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aint Jean
내가 순례길에 오르기로 결심한 것은 퇴사하기 약 한 달 전이다. 퇴사를 결심하며 사직서를 작성하고 있을 무렵, 내 삶의 핸들을 트는 이 시점에서 나는 ‘무언가’가 절실히 필요했다. ‘확인, 결정, 선택, 치유, 고백, 반성, 반추, 계획, 회복, 한탄…’ 그게 어떤 것이던 상관없었다.
스무 살 즈음 읽었던 파블로 코엘료의 『연금술사』와 『순례길』을 통해 막연히 알고 있었던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이 불현듯 떠올랐다.
나는 ‘어디로’인가 갈 것이다. 그 핸들을 트는 방향이 낭떠러지나 절벽 혹은 새로운 어떤 길이 될 것인가는 순례길 끝에, 한 달이 넘는 여정의 시간이 끝나는 시점에 있을 것이라 믿고 있었다.
나의 청춘의 한 페이지가 되었던 중국에서의 생활을 그만두고, 그곳에서 다니던 직장을 퇴사하기로 했다. 2013년 중국교환학생을 했던 것을 계기로, 대학원을 다니며 중국에서 학창 시절을 보냈다. 그때는 해외에서 살아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을 막연하게 하고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해외에서 살아가는 것에 한계를 느낀 것은 사회에 던져지면서 느낀 소속감과 안전망의 부재,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멀어진, 물리적 거리에서 오는 공유할 수 없는 외로움과 고독감이었다.
회사는 딱 일 년을 채우고 나왔다. 퇴직금을 받기 위해 나는 일 년을 꾸역꾸역 일했다. 그렇게 버텨야 할 이유는 돈이었다. 빚을 갚아야 했기 때문이다. 업무는 나름 마음에 들었다. 럭셔리 패션 브랜드의 핸드백 제작을 의뢰받는 벤딩회사였고, 나는 브랜드 개발부 사원으로 입사하자마자 중국지사에 주재원으로 발령이 났다.
생각해 보면, 나는 어릴 때부터 상상 속의 무언가를 손으로 만드는 것 또는 그것이 실체가 되어지는 것을 좋아한 것 같다. 한 때는 조리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엄마에게 말했는데, 엄마는 아주 강력히 반대했다. 다섯 식구의 끼니를 십여 년 동안 책임져온 기혼 여성에게는 요리란 즐거운 일이라기 보단 하나의 고민거리였고 수고스러운 일이었다. 딸이 그것을 업으로 하기 위해 공부한다니 더욱 반대할 일이었다.
그렇게 조리고등학교에 가고 싶다는 나의 발언은 해프닝으로 끝이 났고, 인문계 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됐다. 중상위권의 성적을 유지하던 나는 고등학교 2학년이 됐을 무렵 아무도 눈치채지 못할 반항기가 있었는데, 공부를 잘해야 할 이유는, 적어도 그때까지 내게서 찾을 수 없었다. 교내 시험성적은 과외를 한 덕분인지 꾸준히 올랐고, 내신성적이 우상향을 뚜렷이 그릴 때쯤 담임선생님의 상담이 있었다. 이대로라면 서울권 대학을 고려해 보아도 좋겠다고. 과외선생님 또한 나의 성적을 향상시키기 위해 주말 개인강습을 하는 등 나만 빼고 모두가 나의 성적이 오를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상위권 대학에 가야 할 이유도, 사람들이 말하는 좋은 직장의 기준도 나에게는 하나도 와닿지가 않았다. 내가 납득할 만한 이유가 없었고, 그래서 나에게 가치가 없는 것이었다. 그렇게 방황하는 사이 불현듯 내가 좋아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술이 하고 싶었다. 정확히 말하면 디자인을 하고 싶었다. 내 머릿속 심미적 요소가 어떤 실체로 만들어진다면, 그건 나에게 멋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번은 다행히도(?) 해프닝으로 끝나지 않았다. 그렇게 고등학교 2학년 후반, 빠르다고 할 수 없는 시기에 입시미술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뛰어나지도, 그렇다고 못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실기 실력과, 점점 떨어졌던 내신 성적을 가지고 대학의 문을 두드렸으니... 입시는 모두 광탈하고 말았다.
어쨌든 나는 디자인하는 것을 좋아하는 것 같다. 이 말을 하려고 내 학창 시절 이야기를 꺼낸 것인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나는 경영학 석사 학위를 가지고 있다. 경영학을 공부하고 디자인과 밀접한 업무를 맡게 된 것으로 지난 나의 실패가 단지 실패로 끝난 게 아니었음을 해명하고 싶은 것이다.
패션회사의 개발 부서 업무는 이런 내게 꽤나 잘 맞았다. 직접 핸드백을 디자인하지는 않았지만 바이어가 디자인한 것들이 개발실에서 핸드백이 되어 만들어지는 것의 일련의 과정을 담당하는 일이 맘에 들었다. 문제는 사람과의 관계였다. 내 사수는 나를 좋아하지 않았다. 처음에 왜 혼나야 하는지 모르겠는 이유로 혼이 나곤 했지만, 처음이니까 조금 오버해서 혼을 내겠거니, 큰 실수를 대비해서 작은 일도 크게 혼이 나는 거겠지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갈수록 심해졌다. 일이 어느 정도 익숙해질 즈음에도 많은 사람들 앞에서 큰소리로 혼이 났다. 그렇게 사수가 나에게 모욕감을 주는 일은 비일비재했다.
그러던 어느 날, 사수는 사람들이 없는 틈을 타 나에게 말했다. 더 이상 나를 가리킬 마음이 없으며 자진해서 내 발로 회사를 나가라고. 물론 인사팀 사람이 아니었기에 그 사람이 그렇게 할 수 있는 자격도 내가 나가야 할 이유도 없었으며, 그 사람에 의해 조치될 일도 없었지만(지금 생각해 보면 그 사수가 나에게 꽤나 경계심을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 말은 분명 ‘상처’였다. 심지어 사내 왕따 같은 것을 당했는데, 팀 회식에 나만 빠진다던지, 내가 들으라는 듯, 점심식사 시간 나를 겨냥하며 비꼬는 이야기를 사람들과 나눈다던지, 나만 빼고 의견을 물어본다던지…
그런 환경 속에서 이러한 일들을 일주일 중 6일, 하루 깨어있는 시간 18시간 중 10시간 이상 일 년 간 노출되어 있으면, 아무리 멘탈이 강한 사람이라도 심리적 우울감에 빠지기 쉬워진다. 우울증인지 우울감인지 모를 것이 깊어져 가만히 혼자 있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긍정적인 생각을 압도하여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이 괴로운 상황을 끊어내면 편안할까 라는 생각이 들었다. 퇴근을 하고 숙소에 돌아와 방 안 창문을 열어 환기를 시킬 때면 내 앞에 놓인 창틀에 두 발을 올려놓고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도 있었다. 열린 창문 아래를 한참 내려다보다가 내가 서있는 4층의 높이를 가늠하곤 하였다.
삶을 사는 것, 살아있는 것 자체가 귀찮다는 생각, 다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다가 ‘과연 살아야 할 이유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깊이 했다. 죽음이라는 상태에서는 힘든 것이든 좋은 것이든 그 어떠한 감정도 느낄 필요 없지 않은가. 그때 내가 필요했던 것은 어떠한 일말의 에너지도 필요하지 않은 상태, 고요한 상태, 평온한 상태(죽음에 이르기 전 고통이 없다면)였다.
나는 나 자신을 지키지 못했다. 무시와 방치로 곪을 대로 곪아버린 상처에서 오는 신호를 나는 무시했다. 그곳에서 오는 고통은 내 온몸의 정신을 지배할 만큼 거대하고 무서운 존재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한참이 지난 뒤였다. 나도 인식하지 못한 사이 내 정신을 서서히 갉아먹고, 칠흑같이 어두운 심연으로 빠지게 할 만큼 조용하고 서서히 다가왔다. 그리고 나를 지배했다.
꽤 오랜 기간 중국에서 생활했지만, 직장생활을 위해 북쪽에서 남쪽으로, 약 2800km 떨어진 곳으로 생활 반경을 옮겨온 탓에 아는 사람 하나, 마음을 둘 곳 한 곳 없었다. 이곳에서 나는 혼자였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끊어내지 못하고 몰입되어 점점 깊어진 것일 수도 있고, 또는 외적으로 밝은 나의 모습이 사회적 페르소나로 굳혀졌기 때문에, 주변사람들, 가족들과 친구들은 그런 나를 인지하지 못하고, 홀로 생각에 늪에서 허우적 댔던 것일 수도 있다.
다만, 이 책이 어떻게 이 시점에 내 손에 들려있는지는 알 수가 없는데, 마지막으로 미하엘 하우스켈러의 『왜 살아야 하는 가』라는 책을 들고 산티아고 순례길을 떠나겠다고 결심했다. 알고 싶었다. 단지 그것을 알기 위해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난 분명한 목표를 가지고 떠난 것이다. 아무도 신경 쓸 필요 없는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가 왜 살아야 하는지를 알기 위해서……
... 모든 고통은 의지가 의지를 발휘한다는 사실에서 나타난다. 의지는 아무 조리도 이유도 없이 쉬지도 않고 만족할 줄도 모르는 채 생존과 우위를 점하기 위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과 싸운다... 그렇다면 우리 존재에는 아무런 목적이 없다. 우리 존재는 어떤 고등한 목표도 수행하지 않는다. 목적지도 없이 그냥 존재한다. 우리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게 됐는지 이해할 수 없는 것도 놀랄 일이 아니다. 우리는 의지가 의지를 발휘하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가 의지의 수많은 표상 중 하나이기 때문에, 즉 의지가 스스로를 인식하는 한 가지 방식이기 때문에 존재한다. 그걸로 끝이다.
하지만 세계가 왜 이토록 불합리한 것인지, 세계가 불행히도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에게 왜 이토록 많은 고통을 가져다주는 것인지 답을 얻었음에도 세상 상태가 우리에게 불러일으키는 '도덕적 분노'는 달래지지 않는다. 세상 상태가 왜 이러한지, 세상에 왜 이렇게 많은 고통이 존재하는지는 이해했을지 모르지만 세계가 응당 '그래야만 하는' 모습이 아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세계는 여전히 나쁜 곳이며 우리는 세계가 좋은 곳이기를 바란다. 아니면 적어도 '공정'한 곳이기를, '도덕적'으로 납득이 가는 곳이기를, 아무런 희망이 없는 곳이 아니라 '나름'의 이유를 가지고 있는 곳이기를 바란다. 끝없이 이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삶과 죽음의 굴레, 생산과 파괴의 굴레는 "너무나도 불합리해 보여서 세계의 진정한 질서일 리가 없으며 그보다는 진정한 질서를 숨기는 껍데기 혹은 더 정확히는 인간 지성의 구성에서 기인한 현상"임에 틀림없다.
미하엘 하우스켈러(2021). 『왜 살아야 하는가』, 추수밭출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