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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싶어요

by 유자


아빠랑 할아버지 산소에 다녀오는 날마다 나는 5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친구를 따라 간 콘서트 중에 나는 할아버지의 부고를 전해들었다. 콘서트장을 가득 메우던 함성과 화려한 조명이 난무하는 곳에서 홀로 느꼈던 찰나의 적막감, 그리고 급하게 광주로 내려가던 기차 안에서 생경했던 그 기분은 몇년이 지나도 생생하다. 마음을 가라앉히려 읽었던 책, 침을 연신 삼켜가며 광주에 도착하기 까지 내내 푹푹 쉬어댔던 한숨. 해가 저물어 까만 차창밖의 풍경들과, 축축했던 내 기분과 달리 퍼석퍼석 건조하기만 했던 기차 안까지.

당시의 나는 할아버지를 뵙지 못한지 2년을 훌쩍 넘겼었다. 아빠는 몇년 전부터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아빠의 아빠이니까, 아빠가 보지 않고 지내면 당연히 우리도 그러는 줄로만 알았다. 그렇게 나는 무책임하게 할아버지와 멀어졌다. 아빠 뒤에 숨어 비겁하고 무심하게 할아버지 댁에 냉큼 발을 끊었다.

다시 마주한 할아버지는 당신이 살아 생전 받아보시지 못했을 수많은 하얀 꽃다발들 가운데, 금색 테두리가 둘러진 액자 속에 계셨다. 사진 속 할아버지는 2:8 가르마에 새까맣게 염색을 하고 양장을 입고 계셨고, 내가 기억하는 우리 할아버지의 모습 그대로였다. 그리고 몇시간 뒤 내가 영안실에서 실제로 마주한 할아버지는 못본 사이에 비쩍 마른채로 새하얗게 샌 까까머리를 하고는 단단하게 굳어 누워계셨다. 창백하고 차가웠던 할아버지 손을 잡으며 나는 많이 울었다.

이 모든 상황을 탓할 사람이 없어 별안간 아빠를 미워하기도 했다. 그러다 나는 이해해보기로 한다. 아빠 또한 불완전한 인간이니까. 그 때 그 시절을 보내기 위한 안간 힘이었으리라 미루어 짐작해볼 뿐이고, 나는 아빠같은 자식이 되지 말아야겠다 오만한 속다짐을 하며 아빠를 더 사랑하는 방법으로 아빠를 용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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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예고도 없이 당신이 떠나고, 당신에 대한 그리움은 시간의 연속성과 공간의 제한성을 철저하게 무시한채 불규칙하게 찾아왔다. 아무것도 겨냥하지 않고 던져진 화살처럼 방향을 잃은채로 과녁 어딘가에 세차게 꽂혔다.

그 중 가장 오래된 기억은 할아버지가 옛날에 살던 집에서부터 시작한다.할아버지 집은 아주 낡고 오래된 주택이었고, 화장실은 대문 안에서 집과 가장 먼 곳에 있어서 저녁엔 부엌 구석에 둔 요강에 오줌을 누어야 했다. 마당에서 집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나를 볼 때마다 짖어대는 사나운 개도 있었고, 그 흔한 세면대도 없어 쭈구려 앉아 세수해야했기 때문에 나는 할아버지 댁에 놀러가는게 그리 달갑지 않았다. 밥을 먹을 때면 새하얀 내 밥 위에 취나물이나 고사리나물 같은 걸 꼭 얹어주셨는데, 그걸 맛있게 먹기에는 나는 계란말이나 소세지를 좋아하던 7살이었다. 내가 어딘가에 긁히거나 모기를 물리면, 혹은 어디가 조금이라도 아프다고 하면 만병통치약인듯 서랍장에서 꺼내 미끄럽고 찐득한 무언가를 발라주셨고, 그 이상한 촉감의 연고가 이유없이 싫어서 다쳐도 묵묵히 견뎌낸 적도 있다. 지금 생각하면 바셀린정도 였을 것 같은데, 나는 그냥 할아버지가 해주는 무언가가 꺼림칙했다. 그냥 단순하게 나이든 사람의 냄새가 나는, 촌스럽고, 오래된 것들이 싫었다. 수년이 지난 후 이제 나는 안다. 그 모든건 사랑이었다는걸.

나열하기에 너무 많고 먹먹한 사랑의 증거들이 가득하다. 조금이라도 바람이 부는 날엔 아랫목에 이불 덮어 따뜻하게 데워놓고 우릴 제일 따뜻한 곳에서 자게 하셨고, 나와 언니가 초등학생이 되는 시점에는 좋은 학교에 다녀야한다며, 할아버지 당신의 이름으로 새로 분양받은 아파트에 흔쾌히 우리 가족을 살게 하셨다. 버스로 통학해야 하는 중학교에 입학했을 땐, 종이로 된 승차권 100장을 사서 무심하게 건네셨고, 내가 대학교에 입학했을 땐 축하한다며 하얀 봉투에 용돈을 두둑하게 담아 건네셨다. 그 모든 조각들 중 나를 가장 날카롭게 후비는 화살은 할아버지의 오래되고 낡은 폴더 휴대폰의 배경화면이 항상 우리 집 막둥이였다는거다. 우리가 당신과 연락을 끊고 지냈던 모든 시간들까지도.

나는 오래동안 이 모든 것들을 당연하게 여겼거나 몰랐다. 그리고 이 사랑에도 끝이 있을거라는 의심조차 하지 못했다. 게다가 손주에게 이런 사랑을 주는게 당연하지 않은 세상이 있다는것도 최근에야 알았다. 당연하게 여기는 것들의 소중함은, 그 주체가 부재할 때 가장 여실히 깨닫는다. 그렇기에 꾸준히 탐하고 감사해야겠다고 생각한다. 다양한 모습을 하고 있는 고사리나물이나 바셀린같은 그 것들을.

당신을 떠올릴 때마다 당신께서 좋아하셨던 음식을 자주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동네 구석에 있는 식당의 동태탕을 좋아하셨다. 그 날 그 날 준비한 정갈한 반찬에 시원한 나박김치가 맛있던 집. 문득 나는 당신이 그렇게 좋아하시던 그 동태탕을 한번도 사드린 적이 없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내년 할아버지 제사 때는 동태탕을 하나 사서 올려야겠다.



보고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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