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조지은 Jul 09. 2024

[프롤로그] 산티아고 날라리와 첫 만남

Bayonne ~ Saint Jean




야간버스를 타고 바욘에 도착했다. 어젯밤 11시쯤 출발한 버스는 오늘 아침 7시가 돼서야 목적지에 도달한 것이다. 약 8시간 버스 안에서 꼼짝하지도 못하고 앉아서 선잠을 자며 달려오니 온몸이 뻐근하고 신경이 한껏 예민해진 상태이다. 얼굴에 피곤을 뒤집어쓴 채, 버스에서 내렸다. 내리자마자 마주한 바욘의 아침 풍경은 나와는 상반되게 상쾌하고 신선했다. 따뜻한 햇살이 새벽의 차가운 기운을 흡수하고, 뽀송하게 맑은 공기를 내뿜었다. 켜켜이 얇게 쌓인 구름이 푸른 하늘 배경을 장식하듯 걸려있고, 도로를 따라 길게 뻗은 개울 표면엔 하늘 풍경을 데칼코마니 같이 그대로 담아냈다. 이 신선하고 아름다운 것을 기꺼이 받아들일 정신을 갖추지 못한 나는 터벅터벅 기차역을 향해 걸었다.

개울을 따라 균일한 간격으로 설치된 벤치에 담배를 뿔뿔 피우며 피곤을 몰아내고 싶은 듯한 남자가 앉아있다. 배낭을 옆에 둔걸 보니 순례자인가 싶다. 아는 척은 하고 싶지 않다. 말을 걸고 싶지도 말을 걸어주기도 바라지 않는다. 지금은 내가 가야 할 곳과 해야 할 것을 해낼 일말의 정신만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보이지 않는 것 마냥, 시선을 땅에 박고 빠르게 스쳐 지나갔다.




이십 여분을 걸어오니 바욘 기차역 입구가 보인다. 기차역에 들어섰다. 목소리가 울릴만한 높은 천장, 벽면을 둘러싼 돔 모양의 유리창을 통과해 내리쬐는 햇살, 이런 이국적인 건축물 실내에 서 있으니 내가 유럽에 있다는 걸 또 한 번 실감하게 했다.

실내 안에는 열명 남짓한 사람이 있다. 몇 명의 역무원 그리고 나와 같은 목적지로 향할 순례자들. 아웃도어 상 하의를 갖춰 입은 옷차림, 그리고 한 달 남짓 순례에 필요한 각자 나름 최소한의 생필품을 꽉꽉 넣고 압축하여 챙겼을 터질듯한 배낭을 보면 단번에 순례자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기차표를 뽑기 위해 티켓머신 앞에 줄을 섰다. 두 대의 머신이 나란히 서있다. 한 서양인 순례자가 기차표의 목적지를 두고 헤매는 것을 옆 머신을 이용하고 있는 한국인 순례자가 도와주고 있다. 난 뒤에서 슬쩍 두 사람이 누르는 것을 확인했다. “Saint Jean Pied de Port” 다음 차례인 내가 선택해야 할 목적지이다. 앞의 두 사람은 그 자리에서 순례자라는 동질감으로 벌써 친구가 된 듯, 기차표를 뽑아 사이좋게 플랫폼 안으로 들어갔다. 내 차례가 되어 머신 앞에 서있는데 참 낯설고 생소하다. 언어를 프랑스어에서 영어로 바꾸면 그나마 나을 것이다. 목적지는 앞의 두 사람 것을 봐두었으니 한 시름 놓았다. 기계의 스크린 안 자판의 알파벳을 하나씩 터치하여 입력한다. S..aint.. J..e..an…  P…

“저기.. 혹시.. 한국분 이세요?”

옆 머신 앞에 서있는 한 남자가 말을 걸어온다.

아까 내가 투명인간 취급했던 그 남자다!






벤치에 앉아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쓱 지나가는 나를 봤을 그 남자. 머신 앞에서 티켓을 뽑는데 집중한 정신이 흐트러졌다. 말을 걸어오는 이 남자 때문에. 건성으로 대답을 던졌다.


“네.. 맞아요..”


다시 정신을 집중하여 스크린을 터치한다. 기차 출발시간 AM 7:50…


“저 이거 맞나요?”


또다시 말을 거는 이 남자.

귀찮다.

내 기차표도 아직 뽑지 않았고, 나 역시 처음인데 자꾸 말을 걸어 물어보는 이 남자에게 대답해 주는 것이 성가셨다. 옆 스크린을 슬쩍 쳐다보니 목적지를 잘못 선택했다.



“목적지가 거기가 아닌 것 같아요… 제 것 먼저 뽑고 도와드릴게요. “


우선 내 기차표부터 아무 문제 없이 뽑아야 했기 때문에... 다시 집중해서 목적지와 출발시간을 확인하고, 머신에 카드를 넣어 결제를 했다. 티켓이 인쇄되어 나왔다. 목적지, 기차시간 확인.

그런데 기차 시간까지 채 일분도 남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옆에 이 남자를 도와준다고 했는데…



나는 기차표를 그 남자 얼굴 앞으로 내밀어 보여주며 기차 시간이 다 됐다고 통보한 뒤, 급하게 플랫폼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러곤 이미 도착해 있는 기차 안으로 황급히 몸을 던졌다. 다행이다. 하마터면 기차를 놓칠 뻔했다.

한숨 돌릴 틈도 없이 기차 안 앉을자리를 찾아 헤맸다. 목적지인 생장까지는 한 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기차 안 모든 승객이 순례자인 마냥 큼지막한 가방들이 빼곡히 기차 안을 차지하고 있어 발걸음을 옮기기 쉽지 않았다. 앉을자리도 보이지 않는다. 기차 옆칸으로 이동했다. 마땅한 자리를 찾을 때까지 다시 또다시 옆칸으로 이동. 그러는 사이 기차는 문을 닫고 출발하고 있다. 흔들리는 기차 안, 사람도 많고 배낭도 많다. 사람들과 배낭을 뚫고 기차의 꼬리 쪽까지 이동했다. 입구 쪽 옆으로 긴 좌석 중간 비좁은 한 자리가 보인다. 자리가 비좁지만 어쩔 수 없었다. 내 이 피곤에 쩌든 몸뚱이를 앉히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틈을 비집고 자리를 차지했다. 비좁지만 한 시간 동안 앉아서 갈 수 있어 다행이었다. 자리에 앉으니 이윽고 눈꺼풀이 무거워져 끔뻑끔뻑 눈을 덮는다. 그런데 감기는 눈꺼풀 사이로 입구 앞에 들어와 자리를 잡은 듯 멈춰 서있는 한 남자가 보인다.  

또 그 남자다!

“기차표를 잘 끊었나 보구나.. “괜스레 끝까지 도와주지 못하고 혼자만 기차에 올라탄 것이 꽤나 미안해진다.

잠시 자리에서 졸다가 인기척에 눈을 떠보니 역무원이 돌아다니며 기차표를 검사하고 있다. 나는 주머니에서 주섬주섬 기차표를 꺼내 보여주었다.

그 남자 앞에선 역무원, 잠시 그 남자와 무슨 얘기를 나누더니 그 남자 앞에 카드리더기를 불쑥 내민다.

아니…

무임승차라니…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