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이주단 (미술작가+α)

YI Judan__수염 12년 차

by Jesse
Frame 20.png 이주단 YI Judan (아티스트, 수염 12년차) @fish_eater__


1. 간단한 자기소개와 수염歴

이주단입니다. 제 작업은 보호하는 신체로서의 피부를 고찰합니다. 이는 보호를 ‘어떤 해나 어려움이 발생하지 않도록 세심하게 돌보는 것’으로 정의합니다. 인간에게 피부는 뼈와 살을 덮는 보호막 역할을 하며, 세상과 가장 직접적으로 상호작용하는 감각의 시작점이기도 하죠. 시각이 즉각적 판단 장치라면, 피부는 신체를 통한 기억 장치입니다. 오래전에 본 것을 기억하지 못하더라도 몸에 새겨진 것은 영원히 남는 것과도 같이. 수염도 신체의 일부로 나의 정체성을 생성/보호하고, 외부와의 경계를 설정하는 역할을 합니다.

수염 12년 차.


2. 언제, 어떤 계기로 수염을 기르기 시작했는지

바야흐로 2013년,,, 아프로펌을 한 후, 더 이상 살릴 수 없는 머리를 보며 삭발의 길에 들어섰습니다. 이후, 수염과 머리보다 빠른 속도로 자라게 되었고 12년 넘는 기간 동안 2-3주마다 한번 수염과 머리를 정리하며 살아오고 있습니다. 중고등학교 때는 털요(털요정)이라는 별명이 있었는데요. 그땐 성인이 되면 제모를 받고 매끈남으로 살아가려 했는데, 어쩌다 보니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콧수염이 없고 볼과 턱에만 수염이 있으면 사람이 지나치게 “원”처럼 보이는 듯해서 콧수염까지 세트로 기르고 있다. 별다른 관리방법은 없지만 트리머와 가위로 길이 맞추는 건 신경을 좀 쓰고 있어요.


3.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 어떤 것들에 관심을 두고 있는지)

미술작가(artwork보기)가 본업이긴 한데, 연기일도 하고 바버 일을 배우고 있습니다.

보통 연기를 하는 분들이 돈을 위해 다른 일들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저에게 연기는 외모 덕에 따라오는 덤 같은 직업입니다. 배워본 적도 노력해 본 적도 없는데, 업계에서 일 년에 몇 차례 연락이 옵니다.

광고부터 영화, MV까지…

최근 작품,,,
호시X우지 (SEVENTEEN) '동갑내기'
_47__호시X우지__SEVENTEEN__‘동갑내기__Official_MV_-_YouTube.png 호시X우지 (SEVENTEEN) ‘동갑내기' Official MV


4. 수염을 기른다는 사실이 나의 일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미술 작업을 할 때, 스스로에게 많은 정체성을 만들어 준다고 느낍니다. 특히, 신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작가로서 체모에 대한 이야기나 외모의 상징성에 대한 기술을 피할 수 없는데, 나 자신이 등장하는 드로잉이나, 영상에서 작가 본인이 하나의 정체성으로 밈(Meme)화 될 때가 있어 꽤 편할 때도 많죠.

연기와 바버는 수염 덕이라 할 수 있고.. (가끔 연기 쪽에서 면도도 가능하냐고 물어볼 때가 있는데 그런 상황에서는 왜 나를 쓰려하는지 이해가 잘,,) 업계에서는 셀프 브랜딩을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런 의미의 외모에서는 S급이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합니다.

__fish_eater____•_Instagram_사진_및_동영상.png


5. 수염을 기른다는 사실이 나의 생활이나 취향에도 영향을 미치는지?

세일러문이나 브리트니 스피어스를 좋아하고 네일 아트도 즐겨합니다. 하지만, 수염이라는 방어막 아래여서 그런지 그렇게 극적인 끼스러움까지는 가지 않는 것 같아요. 극을 극으로 누르는 느낌이랄까...?

여성용 백을 든다거나, 치마를 입어도 과하게 페미닌 한 쪽으로 해석되지 않는다는 게 장점이자 단점. 훼이크의 훼이크처럼 무엇을 사도 당당할 수 있고, “민머리+수염=장인”이라는 느낌 덕분인지, 타인의 취향에 관한 이야기도 깊이 있게 듣고 추천받을 수 있어 좋아요.

__fish_eater____•_Instagram_사진_및_동영상.png 성령과 성자의 이름으로....


6. 수염을 기르면서 느끼는 즐거움이 있다면?

맘먹고 수염정리를 하면 단번에 5킬로 정도 체중감량을 한 것 같은 효과가 있어요. 갑자기 깔끔해지는 기분은 덤. 해외여행을 갔을 때, 종종 현지 바버샵을 가는 편인데, 운동과 더불어 로컬들과 가장 빠르게 섞일 수 있는 방법이 아닌가…라고 생각합니다. 같이 그루밍을 하며 그 어색한 시간을 즐기는 즐거움.

참고로 지금까지 가봤던 바버샵 중 최고는 대만 타이페이(가성비와 좋은 서비스), 최악은 프랑스 파리(피라미드역 흑인 바버샵)였…


7. 수염 때문에 있었던 안 좋은 일이나 에피소드, 주변에 시선이 있다면?

서양에서는 한국과는 달리 남자들의 수염이 당연하게 여겨지고, ‘수염을 기르는 아시안’은 그들(주류)과 친해지기 쉽고, 대화를 나누기 좋은 대상이 되곤 합니다. 특히 치마나 기모노까지 입고 있다면 어디서든 대화를 하고 초대를 받을 수 있죠. 물론, 그만큼의 차별과 싸움도 있지만.

부모님이나 할아버지, 할머니는 수염에 대해 전혀 No touch였어요. 그분들이 개방적 이어서라기보다는, 어렸을 때부터 아토피 때문에 고생했던 걸 아셔서긴 하지만. 먼 친척이 제 수염 가지고 뭐라고 했을 때 할머니께서 “네가 무슨 상관이냐”라고 커버쳐주신 게 기억이 나네요.

image (5).png 놀랍게도 가릴 곳은 다 가린 사진


8. 남들과는 다른 선택을 하며 사는 것에 대한 나의 생각

남들과 다르다 같다의 기준은 저에게 너무 어려운 이야기입니다. 애초에 남들과 같은 선택이 있기야 한가요…? 있다면 좀 알려주십쇼. 그렇게 살 수 있다면 정말 편하고 좋을 것 같으니까..


뭐 소위 ‘보편성‘이라는 선택지는 애초에 저에게는 불가능에 가까운 선택지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에서 남성의 몸으로 남성을 사랑하면서, ‘보편성‘이라는 선택지까지 Get한다.. 이건 뭐 거의 신화 속 이야기 아닌가요? 이번 생에 보편성은 얻지 못했으나, 금요일 토요일 이태원에서의 핫한 남정네들과의 뜨거운 밤… 보편성을 택한 일반인(?)들은 평생 모를걸요,,^^


제가 수염이 없어도 게이가 아니었어도 싫어하려면 뭔들 이유로 못 삼겠어요. 타인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기로 결심하면서, 타인의 의미 없는 비난도 자연스레 차단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보편적이라는 것도 정말 존재하는지, 그게 뭔지 정말 모르겠어요. 다 상대적인 거잖아요? 제 주변에는 착실하게 직장을 다니는 헤테로 남성이 너무나도 드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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