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E Seunghwan__수염 6년 차
이승환입니다. 수염 6년 차이고, 창업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인터뷰 당시)
** 2025년 4월 1일 현재, 해방촌에서 빙점강하력이라는 젤라또 가게를 운영하고 있다.
줄곧 음식 관련일을 해왔습니다, 벌써 12년 정도 되었네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축공학과에 입학을 했는데요, 5년이나 학교에 다니면서 배우는 게 맞나 싶은 거예요. 저는 뭔가 빠르게 성장하고 많은 경험을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1학기만 다니고 자퇴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후에, 외식업을 기반으로 한 초기스타트업인 “청년장사꾼”이라는 회사에 합류하게 되었어요. 장사를 배워볼까 하고 시작하게 된 건데, 그렇게 6년 정도일하면서 바라던 대로(?) 빠른 성장과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근데 몸을 혹사시키면서 일을 하다 보니 이러다간 30살도 되기 전에 죽겠다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남들처럼 회사에서 일을 해보고 싶어서 내일배움카드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배웠죠. 6개월 동안 주 5일 하루 8시간 넘게 배우고 집에 와서 코피 흘려가면서 복습하고,, 매장 일하는 것만큼이나 열심히 배웠습니다.
그때, 집이 익선동 근처였는데, 그때는 “녹기전에”라는 아이스크림 가게가 익선동에 가게가 있었어요. 가게 앞을 지나갈 때마다, 저 일이 참 재밌어 보였죠. 잠깐만이라면 “녹기전에”에서 일해봐도 좋은 경험이 되겠다 생각해서 시작한 게 6년 넘게 이어졌네요.
“청년장사꾼”도 그렇고 “녹기전에”도 그렇고 제로 베이스에서 함께 형태를 만들어나간다는 그 느낌이 성취감도 있고 참 좋았던 거 같아요. 많은 것들이 갖추어지지 않는 무(無)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아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가는 일이 참 고되고 정신적으로도 힘들긴 한데 그 이상의 기쁨이 있어서, 저도 모르게 그런 일을 해온 것 같아요.
특별한 이유가 있다기보다는, 앞으로도 무(無)에서 결과물을 만들어나가는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사람이란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고, 이제는 조금 더 제 색깔대로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에요.
가게 이름은 “빙점강하력”이라고 지었어요. 빙점강하력이란 단어, 들어보신 적 있으신가요?
(인터뷰어 : 빙점강화력이요?)
아니요, 하요. 아래 하(下). 영어로는 Anti Freezing Point, 어는 점를 낮춘다는 뜻이에요.
저는 아이스크림이란 물질의 정의를 얼린 것, 언 것이 아니라 “덜 언 것”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얼어버리면 얼음처럼 딱딱해서 씹을 수도 없잖아요. 그래서 어는 점을 낮춰서 아이스크림이 입에 들어왔을 때 부드럽게 녹는 질감을 만들어주는 게 중요하고요. 이게 아이스크림, 젤라또, 소르베의 본질이라 생각해서 빙점강하력이라고 가게 이름을 지었습니다.
없을 거라 생각했지만 같은 이름을 쓰는 브랜드도 없고 해서, 상표권 등록도 가능하더라고요.
외식업이 아닌 다른 업종에 종사하고 싶어서 직장을 관두고 프로그래밍을 배웠을 때, 면도를 안 하고 수염을 기른 채로 가도 아무도 신경 쓰지 않더라고요.. 매일 면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해방감이 좋아서 지금 이 시점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독립해서 따로 산지 꽤 된) 아들을 오랜만에 봤는데, 수염이 덥수룩하게 자라있으니까 많이 놀라신 거 같더라고요. 원래 사람이 너무 놀라면 오히려 아무 반응 못하고 동공만 흔들리잖아요. 나중 가서 놀랐다고 하시긴 했는데, 딱히 부정적인 반응은 없으셨습니다.
음,, 수염 때문인지 우연의 일치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수염을 기르기 시작한 이후 멋지다고 생각해서 방문한 음식점, 공간, 전시회를 가면 다 저같은 사람만 모여있더라구요. 수염맨들만 모이라고 한 것도 아닌데 말이죠.
예를 들어, 제가 오브제를 구경하는 걸 참 좋아하거든요. 예술품이나 아트토이 같은 것들이요. 그런 것들 구경하러 가면 저같은 사람이 많다보니 수염을 기르는 게 인터뷰를 할 정도로 특이한 건가라는 생각도 사실 했어요. 예전에 살던 보광동, 지금 살고 있는 해방촌만 해도 발에 치이는 게 수염남이잖아요(웃음)
근데 한편으론 제 좁은 바운더리를 벗어나보면, 수염을 기르고 머리를 치렁치렁 기르는 남자가 누군가에게는 특이하게 보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마스크를 착용하고 다닐 때 이야기인데요. 제가 몸에 열이 많은 편이라, 겨울철에는 마스크 속 수염이 촉촉하게 젖어요. 그래서 마스크를 벗을 때마다 수염에 고드름이 생기는 경우가 많아 마스크 벗을 때마다 몰래 확인하고 마스크를 벗었던 게 좀 귀찮고 부끄러웠습니다.
만인의 이상형인 수염 & 문신 & 피어싱남으로 한국 사회에서 잘 살아가기 위해서는, 외적으로는 험상궂어 보이지 않고 사회성에도 문제가 없어 보이는 사람, 내적으로는 하루하루를 남들처럼 착실하게 사는 사람임을 늘 증명해야 합니다.
제자신에게 나태해지지 않게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오히려 조금 더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매번 증명해야 하는 것들이 즐겁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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