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ncesvalles ~ Zubiri
론세스바에스의 알베르게에서 내가 배정받은 침대자리는 H의 자리와 벽을 한 칸 두고 떨어져 있었다. 익숙한 그의 얼굴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그와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잠에 들었던 것 때문인지 피레네산맥을 건너 피곤했던 것 때문인지, 깊은 잠을 자고 개운하게 일어난 아침 여섯 시 반, 어제 예약해 둔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H와 함께 레스토랑으로 갔다. 식당으로 들어가 앞 쪽에 두 자리가 남아있는 원형테이블로 걸어갔다.
우리가 앉은 원형테이블에는 네 명 정도의 한국인 순례자가 앉아있었다. 내가 어제 H를 다시 봤던 순간 느꼈던 비슷한 형태의 반가움이 그들을 보는 순간에도 잠시 느껴졌다. 이국 땅, 외국 사람 그리고 다른 문화, 환경으로부터 오는 ‘이질감’보다 나의 정서, 나와 같은 인종과 피부색 그리고 모국어와 동일한 문화를 가진 한국인에게 느끼는 ‘동질감’에 인간은 편안함을 느끼는 것이었다.
반가움이란 더 익숙한 것 혹은 더 편안한 것에 기댄 그런 상대적인 감정이었다.
이 원형테이블에는 두 명의 이탈리아 사람들도 같이 앉아 있었지만, 한국인 순례자들끼리는 자연스럽게 한국어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아침식사 메뉴는 토스트에 햄 치즈가 곁들여져 나왔고, 그 외에 과일과 오렌지 주스 그리고 커피가 나왔다. 그렇게 식사가 준비되고, 모두가 식사를 하는 동안 내 왼쪽에 앉은 한 20대 중반의 젊은 한국인 남성 순례자가 오늘 걷게 될 순례길 여정의 브리핑을 쭉 늘어놓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사전조사를 아주 철저히 해온 그는 자신이 입력해 온 머릿속의 온갖 지식을 입 밖으로 마구 쏟아내었다. 나는 그것을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들을 수밖에 없었다. 또 내 앞에 앉은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한국인 여성 순례자는 자신이 다음 목적지의 알베르게를 예약하지 않았다는 것에 대한 불안과 걱정, 다리와 무릎이 아프다는 푸념들을 한껏 늘어놓았는데, 그것들을 듣고 있자니 같은 테이블에 앉은 두 이탈리아 순례자처럼 차라리 이해되지 않을 외국어의 ‘이질감’을 느끼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식사를 마치고 H와 나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배낭을 챙겨 레스토랑을 빠져나왔다. 두 번째 순례길 시작 앞에 선 나에게, 첫째 날에 느꼈던 그런 긴장감은 없었다. 뭐든지 첫 번째 보다 두 번째는 익숙하고 편한 것이니까.
H와 함께 길을 나섰지만, 우리는 각자의 속도로 길을 걸었고 곧이어 헤어졌다. 그는 걸음이 빠른 편이었고, 나는 걸음이 느린 편이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길 위에서 시간을 재촉하여 빨리 걸을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다. 혹자는 순례길을 걷다 보면 아무 생각이 없어진다는데 나는 오히려 그 반대였다. 맥락은 없지만 머릿속은 이런저런 생각으로 가득 찼다. 나는 이 길 위에서 굳이 과거를 회상하여 힘들고 복잡했던 마음을 들춰냈고, 그렇게 들춰내 어지럽게 펼쳐지고 뒤엉킨 것들에서 내가 여기 온 이유와 목적, 즉 내가 찾고 있는 답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머릿속을 하염없이 뒤적였던 것이다. 그 생각을 따라가는 내 감정들이 마음을 무겁게 걸음을 느리게 했다.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이 느리게 아니, 흐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컸다. 난 아직 답을 찾고 있는 중이고, 어떠한 힌트도 찾아내지 못했으니 말이다. 더 느리게… 느리게 가야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오늘의 목적지인 주비리라는 도시는 너무 일찍 도착해 버렸다.
오늘의 목적지 주비리는 저녁시간이 한참이나 남은 약간 애매한 시간에 도착했기 때문에, 우선 적당한 알베르게를 찾아 수속을 마친 후, 같은 알베르게를 쓰게 된 말레이시아 친구 그리고 다시 만나게 된 H와 함께 간단히 맥주 한잔을 하기 위해 알베르게를 나섰다.
우리는 각자 마실 것을 시켜 야외 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말레이시아 친구는 4가지 언어에 능숙했다. 모국어는 말레이어인데, 그는 중국계 말레인 즉, 화교이기 때문에 중국어도 능숙했고, 영어 또한 매우 자연스럽고 유창했다. 그에 추가로 일본에서 유학생활을 했다는 그는 일본어도 가능했다.
산티아고 순례길을 오기 전까지 중국에서 생활했던 나는 영어보다는 중국어에 뇌가 반응하는 속도가 빨랐고, 중국어가 가능한 말레이시아 친구와는 영어로 소통하다가도 내가 무언가를 말하는데 갑자기 턱 막히게 되거나, 말하고 싶은 영어 단어가 떠오르지 않을 때, 중국어가 툭하고 나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와버렸기 때문에, 나는 영어로 대화하기 위해 의식적으로 신경 써야만 했다. 여기 내가 만났던 순례자들 사이에서 공통어는 영어였기 때문이다.
셋이 영어로 가벼운 대화를 나누다가, 아이랜드친구와 미국친구, 홍콩친구 세 명이 하나둘씩 테이블에 합석하게 되었다. 다양한 친구들을 만나고 그들과 소통하는 것, 여기는 그 일이 자연스럽고 전부인 그런 길이다. 만나는 사람을 통해 듣고 보고 경험한 것은 내 인생에 작은 불씨를 일으켜 무언가를 느끼고 깨닫고 배우게 되는데 그 놀랍고 신기한 경험이 이 길 위에서 이뤄지는 것이다.
하지만 이 날은, 왠지 모를 ‘이질감’을 느끼고 싶었거나 혹은 그것을 느껴 불편했거나. 아침부터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난 그들과의 대화에 전혀 집중할 수 없었다. 관심 밖인 대화 주제에 집중하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 길을 걸어오며 많은 생각을 했던 내 기분이 좋지 않았던 것일 수도 있으며, 영어로 소통하는 것에 어떤 불편함을 느낀 걸 수 도 있다. 가볍게 오고 가는 대화에 내 무드가 무거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 머리와 마음은 대화가 오고 가는 테이블 위에 있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남아있던 맥주를 단숨에 다 마셔버렸고, 출출해져 먼저 저녁을 먹으러 간다는 적절한 핑곗거리를 남기고 혼자 그 자리를 벗어났다.
자리에서 나와 나는 조용하고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았다. 홀로 이곳저곳을 둘러보며 메뉴를 훑어봤다. 한 레스토랑의 메뉴판을 확인하고, 메뉴들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아 곧바로 밖으로 나왔다. 그리곤 다른 적당한 레스토랑을 찾아가던 길이었다.
내 정면으로 40대 초반으로 보이는 동양인 여자가 걸어오고 있었다. 그녀가 걸어오는 위치가 내가 걸어가는 위치의 너무도 정 방향이어서, 그녀와 더 가까워졌을 때 내가 어떤 말을 걸지 않으면 이상한 상황이었다. 최소한 인사라도 해야 하는 그런 느낌이 들었다.
혹은 무언가가 그녀와 인사를 나누도록 그렇게 우리를 마주하게 배치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몇 걸음 더 걸어, 그녀와 정면으로 마주하게 됐을 때, 나는 인사를 해야 했다.
“Hi!”라고 입 밖으로 나온 내 목소리와 억양이 나의 기분과는 이질적 이게도 너무 밝아서 스스로 흠칫 놀랐다. 그녀도 나에게 밝게 인사를 하고는, 유창한 영어로 나에게 식료품점의 위치를 물었을 때, 나는 그녀가 최소한 한국인 일본인 중국인은 아니겠구나 싶었다.
지금 이 시간에 식료품점은 모두 문을 닫았다. 저녁거리를 해 먹기 위해 식료품점을 찾아 나온 그녀는, 내가 지금 식료품점은 모두 문을 닫았을 거라고 하는 소리를 듣고, 이내 실망하는 표정을 지었다.
실망하는 그녀를 보고, 나는 갑자기 그녀에게 ‘같이 저녁을 먹자’고 해버렸다. 얼굴을 마주한 지, 채 1분도 안된 낯선 그녀 앞에, 나는 그런 말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툭 나와버렸던 것이다.
그녀의 이름은 조앤이다. 조앤과 아담하고 여유로운 레스토랑 카페에 들어갔다. 오래된 목조 가구로 채워진 내부, 햇빛이 들어오지 않아 어둑한 실내를 장식한 주황색 조명. 내부로 들어서는 순간, 조용하고 느긋하게 느껴졌다. 마음이 편안해져 온다.
오래돼 너덜너덜 해진 메뉴판과 달리, 그 안에 구성된 메뉴들은 썩 나쁘지 않게 맘에 들었다. 조앤도 그렇게 생각했다. 나는 메뉴판에서 돼지고기 폭립을 골랐고 맥주 한잔을 추가로 시켰다. 그녀는 샐러드와 마실 물을 시켰고, 우리는 아직은 밝은 야외의 입구 옆 조그맣고 아담한 그렇지만 꽤 높이가 있는 목조 원형테이블에 자리를 잡았다.
그녀와 마주 보고 앉아있는데, 나는 이 부자연스러운 일이 순식간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진행된 것에 어이가 없었으므로, 그녀에게 상황 설명을 했다. 불과 십분 전까지 다른 친구들과 있었지만, 그 자리가 불편하고 어색해 혼자 밥을 먹기 위해, 먼저 일어났다가 그녀를 마주한 상황을. 그러더니 조앤도 할 얘기가 있다는 듯한 표정이었다.
“나는 사실 오늘 여기 오는 길에 너무 힘들고 지쳐서 알베르게가 아닌 개인숙소를 잡았어, 그리곤 친구들과 헤어졌지. 혼자 방에서 조용하고 간단하게 저녁을 먹고 쉬고 싶어 식료품점을 찾아 나선 길에 너를 만난 거야.”
잠깐 텀을 두더니 그녀는 말을 덧붙였다.
“우리가 만난 이유가 분명 있을 거야.”
여자, 30대 초반의 어느 지점에서 느끼는 것
작년 겨울 2월 수요일, 밤 나의 일기
올해 몇 월부터인가 우리나라도 만 나이를 사용한다기에 지금 내 나이가 31살인지 32살인지 33살인지 헷갈리기 시작했다. 지금이 만 나이 사용하기 전이라면 올해 나는 33살이고, 만 나이를 사용한다면, 내 생일 9월이 지나지 않았으니까 나는 31살이겠다. 올해 내 생일 9월 28일이 지나면 32살이 되는 것이다. 참 헷갈린다.
어쨌거나 중요한 건 숫자가 아니다. 지금 30대 초 아니 그보다 훨씬 전 어느 지점에서 당연히(?) 고민해봤어야 하는 것들을 깊게 고민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 오후에는 『여름의 문』이라는 책을 샀다. 몇 주전 우연히 잠깐 봤던 다큐에서 저출산 문제를 다루었는데 거기에 나온 일본작가의 말이 인상 깊어서 그녀의 책을 사버렸다. 그 작가의 말이, 아이를 출산하는 것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일인가 하는 것이었다. 탄생은, 아이 입장에선 본인의 선택이 아니라 부모에 의한 선택이란 것이다.
맞네… 나도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게 아니네…
이걸 보고 결혼, 비혼, 여성, 출산, 페미니즘 뭐 이런 것들에 대해 생각해 보는데 '여자라면 좀 더 일찍 깊게 생각해봤어야 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튼… 근데…
생각을 하는 내 생각조차 뭔지 모르겠다. 이러한 주제에 대해 뭐 아는 게 없어서 그런 것 같기도 하고… 또 딱히 내가 사회적으로 기억에 남을 만큼의 성 차별이나 여자라서 큰 불편함을 느껴보지 못한 것일 수도 있다.
음…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여자로서 결혼과 출산의 문제를, 나는 경험을 하지 않고도, 이러한 문제를 어떠한 이유로 원하거나 혹은 원하지 않다던가를 잘 결정할 수 있냐는 것이다. 잘 결정한다는 건 또 뭐람..?
정답이 없는 문제이기는 하나, 여자에게 출산은 생물학적으로 시간의 제한을 받는 것이기에 내 생각이 또는 내 결정이 변할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이미 이것에 대한 고민을 더 일찍 했어야 했다!
조앤과 이야기를 하는 동안 주문한 음식이 나었다. 너덜너덜한 메뉴판에 있던 사진과 달리 그 음식들은 더 풍성하게 더 맛깔스럽게 서빙되었다. 음식가격도 저렴했고, 기대이상으로 서빙된 음식을 보고는 우리는 연신 “very nice!”를 외쳐댔다.
조앤은 중국계 미국인이었다. 난 그녀에게 영어와 중국어를 번갈아 가며 사용할 수 있었기에 대화에 깊이 빠져들 수 있었다.
순례길을 걸어서인지 원래 그런 것인지 모르겠는 까무잡잡한 구릿빛 피부에 투박한 아웃도어를 입고 있어도 드러나는, 관리를 잘 한 늘씬한 몸매, 건강미 넘치는 세련된 도시의 느낌을 풍기는 그녀. 우아한 말투와 격이 있는 행동, 제스처를 가진 그녀는 만약 순례길이 아닌 일상에서 봤더라면 도도하고 차가워 보이기도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긴 머리를 양쪽으로 가지런히 따고 이마에는 얇은 두건을 두른 조앤은 생각보다 동안이었다. 그녀는 오래전 결혼을 했으며, 두 명의 다 큰 아들들도 있었다. 난 그런 그녀에게 같은 여자로서 다른 상황을 마주하고 있는 것들에 대해 물어보기 시작했다.
결혼과 출산. 이것들은 30대 초반의 여성인 나의 관심사 중 하나였기 때문에 나는 정말 진지하게 이 대화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남편은 어떻게 만나게 됐어요?”
조앤을 향한 결혼에 대한 질문의 첫 운을 나는 이렇게 땠다.
“학교 친구야. 학생 때 사귀게 됐는데, 남자친구가 미국으로 가게 됐어. 나는 남자친구를 따라 미국으로 갔고, 그때 결혼을 해야겠다는 강한 느낌이 받은 거야. 그건 나뿐만 아니라 우리가 서로 그렇게 느낀 거야.”
조앤은 그때 당시를 떠올리듯, 허공을 응시하며 말을 하다가 그녀 앞에 놓인 샐러드 접시 위로 시선을 옮겼다.
“어떤 것이 그 사람과 결혼을 결심하게 만들었어요?”
나는 조앤의 입에서 현실적인 조언이 나올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건 내가 결심한 게 아니야. 신이 결정하신 거지.”
라고 대답하며 조금 의외의 대답을 내놓은 조앤의 얼굴은 장난기가 하나도 없었다. 포크와 나이프로 샐러드를 집다가 이내 그것을 내려놓고는 곧바로 현실적인 조언도 덧붙였다.
“결혼은 도전이야.”
비현실적인 대답과 현실적인 대답 사이에서 나는 후자의 대답을 물고 늘어졌다.
“그럼 만약 결혼하기 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결혼이란 걸 다시 하고 싶어요?”
내가 이 질문을 하자마자, 조앤은 어떠한 생각의 틈도 없이 곧바로 대답을 이었다. 그녀에 손에서는 이미 포크와 나이프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그건 신이 내가 이 사람과 결혼하도록 정하신 거야, 나의 선택의 영역이 아니지.”
이 생각지도 못한 뜻밖의 대답에 나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같은 질문을 던졌던 어떠한 사람도 조앤과 같은 대답을 한 사람은 없었기 때문이다.
조앤은 ‘신’을 ‘믿는다’.
‘신을 믿는다’는 말을 나는 지금까지 이렇게 진지하게 고찰해 본 적은 없었다. 그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고 관심 없는 일이었다. 여태까지 '신을 믿는다'는 말에서 나는 신의 존재론에 혈안 돼있었기 때문에 '신이 존재하느냐 존재하지 않느냐'의 내가 풀 수 없는 문제에 일말의 호기심조차 없었던 것이다.
조앤과 나눈 대화로부터 내가 깊게 빠져든 것은 그녀의 ‘믿음’때문이었다. 나는 그동안 이 문제에 대해 포인트를 잘 못 집고 있던 것이다. 신의 존재론이 아닌 이건 ‘믿음’에 관한 문제였던 것이다.
‘믿는다’는 것은 그냥 그런 척하거나, 말로 믿는다고 해서 그렇게 되는 그런 단순한 것이 아니다. 그것의 행위는 내 내면을 구축한 정신체계의 틀을 완전히 무너트리고 모든 것이 바뀌는 지각이 변동이 시작되는 것이다. 육체의 틀은 그대로 일지 모르겠으나, 내 안의 정신은 죽어 그 내용물이 크게 바뀌어 버린 새로운 것이 되는 것이다.
만남과 헤어짐이 수십 번도 반복되는 이 길 위에서 내가 ‘운명론’ 믿게 된 것에 순례 첫째 날 만났던 게리할아버지와 H의 예를 들 수도 있겠다. 걸음이 빠른 편인 H와는 헤어진 뒤에도 길 중간중간 어디에선가 다시 만나게 됐고, 게리할아버지와는 첫날 이후로 다시는 보지 못했으니 말이다.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내가 ‘운명론’을 말하는 것은, 어떤 무언가에 끌리는 듯한 그런 영적인 것들, 분명 내가 느낀 것은 그러한 눈이 보이지 않는 감각 같은 것들이었다. 또는 그녀가 독실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그녀와 마주하고 이야기를 나눈 순간은 그렇게 해석될 요지가 충분한 것이었다. 이 날 만큼은 나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을 뿐이다.
생명의 잉태를 어떠한 기준으로 선택한다는 것은?
작년 봄 3월 토요일, 대낮의 일기
아기가 태어나면, 자아를 가진 한 생명이 태어나면, 그 아이의 자의가 아닌 탄생이 되면 그래서 권리라는 것이 부여될 한 인간으로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면...
세상에 태어난 것이 의미 있는 일이라고, 그것이 가치 있는 인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은 몇 퍼센트나 될까? 그래서 자신의 선택이 아닌 출생을 당했다고 말할 수밖에 없는, 그 모든 과정이 다행이었다고 내가 출생을 당한 것은 정말 행운이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그렇게 말할 수 없다면, 언젠가는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시대가 또는 세상이 오기는 할까?
그렇다면 사람이, 인생은 가치 있는 거라고 살아볼 만한 것이라고 느끼는 때는 언제이며, 그런 세상은 어떤 것일까? 그것은 외부 환경이 만드는 것인가? 내면의 세계가 만드는 것인가? 죽음을 앞두고는, 난 살아봐서 다행이었다고 태어나서 행운이었고, 또 내 아이를 태어나게 해서 내가 겪었던 인생을, 살았던 세상을 살아가게 한 것은 아주 잘한 일이라고 떳떳하게 말하며 죽는 사람들은 있을까?
내 아이를 낳는 것, 내 아이를 만나는 것, 내 아이를 키우는 것…
출산은,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것인가?
육아는 보람차고 가치 있는 일일까?
부모가 또는 부가 또는 모가 태어난 아이의 일생에 관여하는 일-자신의 생활범위의 해줄 수 있는 경제적인 것, 환경적인 것, 유전적인 것, 정신적인 것 등의 모든 것-이, 그 아이를 위한 것이라고 하는 것은 아이의 입장이 아닌 사실은 그들의 입장에서 말하는 것이 아닌가?
정말 제멋대로, 지독한 일을 하려는지도 모른다!
무엇을 위해 출산하고 싶은 것인가? 무엇을 위해 양육하고 싶은 것인가? 그래서 그것은 이기적인 것인가? 비혼의 출산과 정상적인(?) 출산은, 또 혈육관계와 호적관계는 그래서 근본적으로 무엇이 다른 것인가?
난 출산에 대한 질문으로 화제를 옮겼다.
나는 두 명의 아들을 낳아 키운 조앤에게 어떤 방향으로도 해석될 수 있는 뭉뜨그려진 질문의 덩어리 주었다.
“아이를 낳는다는 건 어떤 건가요?”
대답을 하는 그녀의 표정은 진지하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그 대답을 듣는 순간, 완전한 몰입. 주변의 아무것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귀에 들리지 않았다. 그 주변과 정황까지도 모두 지워져 버렸다. 오로지 그 대답만이 남았다. 나는 알베르게로 돌아오는 동안에도 그 대답이 줄곧 내 뇌리를 맴돌았다.
“태어나 처음으로,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된다는 것”
아이를 낳는다는 것에 대한 그녀의 대답은 내 삶 전체를 반추해 보도록 했던, 그렇게 큰 울림이 있었던 말이었다. 그 대답이 마음에 들어 내 삶에 고스란히 들여놓아도 좋을 그런 것이었다. 나는 지금까지 내가 생각해 본 또는 내가 들어본 그 어떤 것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것이었다. 그 대답 한 글자 한 글자가 나를 더 깊이 그 말의 의미를 짚어보도록, 그 과정에 충실하도록, 그런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生日
작년 가을 9월 목요일, 내 생일날의 글
1991년 9월 28일 토요일, 세상에 떨어졌다. 작고 말랑한 심장이 초라하게 벌떡거리며 살아있음을 증명하고, 이 세상의 공기를 처음으로 들이켜는 순간, 고통의 시작. 아프다, 아프다, 삶은 아프다, 눈물이 터진다. 수술실 밖으로 울음소리가 퍼진다. 이윽고 강인한 심장의 박동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나를 이 고통의 세상 밖으로 꺼낸 자가 나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자의 가슴 위에 데려다 놓았다. 눈물이 멈췄다. 이 자는 낯설고 아픈 세상으로부터 나를 보호해 줄 것이다. 분명 그러한 책임을 가지고 있다.
신앙에 대한 호기심
2024.04.06 토요일, 산티아고 순례 두 번째 날의 일기
만약 조앤의 말마따나 ‘신’이라고 아직 부르기도 어색한 그것이 존재한다면, 아니, 존재, 부존재를 떠나 내가 정말 그렇게 진실되게 ‘믿게 될’ 순간이 온다면, 난 무언가를 찾을 수 있을까? 그렇다면 지금,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일까? 아니면 먼저 신이 존재한다고 믿어야 하는 것일까?
신을 믿어보고 싶어졌다!
내가 걷고 있는 이 산티아고 순례길 역시 종교적인 의미가 깊은 곳인데, 난 그런 점을 고려해 보고 이 길을 걷겠다고 결정한 건 전혀 아니었으니까. 그런 것 따윈 상관없었으니까…
조앤의 말을 빌려보자면 신이 그렇게 만들었다는 것이다. 신이, 아니 믿음이 그렇게 만들었다고 표현하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르겠다.
믿음은 유한성을 넘어서는 지식이다. 믿음은 유한과 무한 사이(혹은 경험 내부와 외부 사이)를 연결한다. 이 특이한 지식은 우리(혹은 일부 사람들)로 하여금 죽음을 받아들이고 죽음에 대처할 수 있도록 만들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애초에 죽음 자체를 찾지 않을 이유를 제공해 준다. 믿음은 우리가 살아 있어야 할 이유를 제공한다. 톨스토이의 주장에 따르면 믿음 없이 우리는 살 수 없다. "믿음은 인간 삶의 의미에 관한 지식이며 결과적으로 인간이 목숨을 끊는 대신 계속 살아가도록 만든다. 믿음은 삶의 원동력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살아 있다면 그것은 그가 무언가를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가 자신이 살아야 할 목적이 있다고 믿지 않는다면 그는 살아가지 못할 것이다."
미하엘 하우스켈러(2021). 『왜 살아야 하는가』, 추수밭출판사