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깨물어 더 아픈 손가락이 있다.
어릴적 이런 생각을 해 본적이 있다.
'어머니가 사주신 위인전 속, 수많은 위인들처럼, 나도 그런 위인이 되고 싶다.'
그런데 그 위인들의 공통점이 하나 있었다. 다름 아닌 모두 어릴적 불우한 환경 속에서도, 강한 의지 하나로 남들이 흉내낼 수 없는 경지의 목표를 이루거나 영웅, 그 이상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대부분 조실부모하거나 편부모, 양부모 밑에서 험난한 생활을 버텨내었기에, 어느정도 위인전의 스토리텔링이 될만한 요소를 갖추고 있었고, 물론 어릴적 나는 그렇지 않았다.
매일(365일) 새벽 일을 나가시는 용접공 아버지와 비가 오기만을 기다리는 어머니(비가 오면 아버지가 출근하지 않으시니까...). 아버지의 부단한 성실함으로 작은 아파트라도 거주할 수 있었던 환경은, 80년대 서민으로 크게 나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그래서 나는... 위인이 될 만한 큰 요소 하나가 비어 있었다.
어떻게 보면 이게 무슨 소린가 하겠지만, 시간이 많이 흘러 어느덧 중년의 나이에 이른 지금. 돌이켜 보니 그런 미련한 생각도 서슴지 않았던 철부지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감사하게도, 나에게도 위인이 될 기회가 찾아왔다.
국민학교 5학년에 처음 알게된 큰 병원과 거기를 드나드시는 어머니. 불과 1년만에 돌아가시기까지 병명조차 분명치 않았던 어머니의 투병생활. 당시만해도 가난하면 받을 수 없던 방사선치료비를 위해 밤낮없이 일해야만 했던 아버지 덕분에, 방학 때마다 대신했던 병수발이 나에게는 위인이 될 만한 자격을 받기 위한 수료과정 같았다. 아무 것도 모르고 서울의 대형병원 입원실에 들어가 작은 보호자용 베드에서 생활하며, 그래도 사랑하는 엄마 옆에 앉아 손도 만지고 도란도란 이야기 할 수 있었던 그 때가, 지금은 너무 흐릿하게 기억 속에 저장되어 있지만, 그런 아픔이 하필 남들이 대부분 겪지 않을 시기였던 사춘기에 있었으니, 너무 빨리 어른이 되고야 말았고, 이 또한 위인이 될 만한 자격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어머니는 소천하셨지만, 나에게는 초라한 현실이 남았다.
집에 돌아와도 텅비어 있던 집안. 무슨 밥, 어떤 반찬으로 밥을 먹고, 또 아침마다 도시락을 싸가야 할지 고민하며, 두살터울의 여동생을 돌보기까지. 밤이 되어서야 퇴근하시는 아버지와 어떻게 대하고, 어떤 말을 나누며, 저녁을 먹어야 할지... 정말 암담했다.
어머니는 항상 여동생 보다 나를 더 이뻐하셨다.
말 잘듣고 공부 잘했던 탓이라고 생각했다. 적어도 어려서는... 하지만 이 생각은 어머니가 돌아가시기 전, 병상에서 하신 말씀 때문에 무참히 깨져버렸다. 동생 잘 돌봐야 한다고... 네가 어린 동생을 잘 돌봐 주어야 한다고... 나도 어렸는데, 나보고 어린 나보고, 그런 부탁의 말씀을 전하시고 떠나셨다.
사람에게는 한 손당, 다섯 손가락이 있다. 보통 왼손. 오른손에 다섯 손가락씩 주어진다.
다섯 손가락이 각자 다 기능이 있고, 작건 크건 굵건 얇건, 모두 모두 소중하다.
그리고 그 손가락 중에 하나라도 모자라거나 비면, 남은 네 손가락이 그 손가락을 대신하려 무던히 애써야 한다. 그래서 다섯 손가락 모두가 소중하다.
다만 다섯 손가락 중에 유독히 귀한 손가락이 있다. 잘 사용되어지거나 아님 무언가 모자라고 아픈 손가락.
그 손가락이 어머니에게는 늘 내 여동생이었나 보다.
그래서 나에게 그걸 맡기고 떠나셨나보다. 여전히 어리고 부족한 나에게 세상의 무거운 짐을 지게 하셨나보다. 덕분에 나도 위인이 될 기회를 얻었나 보다. 드디어 위인의 반열에 오를 자격이 생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