렵기만 한 시를 거동이 불편하신 어머니는 매일 외우신다. 어머니와 여행을 할 때 운전을 하는 나에게 옆에서 외운 시를 낭송해 주신다. 그 어려운 시들이 어머니의 입에서 나오면 또 머리에 쏙쏙 박힌다. 이건 뭐지. 어머니와 함께 시를 이야기하며 감탄한다. 어려운 시의 세계가 안 어려워진다. 감동한 이문재 시인의 시도 금방 외우실 거다. 나에게 어머니는 시의 창고이기도 하다. 시가 줄줄이 사탕처럼 나온다.


시에게 다가가기가 어려웠던 나에게 박웅현 님의 책과 어머니의 낭송으로 조금 가까워졌다. 먹고사는 일에만 급급해하지 않고 시와 나도 올해는 더 가까워지기를. 오.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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