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Jean
기차를 타고 생장에 도착했다. 기차에 탔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곳에서 내렸다. 생장은 산티아고 순례길의 순례자 사무실이 있는 지역이다. 스페인어로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즉 산티아고 대성당까지 앞으로 약 800km를 걷게 될 순례자들이 순례 시작에 앞서 들러야 하는 사무실이다. 기차역에서 사무실까지는 십 오분 정도 걸어가야 한다.
“기차표는 잘 끊었어요?”
나는 같이 내린 그 남자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것처럼 태연하게 말을 건넸다. 무임승차 건을 은근히 비꼬고 싶었나 보다.
“아… 티켓 못 뽑고 있으니까, 역무원이 일단 그냥 타라고 해서… 기차 안에서 결제했어요”
그 남자가 대답했다.
날라리 같은 첫인상 때문인가… 나는 그 사람에게 편견을 가지고 생각하고 있었다.
대답을 들으니, 그를 무임승차로 오해한 것도, 도와준다고 해놓고 혼자 먼저 기차에 올라타버린 것도 괜스레 더 미안해졌다.
기차역을 나와 십여분을 걸어오니, 눈앞으로 순례자 사무실이 보인다. 그 앞에 사람들이 들어가지 않고 입구에 쭉 서있다. 다가가보니 사무실 문 앞 적혀있는 문구 ‘OPEN 1:00 PM’. 사무실 오픈시간이 아직 다섯 시간이나 남은 것이다.
나는 근처 미리 알아 놓은 마트에서 당장 허기진 배를 채울 무언가를 사 먹고, 내일 아침 첫 순례길을 떠나기 전, 먹고 갈 샌드위치 재료를 사 올 요량이었다. 어쩌다 보니 같이 걸어오게 된 이 남자에게 나는 마트에 가겠다고 했다. 그랬더니 같이 가도 되겠냐고 묻는다. 내심 혼자 가고 싶은 마음이었지만, 나는 상관없다고 말했다.
바로 내일, 산티아고 순례 첫째 날, 사무실이 있는 이곳 프랑스 생장에서 시작해, 걸어서 스페인으로 국경을 넘어갈 것이다.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이곳이 바로 프랑스에 머무는 마지막 날인 것이다. 길을 걷다 보면 들려오는 프랑스어 대화 소리, 거리 곳곳에 쓰여 있는 프랑스 글자가 이제 내일이면 스페인어로 모두 바뀔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 두 언어는 모두 생소한 언어라는 것은 다를 바가 없었다.
프랑스 마트인 까르푸에 도착했다. 냉장 코너에는 수백 가지의 이름을 알 수 없는 치즈가 놓여있다. 마트 안에서 느끼는 이국적이고 새로운 것에 대한 호기심으로 나는 시간이 흐르는 줄 모르고 구경하고 있었다.
프랑스는 역시 빵이라고 했던가! 마트의 빵 코너 근처만 가도 달콤하고 고소한 냄새가 진동한다. 선반에 진열되어 있는 반질반질한 크로와상이 줄과 열을 맞춰 나란히 있는 것만 봐도 가슴이 설레었다. 당장 손으로 집어 올려 입속으로 넣고 고소한 버터 풍미를 느끼고 싶은 충동이 일었다.
산티아고 순례를 앞서, 프랑스 파리로 들어왔던 나는 그곳에서 이틀 동안 머물며 ‘빵지순례’를 먼저 돌았다. 빵을 사랑하는 ‘빵순이’로서, 프랑스 파리의 수많은 빵 맛집을 거치지 않고 바로 생장으로 향한다면 아쉬움이 남을 일이었다.
*빵지순례: 유명한 빵집을 찾아다니는 일을 ‘성지 순례’에 빗대어 이르는 말.
프랑스의 첫째 날, 나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사 먹었던 그 따끈따끈한 ‘트라디시옹’의 맛을 잊을 수 없다. 트라디시옹은 바게트의 종류 중 하나인데, 바게트 맛을 온전히 즐기기 위해 바게트만을 먹거나(샌드위치 등을 만들지 않고), 간단히 버터나 쨈 등을 발라 먹을 땐 무조건 “트라디시옹 실부쁠레”를 외쳐라!
*“트라디시옹 실부쁠레”: 프랑스어로 “트라디시옹 바게트 주세요”라는 말이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빵이라는 것을, 프랑스에서는 세 가지로 분리하여 명칭하고 있는데, 첫 째는 효소나 효모 등을 사용하여 발효과정을 거치는 것을 빵이라고 부른다. 대표적으로 이런 바게트류나 깜빠뉴 같은 ‘겉바속촉’의 빵을 생각하면 된다.
두 번째는, 페스츄리이다. 버터를 사용하여 만든 고소하고 부드러운 종류를 말한다. 크로와상, 뺑 오 쇼콜라 등을 생각하면 된다. 나는 평소 담백하고 고소한 빵을 좋아해서, 국 내외로 크로와상이나 소금빵 투어를 하며, 그 맛을 비교하는 것에 빠져 있었던 때가 있다.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데, 내가 지금까지 먹어 본 크로와상 중 프랑스 파리의 ‘블랑제리 듀 센티어(Boulangerie du Sentier)’에서 먹어본 갓 나온 크로와상이 탑이다. 정갈한 크로와상의 결, 크로와상의 냄새를 맡자마자 고급버터를 썼다는 걸 알 수 있는 풍부하고 깊은 풍미, 한 입 베어 문 순간 후드득 하고 떨어지는 빵가루, 겉은 얇게 바삭거렸고, 안은 촉촉하고 부드러운 쫄깃함. 잊을 수 없는 크로와상의 맛이었다.
세 번째는 디저트이다. 달고 화려한 것, 그것을 생각하면 된다. 대표적으로 마카롱, 에끌레어 등이 있다. 나는 단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프랑스에서 디저트류를 많이 사 먹진 않았다. 그래도 파리에 왔으니, 딱 한번 도전해 본 것은 '모카맛 에끌레어'였다. 에펠탑을 바라보며, 사가지고 온 에끌레어를 한 입 딱 베어문 순간, 입안 가득 스며드는 단 맛에 눈이 저절로 감겼다. 맛이고 풍미고 잘 모르겠고, 내 머릿속 생각은 ‘으악, 너무 달아!’였다.
정신없이 마트의 빵코너와 치즈코너 등 각 섹션을 둘러보고 있는데, 같이 온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필요한 것을 다 사고 혹시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려나?' 나는 고심해서 집어든 빵과 쿠키, 치즈와 햄, 과일을 들고 가 서둘러 계산했다. 그리고 마트에서 나와 주변을 살피는데 그 남자가 보이지 않는다. 연락처도 없고 이름조차 모르는 그 남자를 기다릴지 말지 고민하다, 나는 약 십 여분을 그 자리에 서서 기다렸다. 그가 나타나던 아니던 크게 상관없었다. 그 사람을 바욘 기차역에서 도와주지 못했다는 불편한 사실과, 무임승차를 하는 날라리라고 오해했던 내 미안한 마음을 어느 정도의 기다림으로 상쇄하고 싶었다. 그러고 나서 나는 사무실로 향했다.
사무실까지 절반쯤 걸어왔을 때, 그 남자가 보였다. 그는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혹시 저 기다리는 거 아닌가 해서요…”
반대로 걸어오는 그가 나를 보며 얘기한다. 내가 기다릴까 봐 다시 돌아왔다는 이 남자. 우리는 또다시 같이 걸었다. 사무실 오픈 시간까지 아직 많은 시간이 남아있다. 그가 주변 카페에서 뭐라도 마시면서 기다리자고 제안한다.
야외 테이블이 있는 여유로운 카페에 앉았다. 그는 에스프레소를 주문했고,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마시고 싶은 나는 에스프레소와 아이스컵을 주문했다. 유럽카페는 아이스커피를 판매하는 곳이 드물다. 순례길을 걷는 한 달 이상, 한국인의 소울 ‘아아’를 어쩌면 나는 계속 이렇게 주문해야 할까? 탐탁지 않은 아이스컵에 에스프레소를 부었다. 에스프레소가 물 위에서 아래로 스며들었다. 나는 잠시 그것을 바라봤다.
“이름이 어떻게 되세요?”
잘 기억하지도 못하는 이름을 물었다.
“H”
공기 중에 내뱉어진 그의 이름이 구체화되지 못한 채 내 귓속으로 들어왔다 그대로 빠져나갔다. 그의 이름은 평범했다. 그 글자 하나하나는 이름으로 자주 쓰이는 대다가 두 글자가 어떻게 배치되어도 아주 평범했고 흔한 이름이 되었다. 그래서 그의 이름은 내 귓속으로 들어와 머릿속에 온전히 박히지 못했다. 적어도 내 머릿속에서는 그랬다.
내 이름을, 나는 내 입으로 꺼내어 놓는 것을 항상 어색하게 생각했다. 스스로 발음하는 것이 어색한 이 세 글자는 그래도 누군가에게 기억되기 쉬운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다고 마냥 특이하지도 또 평범하지도 않은 이름이지만 둘 중에 한쪽으로 기울어야 한다면 특이한 편에 속하기 때문에.
우리는 만난 지 한참이 돼서야 그렇게 통성명을 했다.
나는 온전히 하나가 된 커피를 한 모금 마셨다. 차가운 카페인이 내 몸속 혈류를 타고 세포 하나하나를 깨웠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잠깐이나마 피로가 가신 느낌이다. 아마 표정도 한층 밝아졌을 것이다. 얼굴에 내려온 피곤도 잠시나마 걷힌 느낌이었다. 그도 그런 듯했다. 에스프레소를 단숨에 마셔버린 그도 몇 분 되지 않아 말소리가 바뀌어 있다. 조금 더 강력한 각성제가 필요한 듯, 그는 담배를 피우냐고 나에게 묻곤, 내가 비 흡연자라는 것을 알고 담뱃갑에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물어, 불을 붙인 뒤 일어나 옆 테이블로 피해 담배를 태운다.
바욘 벤치에서 보았던 그의 첫인상은 좋지 않았다. 나는 비 흡연자이고, 담배 냄새를 극혐 한다. 그래서 흡연자를 가까이할 일이 거의 없기에… 어쩌면 편견일지도 모르는 내 개인적인 불호이다. 처음 마주한 그는 담배를 물고 있었으며 야간버스를 타고 온 피곤이 덮인 어두운 그의 얼굴은 나에게 좋은 인상을 심어줄 리가 없었다.
그 첫인상을 깨뜨린 것은 여백의 기류였다. 그의 말은 느렸다. 절제된 대사, 그가 내뱉는 문장에는 쓸데없는 수식어가 없다. 목소리의 톤은 높낮이가 없이 거의 일정했고, 말의 끝이 노래가 서서히 음량을 줄이듯 데크레센도로 사라질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의 말에 나를 집중시켰다. 끝까지 집중하지 않으면 잘 알아들을 수가 없어 무슨 말을 했는지 다시 물어보게 했다. 대화는 중간중간 끊겼고, 그는 말이 많지 않은 편이었다. 나도 쓸데없는 말들로 그 공백을 채우고 싶지 않아 그대로 두었다. 차라리 어색한 공기가 좋았다. 우리는 많은 대화를 하지 않았다. 이름 세 글자 주고받았을 뿐 직업이 뭔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됐는지, 어디에 사는지, 그런 취조하는 듯한 불편한 질문들은 그 공백 속에 오가지 않았다.
순례길을 떠나기 전 나는 다짐했는데, 순례길 위에서만은 진심이자 싶었다. 남에게 보이는 것, 남이 생각하는 것은 신경 쓰지 말고, 내 마음이 원하는 것을 하고, 흐르고 싶은 곳으로 흘러가기로. 머리가 아닌 마음의 편에 서기로. 내 마음을 속이지 않기로. 진심이기로…
그래서 내 표현의 수단이 마음의 크기를 확대시키거나 축소시키지 않기를 바랐다. 진심이 그대로 보이길 바랐으나 마음이란 꺼내서 보여줄 수 없는 것이어서, 말로 어쩔 땐 글이나 행동으로 나는 그것을 형용할 수밖에 없다. 그때, 나는 내키지 않는 말은 하기 싫었고, 꾸며내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억지로 지어내고 생각해 내어 입 밖으로 꺼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 공백을 가만히 두었다.
그와 나란히 앉아 흘려보낸 시간은 편안한, 가슴속 간질거리는 어떠한 감각으로 채워졌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그에 대한 첫인상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그 여백 속의 기류가 내가 그를 편하게만 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암시하는 듯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